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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50주기...대구 '4.9인혁재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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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4.9 인혁당 50주기] ⑤
원영민 차장·추모연대 임성종
'인혁' 20년간 입에도 못올려 
추모제 이유로 '국보법' 고초
경대·영대 추모비 한때 철거
진화위→사법부 무죄→배상 
2008년 대구·서울 2곳 재단
시민단체 아지트, 교육지원
올해 50주기 추모제·특강 등
"통일·민주주의 꿈 이을 것"

국가가 죽인 사람들, 국가는 추모(追慕)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입을 틀어막고, 눈물도 외면한 세월. 올해로 50번째 4월 9일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희생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대구시 중구 대안동(서성로 14길 59) 3층짜리 건물 가장 꼭대기 층. 간판도 없는 사무실이 나온다.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4.9인혁재단.이사장 김찬수)'다. '인민혁명당 재건위 조작사건(인혁당)'의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희생자들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단체다.

● 국가 폭력에 의해 사법살인을 당한 희생자들이 못 다 이룬 통일과 민주주의 실현의 꿈을 대신 이어간다. 역사적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구경북 지역사회에서 밑거름이 되고자 여러 대안을 모색한다.

(왼쪽부터)원영민 4.9인혁재단 사무차장, 임성종 대구경북추모연대 대표(2025.3.14.대구 중구 4.9인혁재단 사무실)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왼쪽부터)원영민 4.9인혁재단 사무차장, 임성종 대구경북추모연대 대표(2025.3.14.대구 중구 4.9인혁재단 사무실)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인혁당 재건위 사건 일본 신문 보도' 스크랩(2025.3.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인혁당 재건위 사건 일본 신문 보도' 스크랩(2025.3.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인혁당 50주기를 앞두고 지난 14일 재단 사무실에서 4.9인혁재단의 사람들을 만났다. 상근 활동가인 원영민(50) 4.9인혁재단 사무차장과 4.9인혁재단이 속한 대구경북추모연대의 임성종(52) 대표다. 

4.9인혁재단은 지난 2008년 6월 20일 창립 발기인대회를 열어 올해로 설립 16년이 됐다. 인혁당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기금으로 출연해 대구에 4.9인혁재단, 같은 해 10월 27일 서울에 재단법인 4.9통일평화재단(2008년 10월)을 만들었다. 대구 재단은 함종호 상임이사를 비롯해 인혁당 고문 피해자인 고(故) 강창덕 선생, 사형수 도예종씨 부인인 고(故) 신동숙 여사 등이 이사를 맡았다.

16년 간 많은 부침이 있었다. 재단은 매년 4월 9일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 묘지에서 추모제를 지낸다. 희생자 8명 중 4명이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하재완, 송상진씨의 묘는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묘역으로 이장해 2기만 남게 됐다. 올해 도예종씨도 이천으로 이장을 계획 중이다. 현대공원에는 여정남씨 묘지 1기만 남는다. 국가로부터 '민주화운동'을 인정 받는 것으로 해석돼, 씁쓸하지만 지역에선 유족의 결정을 따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추모 이외에  통일역사기행과 같은 교육 사업도 한다. 대구10월항쟁, 김천 돌고개, 제주 4.3 등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현장을 답사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포함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도 실시한다. 재단 건물을 지역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을 위한 아지트로 제공하기도 한다. 현재 해당 건물에는 대구참여연대를 포함해 10여개의 크고 작은 단체들이 이름을 올리고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다. 

대구 중구 대신동에 있는 4.9인혁재단 소유의 건물. 이 곳에는 대구참여연대 등 10여개의 시민단체들이 주소를 두고 있다.(2025.3.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중구 대신동에 있는 4.9인혁재단 소유의 건물. 이 곳에는 대구참여연대 등 10여개의 시민단체들이 주소를 두고 있다.(2025.3.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재단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박정희 유신정권 하에서 1975년 4월 9일 사형 선고 하루 만에 8명의 젊은 가장과 청년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들과 관계한 20여명도 끔찍한 고문에 시달리고 옥살이를 했다. 인혁당 발생 20년 간 어디에서도 '인혁' 단어를 입에 올리지 못했다. 

국가 몰래 교회나 절, 성당에 숨어서 고인들의 넋을 기리던 유족이 가여워 시민사회가 1989년 2월 24일 경북대 강당에서 '제14주기 추모제'를 열었다가, 추모제 주최자들 중 일부(이종하, 류시벽, 류한종, 류연창)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 전신인 안기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숨진 8명 중 4명이 대구경북 출신이다보니 사건 20주기가 되던 지난 1995년 칠곡 현대공원과 출신 모교인 경북대학교(1991년 4월 19일)와 영남대학교 3곳에 각각 '4.9 통일 열사추모비'를 세웠으나, 경찰은 현대공원을 뺀 대학가 학내 2곳에 진입해 반발하는 학생 시위를 뚫고 추모비를 강제 철거했다. 경북대는 2010년 학내에 '여정남 공원'을 조성해 추모비를 세웠으나, 영남대는 철거된 상태 그대로 텅 비었다. 

