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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게 가기까지...신문지국의 아주 긴 새벽
<새벽을 여는 사람들⑩> 신문유통원 신암센터 / "구독자는 줄고 판촉에 확장에..."
2011년 03월 24일 (목) 18:54:22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pnnews@pn.or.kr

 

"아무도 지국장님 손을 못 따라가요. 어찌나 빠른지..."

신문에 전단지를 넣고 있던 한 50대 여직원은 이같이 말하며 혀를 내 둘렀다. 옆에서 전단 작업을 하던 신문유통원 신암센터 김영식(54) 지국장은 "다음 신문이 들어오기 전까지 작업을 마쳐야 일이 겹치지 않는다"며 담배를 입에 문 채 능숙한 손놀림으로 신문 사이에 전단지를 끼워 넣었다. 24일 새벽 0시 40분, 신문지국의 모습이다.

   
▲ 신문유통원 신암센터 김영식(54) 지국장이 신문 사이에 전단지를 끼워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11.03.24)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전단지 작업을 끝낸 김 지국장이 "다음 신문이 올 때가 됐는데"라며 시계를 보자마자 파란 트럭 한 대가 지국 앞에 멈춰 섰다. 김 지국장은 "말 떨어지기 무섭게 왔다"며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고, 부리나케 트럭으로 달려가 재빠르게 신문을 옮겼다. 신문을 다 내려놓은 트럭은 얼른 다음 장소로 향했다.

신문유통원 신암센터는 신암동과 신천동, 대현동과 경북대에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한국경제신문과 스포츠조선, 매일신문과 영남일보를 비롯한 6개 신문 5천여부를 배달한다. 자정 넘은 0시 30분쯤부터 각 신문이 차례로 지국에 도착하면 새벽 2시30분까지 신문 속지와 전단지를 일일이 손으로 넣은 다음 배달을 시작한다.

"하루 2~3시간 잠 자고 배달...'지대' 못 내는 지국도" 

이곳 신암센터에서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은 김영식 지국장을 포함해 모두 8명이다. 김 지국장은 "내가 배달하지 않으면 돈이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밤 12시에 출근해 전단지와 속지를 넣고 분류 한 뒤 배달을 완료하는 시간은 아침 8시. 그러나 배달을 마친 뒤에도 해야 할 일이 더 남았다. 간혹 배달과정에서 누락되거나 분실되는 '불배'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불배가 생길 경우 다시 배달해야 한다.

   
▲ 신문보급소에 배송된 신문을 김영식 지국장이 트럭에서 지국 안으로 옮기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또, 낮 12시부터는 석간신문을 배달한다. 석간신문 배달까지 모두 마치면 오후 4~5시쯤 된다. 김 지국장은 "조간신문과 석간신문 모두 배달을 하는데다 신문구독료 수금과 지로용지 출력, 각종 서류정리까지 하다보면 하루 2~3시간 밖에 눈을 붙이지 못한다"고 말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신문지국은 각 신문사와 배달계약을 맺고, 독자들에게 직접 신문구독료를 받은 뒤 이 가운데 일정액을 제외한 '지대'를 신문사에 입금한다. 각 신문지국의 규모와 배달 부수에 따라 지대의 금액이 모두 다르다. 보통 전국일간지의 경우 3~4천원가량이며, 지방신문은 1~2천원가량이다.

보통 구독료가 1만5천원가량인 전국일간지의 경우 4천원가량의 지대를 본사에 입금하고, 나머지 1만1천원가량을 신문보급소가 갖는다. 지방신문은 1만원가량의 구독료 가운데 지대를 제외하면 8천원가량이 남는다. 그러나 인건비와 운영비를 제외하고 지국장이 순수 벌어들이는 돈은 월 2백만원가량이다. 그나마 신문지국의 규모가 비교적 큰 경우의 이야기다. 김 지국장은 "매월 본사에 지급하는 지대를 제때 납입하지 못하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 새벽 신문보급소의 풍경. 새벽 12시30분부터 차례로 들어오는 신문에 전단지와 속지를 끼워 넣은 뒤 각 동마다 배달할 신문을 분류하고 배달에 나선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김 지국장은 지난 1990년 한겨레신문 지국을 개업해 1년6개월가량 운영했으나, 수익을 내지 못해 결국 문을 닫았다. 그 뒤 활어회 배달과 새벽식당 운영을 비롯해 여러 일을 거친 뒤 2000년부터 7년간 신문을 배달하고, 지난 2006년 신암동에 다시 신문유통원을 차렸다. 그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은 셈이다.

