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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개혁꾼'들은 현장 목소리에 귀를 열어라
[김민남 칼럼] "교육개혁, 공교육 체제 구축 말고 다른 무엇이 있는가"
2012년 11월 21일 (수) 10:56:26 평화뉴스 pnnews@pn.or.kr

교사의 학생평가권, 원래 교사의 것이었는데 국가가 그것을 가로챘다. 

개혁하려고 하는가? 당신의 개혁안에 국민적 동의를 구하려고 하는가? 그렇다면 이 일을 하여 10년 후 달라진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고 그 일에 책임지고 나서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선명하게 제시하라. 그들이 책임을 다하는데 필요한 긴급한 제도적 지원이 어떤 것인지를 적시하라. 이런 일련의 과정을 투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지금 시작하여 10년 내내 놓치지 않고 풀어갈 문제가 어떤 것인지를 명확하게 설정하라. 그래야 좋다 싶은 것을 늘어놓고 그것을 개혁이라고 말하는 무기력한 짓을 하지 않게 된다. 틀려먹었다고 하고 그것을 고치는 것이 개혁이라고 말하는 무례한 짓은 하지 않게 된다. 개혁의 주체가 개혁의 짐을 스스로 떠맡는 개혁안이라야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다.

교육개혁을 한다. 공교육체제를 구축하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이 있는가? 교육개혁이라고 했다면, 기성세대의 욕망이 여과 없이 투영된 ‘선행학습체제’를 해체하고 그것을 대체하는 공교육체제를 구축하는 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을 찾을 수가 없다. 

기성세대의 욕망으로부터 아이들을 해방시키는 일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한 시대적 요청이다. 아이들의 필요와 요구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 그것이 여전히 유효한 교육의 문제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일상의 삶을 정돈할 수 있는 앎을 형성케 한다. 그 앎을 생애 내내 형성하는 것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그 앎을 어떻게 형성하는가? 이 질문을 교육과정 목표로 진술하여 학습능력의 신장이라고 했다.

학습능력은 살아있는 아이들과 살아있는 교사들 간의 관계에서 산출되는 가치이다. 다른 모든 사람은 관여자일뿐이다. 교사도 살아 있고 아이들이 살아있다는 것, 즉 스스로를 기획하는 힘이 교사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정한다면,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수능, '획기적'으로 바꿔라


교육의 문제를 풀어내는 당사자는 교사(학교)이다. 
교사(학교)의 문제는 ‘서로 의지하여 공부하는 교실’과 ‘어떤 아이도 참가하여 놀이하는 운동장’아닌가? 다른 무엇인가? 그렇다면 그 교실과 학교를 만들고 이끌고 가는 것은 오롯이 교사의 책임임을 인정하자. 교사(학교)의 무능과 무정견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울지언정, 그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교사에게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권한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자.

가르치는 자에게 학생(학력)평가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그것은 수학능력(수능)시험의 성격을 바꾸는 작업을 반드시 동반한다.

지금 시작하자.
개혁은 장기적 과제이다. 다만 시작이 반이 되게 하자. 교사에게 평가권을 되돌려주는 일이 바로 시작이 반이 되게 하는 개혁의 단초를 여는 일이다.

장기적 대책을 로드맵을 그려 제시하라. 로드맵은 필요한 정책적 조치들을 우선순위와 강도에 따라 배치하는 일과 다름 아니다. 우선순위와 강도를 어떻게 배치할지 토론하자.

수학능력 시험의 성격을 교육과정 완성도 시험으로 바꾸는 ‘획기적’으로 바꾸라. 수학능력에 고착된 통념이 워낙 강해서 획기적이라고 했다. 정상 상태로 돌리는 것인데도 획기적이라고 했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체감하고 있다.

다시 말한다. 대학공부에 필요하다고 다들 인지하고 있는 수학능력이, 어떻게 교육 보편교육의 문제가 될 수 있는가? 교육이 필요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만들어지는 그런 대상인가? 백번 양보하여 수능시험으로 측정되는 수학능력이 과연 고등교육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예언치라고 단언할 수 있는?

놀랍게도 세 후보 모두 수능을 약간 축소하여 그대로 고수 한다고 공약한다. 수능이 있는 것만으로 교육과 선발은 그 수능에 지배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우리교육에 대한 그들의 현실인식의 바닥이 어디쯤일까? 현장 교사한테 물어보면 단번에 그 실상을 파악할 수 있을 터인데.

