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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볕 더위 속 '불탄 공장 옥상'에 해고노동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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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동은
한국옵티칼 고공농성장
체온 넘는 위험한 폭염
하늘감옥 500여일 투쟁
..."새 정부 잊지 말아야"

37.8도를 가리키는  옥상...한국옵티칼 해고노동자가 고공농성 중인 경북 구미 공장 옥상의 더위(2025.6.7) / 사진.김동은 
37.8도를 가리키는  옥상...한국옵티칼 해고노동자가 고공농성 중인 경북 구미 공장 옥상의 더위(2025.6.7) / 사진.김동은 
45.5도 뜨거운 고공농성장의 기온...문 닫은 한국옵티칼 구미 공장 옥상에 해고자가 500일 넘게 고공농성을 진행 중이다.(2025.6.27) / 사진.김동은
45.5도 뜨거운 고공농성장의 기온...문 닫은 한국옵티칼 구미 공장 옥상에 해고자가 500일 넘게 고공농성을 진행 중이다.(2025.6.27) / 사진.김동은

지난 6월 7일 경북 구미의 낮 기온이 33℃로 예보되었다. 전국 최고 기온이었다.

불타버린 공장 옥상에서 불볕 더위와 내리쬐는 자외선에 맞서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님이 걱정됐다. 바쁘다는 핑계로 지난 2~3주 간 건강 상태도 확인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고공농성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철제 사다리를 맨손으로 잡았는데 햇볕에 달구어져 뜨거웠다. 옥상에 발을 딛는 순간 달아오른 콘크리트가 내뿜는 열기에 한동안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준비해 간 온도계를 꺼내 옥상의 온도를 측정해 보니 37.8℃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와 달리 박 부지회장님은 옥상의 농성 텐트가 아니라 밖에 쳐놓은 차광막 그늘 아래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그의 이마에는 열을 식히려는 듯 아이스 팩이 붙어 있었다.

"해가 져서 열기가 좀 식을 때까지 너무 더워서 천막 안에 있을 수 없어요"

잠을 자기도 힘들다고 했다. 직접 천막 안에 들어가 보았다. 잠시도 앉아 있기가 어려울 만큼 후끈한 열기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더위와 맞설 수 있는 장치라고는 탁상용 작은 선풍기 한 대뿐이었다.

"그래도 아이스박스는 있어요." 작은 냉장고라도 있는지 여쭈어보니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천막 안 구석에 놓인 작은 아이스박스를 열어보니 거의 다 녹은 얼음 생수 몇 병이 보였다. 

천막 안의 온도를 측정해 보니 역시 37℃를 훌쩍 넘었다. 오랜 고공 농성으로 면역이 저하되어 있고, 충분한 영양 섭취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렇게 뜨거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고 있어 열탈진, 열사병 등 심각한 온열 질환이 우려되었다.

두통, 어지러움, 의식 저하 등 온열 질환의 초기 증상이 나타나면 신속히 응급 처치를 하지 않으면 생명까지 위태로울 수 있는데 불볕더위의 고공에서 외로이 홀로 농성 중이라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천막 밖 차광막 아래에서 혈압과 혈당 등을 측정한 후 건강 상태도 확인했다. 심한 소화불량과 반복되는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아프다는 내색은 애써 안 했지만, 그동안 뵈었던 그 어느 때보다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햇빛이 그대로 내리쬐는 옥상에 해고자가 500일째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2025.6.7) / 사진.김동은
뜨거운 햇빛이 그대로 내리쬐는 옥상에 해고자가 500일째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2025.6.7) / 사진.김동은

2022년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자 일본 기업 닛토덴코가 세운 한국옵티칼은 1,300억의 화재보험 보상금만 챙긴 채 공장 문을 닫아 버렸다. 노동자들은 평택의 자회사로 "고용승계"를 요구했으나 회사는 정리해고로 노동자들을 내쫓았다. 

전형적인 '악덕 먹튀 자본'인 닛토덴코에 맞서 고공 농성을 시작한지 오늘로 537일째다. 국내 최장기 고공농성 기록이었던 510일을 갈아치우고 매일 '슬픈 신기록'을 경신하기 시작한 지도 벌써 일주일째다.

"이번 여름에 끝내야 해요. 제 몸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어이없는 12.3 비상계엄 선포에 맞서 '탄핵 투쟁'을 벌이는 동안 '하늘 감옥'에서 해고 노동자가 500일 넘게 싸우고 있음을 우리가 잠시 잊었던 것은 아닐까? 새 정부에 기대를 걸게 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신선한 행보'에 환호하는 동안 고공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부터 살려야 함을 우리가 잠시 망각한 것은 아닐까?

"닛토덴코의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 아닌가? 닛토덴코의 행동은 인권 존중 가이드라인 위반이다. 닛토덴코 기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한일 간의 노동쟁의다." 최근 일본 참의원 후생 노동위원회에서 오쓰바키 유코라는 의원이 일본 정부를 향해 던졌던 날카로운 질의다.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오른쪽), 소현숙 조직부장(왼쪽)이 공장 옥상 위에 올라가 있다. 소 조직부장은  476일간 고공농성을 벌이다가 올해 4월 27일 농성을 중단하고 옥상에서 내려왔다.(2024.10.30)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오른쪽), 소현숙 조직부장(왼쪽)이 공장 옥상 위에 올라가 있다. 소 조직부장은  476일간 고공농성을 벌이다가 올해 4월 27일 농성을 중단하고 옥상에서 내려왔다.(2024.10.30)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협하고 부당하게 약자를 억압하는 것 결코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4일 제21대 대통령 취임 선서식에서 국민께 드린 말씀이다. 다음 주 G7 정상회의에 이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한다. 이시바 일본 총리에게 한국 옵티칼 고용 승계 문제 해결을 촉구할 수는 없는 것일까?

오늘 고공농성장에서 내려올 때 박 부지회장님의 마지막 말씀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아 마음이 아팠다.

"이번 여름에 끝내야 해요. 제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지난해부터 한국옵티칼 고공농성장에 올라가 진료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불볕 더위가 시작된 이후에는 대구경북인의협 진료사업국장인 김동은 교수가 1~2주 마다 농성장에서 박 부지회장의 건강을 확인하고 있다. 

[기고]  김동은 / 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대경인의협 진료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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