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57) 고용노동부 장관이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566일째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중인 박정혜(40) 한국옵티칼 해고노동자를 만났다.
지난해 1월 8일 공장 옥상에 올라간 뒤 노동부 장관이 농성장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장관은 철도노동자 출신 첫 노동부 장관으로, 후보자 시절부터 "고공농성 사업장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고 있다.
김 장관은 26일 오후 경북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공농성장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박정혜(40) 수석부지회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각각 9m 높이 공장 위아래에서 마이크를 통해 대화를 나눴다.
이날 농성장에 김 장관이 방문하자, 해고노동자들은 "작업 중지 온도 35도, 지금 고공은 45도", "박정혜를 살려주세요", "이겨서 땅을 밟고 싶어요", "박정혜 힘내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었다. 이어 "박정혜 힘내라", "박정혜 땅으로"를 함께 외쳤다.
박 수석부지회장은 "옥상에 올라온 지 벌써 1년 7개월이 지났다"며 "지금은 하루하루 고공에서 버티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내려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왜냐하면 우리가 겪은 고통과 해고가 아무 일이 없듯 무너질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면서 "닛토덴코는 한국에서 사업을 계속하며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지만, 저희는 단지 이 공장에서 정말 열심히 일한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노동자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며 "장관님이 오셔서 감사드리고, 하루빨리 저희 문제를 해결하고 해고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끔 많은 힘이 돼달라"고 호소했다.
김 장관은 "너무 고생이 오래됐다"면서 "이 폭염에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지 잘 고민해보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또 "다른 말보다는 일단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법도 사람을 살리려고 있는 것이지, 사람 위에 법이 있을 수 있겠냐는 생각을 한다. 잘 고민해보겠다"고 덧붙였다.
박 수석부지회장을 만난 뒤 공장 내부에 있는 한국옵티칼 노조 사무실 안에서 간담회를 진행했다. 간담회는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로 진행됐다.
간담회에는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장을 포함한 해고노동자 5명과 배태선 민주노총 경북본부 교육국장, 장창열 금속노조 위원장, 손덕헌 부위원장,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등이 참석했다. 노동부에서는 김 장관을 비롯해 김선재 대구고용노동청장 직무대리, 김재훈 고용노동부 노사관계지원과장 등이 나왔다.
장창열 금속노조 위원장은 "한국옵티칼은 560일 넘는 긴 고공농성과 투쟁을 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며 "외국인투자기업이라는 명목으로 한국에 들어와서 온갖 혜택을 다 보며, 다시 일본에 돌아가고 난 뒤 남은 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밖에 없다는 것이 큰 아쉬움"이라고 했다.
이어 "닛토 자본의 행태를 보면 국가 간의 문제는 쉽지 않은 과제가 있는 것 같다"며 "(닛토덴코가) 교섭 장소에 아예 나오지 않기 때문에, 해당 문제에 물꼬를 터야 하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장기 고공농성 중인 사업장들에 대해 정부와의 실무협의체 구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옥상에 올라가 있는 박정혜 수석부지회장이 뻘리 돌아오게 하는 것이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노사 법치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이재명 정부는 노사 자치가 노사관계의 대원칙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노사 자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부가 끊임없이 교섭을 추진하고, 촉진시키고, 당사자들끼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며 "어제(25일) 세종호텔 고공농성장에 갔더니 장기 투쟁 사업장 해결을 위해 정부와의 실무협의체를 제안했는데, 빠르게 회신드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LCD 편광 필름을 납품하는 다국적기업 일본 '닛토덴코'의 한국 자회사다. 지난 2003년 구미4국가산업단지에 입주했으나 2020년 공장 화재로 사측은 공장 청산을 통보했다. 노동자 210명 중 193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이를 거부한 노동자 7명은 평택 공장으로의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박정혜, 소현숙(43) 두 해고노동자는 지난해 1월 8일부터 공장 옥상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소현숙 조직부장은 지난 4월 27일 건강 악화를 이유로 476일만에 땅으로 내려왔다. 현재는 박 수석부지회장만 남아 564일째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사측은 여전히 구미 공장과 평택 공장의 법인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용승계를 거부하고 있다.
김 장관은 노동부 장관 후보자 시절부터 고공농성 사업장 문제 해결 의지를 비치고 있다. 그는 지난 1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고공농성 중인 사업장들의 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 "장관으로 취임한다면 이 문제에 물꼬를 틀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때문에 김 장관은 지난 22일 취임한 뒤, 사흘 뒤인 25일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10m 높이 교통구조물 위에 올라 164일째 고공농성 중인 세종호텔 고진수(52) 해고노동자를 만나 "노사 당사자 간 합의보다 나은 판결은 없다"며 "정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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