1987년 6월 항쟁을 거치고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뒤에야 인혁당에 대한 공식적 추모가 시작됐다. 대통령 직속의 민주화운동 관련 의문사 규명을 위해 설치된 기구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전신)'가 2002년 9월 12일 인혁당 사건은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에 의한 조작 사건"이라고 발표하기까지 27년 5개월이 걸렸다. '사법사상 암흑의날'의 진실이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인혁당 구속자들 석방하라"...거리에서 행진하는 가족들을 경찰이 방해하자 항의하고 있다.(1974년) / 사진.4.9통일평화재단
 "인혁당 구속자들 석방하라"...거리에서 행진하는 가족들을 경찰이 방해하자 항의하고 있다.(1974년) / 사진.4.9통일평화재단
1975년 4월 9일 겨울공화국. 4.9 인혁당 사건과 관련한 방송 자료들이 사무실에 놓였다.(2025.3.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75년 4월 9일 겨울공화국. 4.9 인혁당 사건과 관련한 방송 자료들이 사무실에 놓였다.(2025.3.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리고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2007년 1월 23일 재심 재판에서 희생자 8명에 대해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항고를 포기했다. 인혁당을 재건해 국가 전복을 기도했다는 누명을 31년 만에 벗었다. 이어 같은 해 8월 21일 서울지법은 희생자들 유족에게 국가 손해배상 지급을 판결했다. 

이 돈으로 탄생한 4.9인혁재단은 지역에서 여러 사업을 구상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유족들에게 배상금이 초과지급됐다며 배상금 환수를 명령하고, 막대한 지연 이자(연 20%)를 내놓으라고 소송을 벌여 모두  물거품이 됐다. 윤석열 정권이 이자 면제를 결정하기 전까지 빚 고문에 시달린 셈이다.  

● 원영민 4.9인혁재단 사무차장은 "결국 희생자들이 꿈 꾼 세상은 박정희가 활동한 군사 유신 정권의 근본적인 모순을 넘어선 남북 한반도 자주통일과 진정한 민주주의 세상이었다"며 "유족을 만나 소통하고, 역사 기행을 통해 재교육 하고, 지역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활동이 재단의 주요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는 50주기 행사에 집중하고, 앞으로는 인혁당 관련 장기 프로젝트를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면서 "사모님들(희생자들의 부인)이 90세를 넘겨 대부분 돌아가시거나 연로해 만나뵙기 힘들고, 강창덕, 라경일 선생님 등 관련자들도 대부분 돌아가셔서 역사를 기록해놓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인혁당을 포함해 대구경북의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관련자들의 정신을 계승, 추모할 수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지금의 민주주의인데, 재단의 자산이 지역 사회 진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토대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원영민 4.9인혁재단 사무차장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인혁당 50주기 행사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2025.3.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원영민 4.9인혁재단 사무차장이 사무실 책상에 앉아 인혁당 50주기 행사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2025.3.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4.9인혁당 사건을 포함해, 고 오추옥, 김영균, 김수경, 이성경 등 대구경북 지역 노동.학생.농민.민주화운동 중 발생한 의문사 관련 9개 단체의 연대체인 '대구경북추모연대'의 임성종 대표가 4.9인혁당 50주기 의미에 대해 설명 중이다.(2025.3.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4.9 인혁당 사건을 포함해, 고(故) 오추옥, 김영균, 김수경, 이성경 등 대구경북 지역의 노동·학생·농민·민주화운동 중 발생한 의문사 관련 9개 단체 연대체인 '대구경북추모연대'의 임성종 대표가 인혁당 50주기 의미에 대해 설명 중이다.(2025.3.1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임성종 대구경북추모연대 대표는 "인혁당을 제대로 추모할 수 있게 된 것은 수십년 동안 유족들과 시민사회가 투쟁한 것은 물론, 국가가 진실규명하고 무죄를 선고한 결과"라며 "대구에서 인혁당을 제대로 기념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해 그 예우와 기념사업을 할 수 있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인혁당을 비롯해 대구의 민주화 역사를 제대로 알릴 수 있도록 대구 민주화운동기념관 같은 곳을 건설해 다시는 이 같은 사법살인의 아픔이 없도록 교훈을 남겨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4.9인혁재단을 포함해 42개 단체가 참여하는 '4.9통일열사50주기행사위원회'는 오는 3월 29일부터 4월 9일까지 추모 기간으로 정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기리는 행사를 연다. 오는 29일 영남대 추모문화제, 4월 5일 동대구역과 광장과 동성로 전시회, 같은 날 동대구역 광장 시민문화제, 경북대 일청담에서 대동한마당, 4월 9일 현대공원에서 합동참배 및 추모제, 4월 11일 경북대 심포지움, 4월 18일 대구YMCA 박상철 특별강연 등을 진행한다. 4,950원 후원금을 낸 4,950명을 시민 추모위원으로 모집해 전시회와 일간지 광고로 기록한다. 후원계좌는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에 확인하면 된다. 

4.9통일열사 50주기 추모위원회 모집 웹포스터 / 사진.4.9인혁재단

 

'사법사상 암흑의 날' 1975년 4월 9일 발생한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이 올해로 50주기를 맞습니다. 박정희 독재 정부의 조작으로  인해 8명의 가장과 청년들이 사형선고 18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희생자 중 4명이 대구경북지역 출신입니다. '평화뉴스'는 당시 사건을 돌아보고 희생자들과 유족들, 관련자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연속 보도를 통해 인혁당과 같은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평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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