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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성(野星) 강창덕 선생 추모사업회 창립...대구 '통일학교'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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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일 창립대회
평생 항일·민주화·평화통일 운동에 헌신..."정신 계승"
일제·미군정·자유당·유신정권 7차례 투옥, 13년 복역
김찬수·이대영·임성종 등 6명 공동대표
추모제, 통일학교, 기록·출판 등 추진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피해자로 한평생 평화통일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하다 지난 2021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한 야성(野星) 강창덕 선생의 그 정신을 잇기 위한 추모사업회가 창립한다.

'통일민주투사 야성 강창덕 선생 추모사업회'는 26일 오후 7시 대구 중구 '공간7549'(중구 서성로14길 59)에서 이 단체 창립대회를 연다.

"통일학교를 만들어 말년 여생을 보내려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통일교육을 하며 후진양성을 하다 통일을 맞고 싶었다"며 옛 사건들과 아흔의 소회를 말씀하시던 강창덕 선생님(2017.6.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통일학교를 만들어 말년 여생을 보내려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통일교육을 하며 후진양성을 하다 통일을 맞고 싶었다"며 옛 사건들과 아흔의 소회를 말씀하시던 강창덕 선생님(2017.6.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통일민주투사 야성 강창덕 선생 추모사업회'는 고(故) 강창덕 선생이 꿈꿨던 평화통일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다. 지난해 11월부터 창립준비위원회를 꾸려 발기인회의, 실무점검회의 등을 통해 회칙과 사업계획, 고문단 등 임원진 등에 대해 논의했다.

공동대표단은 ▲김찬수(63)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 ▲윤미경(56) 일재잔재청산대구시민모임 고문, ▲이대동(53) 대구민중과함께 대표, ▲이대영(62)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대표, ▲임성종(51) 대구경북추모연대 대표, ▲진영미(58) 대구촛불행동 상임대표 등 6명으로, 창립대회에서 추인할 예정이다.

고문단은 ▲박정우(82) 전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대표, ▲배한동(78) 경북대 명예교수, ▲이원배(71) 전 영남대 민주동문회장, ▲서일웅(83) 목사, ▲채영희(80) 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 등 5명이 맡는다. 

2017년 박근혜 탄핵 대구시국대회에 참석한 강창덕 선생님 / 사진 제공.통일민주투사 야성 강창덕 선생 추모사업회
2017년 박근혜 탄핵 대구시국대회에 참석한 강창덕 선생님 / 사진 제공.통일민주투사 야성 강창덕 선생 추모사업회

추모사업회는 ▲추모제 등 추모사업 ▲통일학교 등 통일 관련 사업 ▲자료 수집·발굴 등 기록, 출판 사업 등을 할 예정이다. 특히 '통일학교'는 대구 시민들을 대상으로 통일·남북관계 관련 전문가 등을 초청해 강연과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추진한다. 추모사업회는 창립대회 이후 통일학교의 구체적인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올해 사업으로는, 오는 9월 강창덕 선생 3주기 추모제를 비롯해 10월항쟁길 답사, 대구경북민족민주열사·희생자 합동추모제 등을 연다. 

임성종(51) 대구경북추모연대 대표는 "고 강창덕 선생은 대한민국의 근본적 변화는 통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야성 통일학교'의 형태로 지역에서 자주·평화통일에 대한 내용을 알리는 사업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영민(49)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4.9인혁재단)' 사무차장은 "추모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강창덕 선생의 뜻을 계승하고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단체를 만들게 됐다"고 창립 취지를 설명했다.

2021년 '인혁당 46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발언하는 강창덕 선생님(2021.4.9.경북 칠곡 현대공원) / 사진.평화뉴스
2021년 '인혁당 46주기 추모제'에 참석해 발언하는 강창덕 선생님(2021.4.9.경북 칠곡 현대공원) / 사진.평화뉴스

고 강창덕 선생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과 군부독재에 맞서 평화통일·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일제·미군정·자유당·유신정권에서 모두 7차례 투옥돼 13년을 복역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 시기인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8년 8개월을 복역했다.

1927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난 고 강창덕 선생은 1944년 17세의 나이에 만주독립군 무장투쟁을 마을 소년들에게 유포하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투옥됐고, 1945년에는 일본 해군 지원병 입대를 거부하고 도피하다 구속됐다. 광복 후인 1947년에는 학생웅변대회에서 통일국가 건설을 주장하다 미군정 포고령 위반 혐의로, 1952년에는 무력통일 반대, 평화통일을 이야기하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1961년에는 반공법·데모규제법 반대 집회 등으로 2차례 구속됐다.

이어 1952년 건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56년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공채 1기)로 입사했고, 2년 뒤 대구매일신문사로 옮겼다. 1960년 사회대중당 경산군당위원장을 시작으로 1967년 '반독재 재야민주세력 단일후보 추진위원회' 활동과 1988년 민족자주평화통일회의 대의원 대구경북 고문,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대구경북 상임공동의장, 1993년 경산민우회 초대 회장을 맡으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또 4.9인혁재단 이사장을 지낸 것을 포함해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상임고문과 남북평화나눔운동본부 고문, 6.15남북공동선언실천 대구경북본부 고문 등에도 이름을 올리며 통일의 꿈을 잊지 않았다.

특히 1974년에는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년 8개월을 복역했다. 이 사건은 1975년 4월 9일 박정희 유신독재를 비판했던 인사 8명(김용원·도예종·서도원·송상진·여정남·우흥선·이수병·하재완)에 대한 사형 판결을 내린 뒤 18시간 만에 사형 집행이 이뤄져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로 불린다.

고 강창덕 선생은 2006년 국무총리실 소속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으며, 이듬해 서울지방중앙법원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 강창덕 선생님 주요 약력 / 사진 제공.통일민주투사 야성 강창덕 선생 추모사업회
고 강창덕 선생님 주요 약력 / 사진 제공.통일민주투사 야성 강창덕 선생 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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