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에 캠퍼스가 있는 영남대학교가 '박정희 동상' 건립을 추진해 논란이다.
영남대학교(총장 최외출)에 19일 확인한 결과, 영남대 동문 A씨는 올해 4월 대학에 발전기금 4억여원을 기탁했다. 대학에 따르면, A씨는 "영남대학교의 설립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념해달라"는 취지로 돈을 냈다.
대학은 이 취지를 살려, 기탁한 발전기금 4억여원으로 경산 캠퍼스에 박정희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개교 77주년을 맞아 대학을 설립한 박정희 전 대통령 업적을 기린다는 목적이다.
대학 측은 이와 관련해 지난 5월~7월 '영남대학교 설립자 동상 디자인 설계 및 제작 용역' 입찰 공고를 냈다. 이어 동상 작가를 선정해 현재 동상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안으로 동상을 설치한 뒤 제막식을 열 계획이다.
설치 예정 장소는 경산 캠퍼스의 대학본부 좌측 '천마아너스파크' 일대다. 동상의 높이는 2.5m~3.5m 규모로 추정하고 있다. 동상 일대에 동상을 포함해 좌대(기물 아래 두는 받침대), 안내 표지석 등을 설치한다.
하지만 박정희 동상 건립을 놓고 학내에서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영남대학교의 설립자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과 함께 동상 설치 절차를 놓고도 일방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대학은 현재 동상 설립을 위해 총학생회를 통해 학내 박정희 동상 설치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업 추진을 확정한 상태에서 입찰 공고까지 마치고, 9월이 되어서야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어 문제가 됐다.
영남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대학본부에서 학생 여론을 물어봐달라는 요청을 받아 단과대별로 찬반투표를 진행해 결과를 수합하고 있는 단계"라면서 "입찰을 다 끝낸 뒤 투표를 진행하는 것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투표 결과를 모아 조만간 대학 본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영남대 민주동문회는 반발하고 있다. 독재자인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영남대를 강탈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설립자로 보기 힘든 인물을 설립자로 규정하고, 기념하는 동상을 설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형근 영남대 민주동문회장은 19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독재 권력을 이용해 영남대를 강탈한 박정희 동상을 세운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영남대 캠퍼스에 박정희 동상을 건립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특히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씨는 지난 1988년 국정감사에 출석해 '(박정희 일가가) 영남대에 출연한 돈이 없다'고 말했다"면서 "사실상 영남대에 박정희가 기여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박정희를 기념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 지역 시민사회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과 대구대표도서관에, 경북도는 경북도청 앞에 박정희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영남대에서까지 동상을 세우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또 영남대는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 피해자들이 발생한 학교로, 이들을 사형시킨 박정희를 기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임성종 '박정희 우상화 반대 범시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이날 <평화뉴스>와의 통화에서 "영남대 출신 인혁당 사건 피해자가 3명이나 있는데도 이들을 사형시킨 전력이 있는 박정희의 동상을 세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박정희가 영남대의 설립자가 아닌 강탈자인데, 도대체 무엇을 기념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규탄했다.
대구시는 동대구역 광장과 대구대표도서관 등 2곳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는 등 '박정희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경북도는 오는 11월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 생일에 맞춰 경북도청 앞 천년숲정원에 높이 10m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 경북도 산하 경북문화관광공사도 지난해 11월 경주 보문관광단지 내 관광역사공원을 개장하며 박 전 대통령과 참모진,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상 등 5개를 세웠다.
◆ 영남대 측은 사실상 박정희 동상 건립을 확정한 상태로, 대학 설립자의 동상을 캠퍼스에 건립하는 것에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영남대 홍보팀 관계자는 "각 대학 설립자들의 동상은 학교마다 있고, 학생들의 등록금이 아닌 고액 기부자가 전액을 부담한다"며 "기부자 신원과 동상 제막식 일정은 알려줄 수 없지만, 올해 안에 동상을 세워 행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정희 동상을 설치하는 것이 학내 전체 구성원의 합의를 구하면 좋겠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현재는 동상을 어디 설치할지 내부에서 계속해서 논의 중"이라고 덧붙였다.
※ 박정희와 영남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영남대의 전신은 1947년 경주 최부자집의 최준(崔浚.1884~1970) 선생이 세운 대구대학과 1950년 최해청(崔海淸.1905~1977) 선생이 설립한 청구대학이다.
196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두 대학을 강제 합병해 영남종합대학을 발족시키면서 '영남학원' 법인을 만들었다. 때문에 1981년부터 2011년까지 영남학원 정관에는 박정희가 '교주(현재는 설립자로 변경)'로 명시돼 있었다. 그의 딸인 박근혜씨도 1980년 이사장을 지냈다가 학내 민주화 여론에 밀려 불명예스럽게 대학을 떠났다.
이명박 정부 당시인 2009년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재단 정상화를 위해 종전법인에게 이사 추천권을 부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사 7명 중 4명 추천권이 박근혜씨에게 돌아갔다. 이후 새마을장학생 1기 출신인 최외출 전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원장은 지난 2021년 제16대 총장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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