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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유족들의 분노 "사법살인, 박정희 동상 안돼"...대구시는 '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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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년 전 오늘 '사법역사상 암흑의 날'
박정희 유신독재 비판 8명 사형 집행
유족 '대구시 박정희 우상화 반대' 성명
"고문조작 살인자 기념사업 철회" 촉구
"홍준표 시장, 유족들 아픈 마음 짓밟아"
대구시 11일 조례 상정..."찬성자도 있어"

 

헌법을 유린해가면서 수많은 민주 인사들을 투옥하고, 잔혹한 조작으로 살인까지 저지른 자의 동상을 세우겠다? 도대체 어떤 인간들인가?

인혁당 사건 피해자 고(故) 나경일 열사 아들인 유가족 나문석씨가 '박정희 동상 건립'을 추진하는 대구시를 비판했다. (2024.4.9.경북 칠곡군 현대공원)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인혁당 사건 피해자 고(故) 나경일 열사 아들인 유가족 나문석씨가 '박정희 동상 건립'을 추진하는 대구시를 비판했다. (2024.4.9.경북 칠곡군 현대공원)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인민혁명당(인혁당) 조작 사건 피해자 고(故) 나경일 열사 아들 나문석씨가 9일 오전 경북 칠곡군 4.9인혁열사묘역에서 이처럼 말하며 분노했다. 나씨의 아버지 나경일 열사는 '인민혁명당 재건위 조작사건'으로 무기징역 판결을 받고 7년 동안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은 피해자다. 

그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고, 말문이 막히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길이 없다"며 "지난 50년의 세월을 되돌아보기도 싫은 가족들은 분노를 넘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만 가득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49년 전 오늘, 1975년 4월 9일 박정희 정권은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으로 유신독재를 비판했던 인사 8명(김용원·도예종·서도원·송상진·여정남·우흥선·이수병·하재완)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대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 집행이 이뤄져 '사법 역사상 암흑의 날'로 불린다. 

인혁당 사건 희생자 유족들이 이날 분노한 이유는 대구시(시장 홍준표)가 '박정희 공원·동상'을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홍준표 대구시장 한 마디로 시작됐다. 광주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물이 많은 반면, 대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물이 없다는 게 홍 시장이 사업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하지만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 독재자이자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을 희생시킨 인물을 기념하는 게 부적절하는 비판이 전국 시민사회에서 잇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시는 사업을 강행하고 있다.   

대구시에 9일 확인한 결과, '대구광역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오는 11일 대구시의회에 조례안 상정을 의뢰한다. 지난 1일 대구시민 889명이 '조례 제정 반대'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다른 지자체에도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 관련 조례가 있다"는 이유로 대구시는 반대 의견서를 미반영했다.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에서 열린 '4.9통일열사 49주기 추모제'에서 인혁당 사건 희생자 유족들과 시민들이 "박정희 우상화 반대"를 외치고 있다. (2024.4.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에서 열린 '4.9통일열사 49주기 추모제'에서 인혁당 사건 희생자 유족들과 시민들이 "박정희 우상화 반대"를 외치고 있다. (2024.4.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시민사회 반발도 먹히지 않자 결국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유가족들이 목소리를 냈다. 

(사)4.9인혁열사계승사업회와 4.9통일평화재단은 9일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 4.9인혁열사묘역에서 '4.9통일열사 49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인혁당 사건 희생자 유족들은 이곳에서 "대구시는 인혁당 열사들과 유가족을 두 번 죽이지 말라"며 "우상화 중단"을 촉구했다. 추모제는 슬픔과 분노 속에서 진행됐다. 

추모제에는 고(故) 이재형 열사 부인 김광자씨, 고(故) 나경일 열사 아들 나문석씨, 고(故) 도예종 열사 아들 도한수씨, 고(故) 도혁택 열사 아들 도영주씨 등 유가족과 김찬수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 임성종 대구경북추모연대 대표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 8명 중 고(故) 도예종·송상진·여정남·하재완 묘가 있는 묘역 앞에 1964년 1차,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에 연루돼 희생되거나 옥고를 치른 19명의 영정사진이 놓였다. 추모제에 참석한 유족·시민들은 제례를 지내고 헌화했다. 추모제에 앞서 발표한 '박정희 우상화 사업 반대' 성명서를 제례상 위에 올리기도 했다.

유족들이 영정사진 앞에 놓인 제례상에 술을 올리고 있다. (2024.4.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유족들이 영정사진 앞에 놓인 제례상에 술을 올리고 있다. (2024.4.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김찬수 4.9인혁재단 이사장이 제례상 위에 '박정희 우상화 반대' 성명서를 올리고 있다. (2024.4.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김찬수 4.9인혁재단 이사장이 제례상 위에 '박정희 우상화 반대' 성명서를 올리고 있다. (2024.4.9)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이들은 "홍준표 시장은 인혁당 사건과 같은 박정희 정권의 반인권적 독재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산업화 업적만을 찬양하는 동상을 세우겠다고 한다"며 "이는 시대착오적 인식이자 시민에 대한 무시"라고 비판했다.

특히 "대구의 관문인 동대구역을 박정희 광장이라 하고, 박정희 찬양으로 가득한 표지석을 보는 유족들의 가슴에 맺힐 피눈물을 생각해 보라"며 "홍 시장은 간첩의 가족으로 살아온 유족들의 아픈 마음을 더는 짓밟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구시는 유족들의 반발에도 사업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오는 11일 조례를 발의하면 오는 22일 시작되는 대구시의회 임시회에서 조례를 심의할 예정이다.  조례가 대구시의회를 통과할 경우 대구시는 예정대로 올해 안으로 동대구역 광장을 '박정희 광장'으로 명칭을 바꾸고 박정희 동상도 건립한다.  

오미희 대구시 행정과장은 "대구시에서 조례안을 상정하겠다는 것은 사업을 지속 추진하겠다는 의미"라며 "현재 대구시의회에 조례안 상정 의뢰를 할 예정이고, 이번 회기 때 조례를 심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 대구 시민들이 조례 제정 반대 의견서에 대해서는 "의견서를 제출한 시민들에게 답변을 모두 보냈다"면서 "사업에 찬성하는 시민들도 많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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