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려오니까 땅을 밟았다는 게 실감이 나네요. 오랜 시간 고공에서 농성할 줄 몰랐습니다"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정혜(40)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이 600일 만에 고공농성을 풀고 땅을 밟으며 이 같이 말했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29일 오후 3시 45분쯤 9m 높이 한국옵티칼 공장 옥상에서 내려왔다. 지난해 1월 8일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인 지 1년 8개월 만이다.
박 수석부지회장을 땅으로 데려오기 위해 준비된 크레인에는 이지영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사무장과 장창열 금속노조 위원장,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올랐다.
크레인이 공장 옥상에 점점 가까워지자, 박 수석부지회장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그를 기다리던 시민들을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아래에 있던 해고노동자들은 박 수석부지회장에게 "꽃길만 걷자"는 의미로 신발을 선물했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이에 보답하듯 함께 싸워온 해고자들을 하나씩 껴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등을 토닥이기도 했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하지만 지금 무사히 땅에 내려올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싸움에 함께해주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하루하루 힘든 날도 있었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즐거운 날도 있었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어 "잘못은 일본 본사 닛토덴코가 했는데 왜 고통은 노동자가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며 "이겨서 내려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직까지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고공에 오르는 사람들이 없길 바라며, 노동자들이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한다"면서 "정부와 국회가 한국옵티칼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달라"고 촉구했다.
시민들은 "정혜야 고생했다, 고마워", "투쟁은 계속된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땅에 내려온 박 수석부지회장을 향해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했다. 모두 인사를 나눈 뒤에야 뒤편에서 기다리던 가족들과 만나 부둥켜안으며 한참을 울기도 했다.
지난 2011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맞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했던 '선배'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도 인사를 나눴다. 김 지도위원은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울고 불며 몇 년을 싸우고, 때론 목숨까지 던져야 하는 것이 이 땅의 노동자들의 현실"이라며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 해고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이후 바로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입원한 뒤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파악할 예정이다.
정부와 국회는 해고노동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사 교섭 개최"와 "먹튀방지법 제정"을 약속했다.
금속노조(위원장 장창열)는 29일 오후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은 땅으로 내려왔지만, 싸움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며 "해고노동자 7명이 평택공장으로 고용이 승계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정부와 정치권 인사들이 함께했다. 배진교 대통령실 경청통합수석실 비서관, 김영훈 노동부 장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주영(경기 김포시갑), 박홍배(비례대표) 의원과 민병덕(경기 안양시동안구갑)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윤종오(울산 북구) 진보당 원내대표, 한창민(비례대표) 사회민주당 대표, 권영국 정의당 대표 등이 참석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국가를 대신해 해고노동자들과 함께해준 여러 노조와 시민단체, 시민 여러분께 정부를 대신해 깊이 감사드린다"며 "오늘 오전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옵티칼 문제에 대해 '노동부 장관이 가진 권한을 아끼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력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빠른 시일 내에 노사 간 교섭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배진교 대통령실 경청통합수석실 비서관도 "김 장관과 여당 의원들과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고, 문제가 정상적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이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김주영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과 정부가 함께 나서 외국인투자기업이 노동자를 배신하고 팽개치는 부분을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함께 고민하며 해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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