갈수록 줄어드는 신문구독...신문 판촉 "숨통 조이는 일"

그러나 어엿한 사장이지만 각종 수작업과 배달, 경리 업무까지 김 지국장이 모두 맡아 하고 있다. 게다가 각 신문사마다 매월 또는 매년 구독자를 유치해야 한다. 일명 '확장'이라고 한다. 신문사마다 적은 곳은 연간 60부에서 많은 곳은 매월 판매량의 3%가량을 확장해야 한다. 김 지국장은 "할당량이 적은 곳도 있지만, 많은 곳은 정말 숨통을 조이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어쩔 수 없이 일당을 주고 판촉사원을 고용해 확장한다"고 말했다.

어려움은 이 뿐만이 아니다. 갈수록 신문구독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신문을 중앙일간지로 대체해주는 것을 비롯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설득에 나서지만 한 번 돌아선 독자의 마음을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김 지국장은 "인터넷이 발달해 갈수록 신문 보는 사람이 줄고 있어 형편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김 지국장은 "인터넷으로 신문을 보는 것과 지면으로 보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며 "독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국장의 소박한 꿈..."자녀 대학 입학 뒤 귀농"

이처럼 어려움이 따르는 신문배달을 하고 있는 이유를 김 지국장은 "마땅히 할일이 없어 시작했다"며 단 한 마디로 설명했다. 다른 설명이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이처럼 힘든 가운데에서도 나름의 소박한 꿈을 갖고 있었다. 김 지국장은 "고3인 작은 딸만 대학에 입학하면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도 내 꿈이 있으니, 아이들 모두 대학에만 들어가면 그 뒤부터는 알아서 하게 할 생각"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 서울 청와대와 정부청사, 영남일보 서울지사에 KTX고속열차로 배송될 영남일보 신문을 새벽 2시 50분쯤 김창호(43)씨가 동대구역 개찰구 안쪽에 갖다놓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새벽 2시 30분 쯤, 배달원 김창호(43)씨가 트럭에 신문을 싣고 배달에 나섰다. 김씨는 원래 트럭을 이용해 인쇄소에서 각 지국으로 신문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 여기에 부업으로 김 지국장과 계약을 맺고, 각 동에 있는 배달원들에게 신문을 갖다주는 중간배송과 직접 가정에 배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김창호씨는 "지국배송만으로는 수입이 적기 때문에 중간배송과 직접배달까지 하고있다"고 말했다.

KTX 이용... 청와대, 정부, 서울지국 배송

김창호씨는 영남일보 본사와 신천동 일대 중간배송, 신암동 지역 한 아파트 직접배달을 맡고 있다. 신암지국의 관할구역이 넓어 배달시간을 줄이기 위해 중간배송과 일부 직접배송을 김창호씨에게 맡긴 것이다. 영남일보 본사와 인근 지역에 중간배송을 마친 김씨는 잠시 동대구역에 차를 세웠다. 청와대와 정부종합청사, 영남일보 서울지사에 배송될 영남일보 신문이었다. 김씨가 역 개찰구 안쪽에 신문을 놓아두면 다른 직원이 매일 아침 6시10분 서울행 KTX에 실어 보낸다.

   
▲ 새벽 3시20분쯤 김창호씨가 신암동 한 아파트에서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 배달할 신문을 오토바이에 싣고 다음 아파트로 이동하는 김창호씨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새벽 3시 20분쯤 신암동 한 아파트에 도착한 김씨는 오토바이에 신문을 옮겨 실은 뒤 각 동마다 배달할 신문을 분류했다. 그 뒤 아파트 1층부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신문을 배달했다. 김씨는 "배달원마다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며 "아래층부터 올라가는 게 편해 이 방법을 선택했다"고 했다. 10분가량 아파트 한 동의 배달을 마친 김씨는 현관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타고 다음 동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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