나는 지금 교육문화를 말하고 있다. 서로 의지하여 공부하는 교실과 함께 놀이하는 운동장, 즉 학습사회를 운영하는 교육당사들인 교사들과 아이들과 경영자들의 관계에서, 교육적 가치가 산출된다. 이 교육관념의 뿌리는 당대 세대가 후세대의 삶의 안정을 향한 연민이다. 

왜 공교육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문화인가?
공교육 체제를 구축한다. 상황에 쉬이 흔들리지 않는 공교육을 수행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 어떻게 하면 공교육체제를 구축하는가? 공교육의 무엇이 불변의 가치인지를 확인하고 그리고 그 가치를 지속시키는 견고한 장치를 마련하면 된다.

그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교육 아닌 것’ 즉 선행학습을 고발한다. 선행학습은 수학능력이라는 표적물에 적중하기 위한 훈련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수학능력은 ‘일류’ 입학과 ‘일류’ 입직으로 통하는 지름길 같은 것이다. 선행학습이 왜 나쁜가? 선행학습의 욕망은 자본주의 사회발전의 동력이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선행학습은 동기에서 그리고 결과에서 차별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을 노골화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사회질서의 근간을 무너트리는 선택임을, 시장주의 신봉자마저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교육개혁정책은 아이들의 학습능력에 집중하는 일을 긴요한 현안으로 받아들이고 그 현안을 근본이 되게 풀어내는 현실적 대책이어야 한다. ‘교사책임교육’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교사와 아이들의 교육적 관계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교사가 그 관계 형성에 일차적 책임을 진다는 주장 말고 다른 주장이 있겠는가?

철학도 행동도 없는 교육개혁정책

국가위원회, 학제, 쉼이 있는 중2, 상담교사배치, 특목고 폐지(유지), 입시간소화,....도대체 이런 것을 두고 교육개혁 정책이라고 강변하는가? 그것은 10년 후 우리 모습을 비젼이 되게 선포하는가? 그것은 선행학습의 비인간을 고발하고 있는가?

당신의 정책이 현안을 근본이 되게 풀어내는 유효한 답이 된다고 아직도 완강하게 버티고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 이유, 근거를 대달라. 논점을 이탈하지 말고, 우리가 알아듣게 이렇게 그 이유, 근거를 제시하라.

당신은 어떤 질문을 가지고 그 답을 끌어냈는가? ‘출제’하여, 당신의 질문과 답의 상관을 해설ㅎ해 달라. 출제를 잘하면 이미 반은 답을 적중한다. 아이들이 교사의 교과지도에 관심을 주의를 기우려 왔다면 아이들은 교사의 출제에 답을 끌어낸다. 아이들 편에서 출제를 하려는 교사의 ‘헌신’이 그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육과정 문맥이 된다. 시험이 그와 같은 교사의 현신을 반영하고 있다면 그 때 시험은 교육의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 된다. 교육을 지배하는 시험이 되지 않는다. 당신이 제출하는 대책들이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이었는지를 검토하여, 당신이 풀고자 하는 교육의 문제를 명료하게 공표할 수 있다.

당신의 답(대책)의 기층을 이루는, 당신이 확정하고 있는 교육의 문제는 무엇인가? 교육의 문제를 명료하게 하는 것이면 된다. 큰 그림을 그릴 수고까지 할 필요는 없다.

교육의 문제는 ‘아이들의 학습능력’인가? 국가경쟁력인가? 기성세대의 욕망인가? 다른 무엇인가?
교육의 문제가 있기는 한가? 그냥 틀려먹었다는 내심의 욕구불만 같은 것만 가득하지 않은가? 그것을 감추려고 신자유주의 어쩌고저쩌고 하는 식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닌가?

학습능력이라면, 교사(학교)가 그 일에 책임을 지고 교육의 과정을 관리한다. 책임을 지고 교육의 과정을 관리한다는 것은 교육과정 목표에 따라 학습지도 대책 혹은 정책을 세워 지도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럴 수 있는 권한, 교육의 과정을 관리하는 권한과 주고 책임을 묻는, 이른바 교사책임교육을 지속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공교육체제 구축의 핵심과제이다.

철학도 행동도 없는 관변개혁론자의 자기기만


당신의 내심에 교사들이 과연 자율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들은 자율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의심은 당연하다. 의심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고 문제를 풀려고 하니까, 교육개혁 정책 입안의 논점을 이탈한다.

공교육은 교사와 아이들의 자율의 능력을 기본적으로 가정하여 성립한다. 더 이상 논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을 빌미로 공교육을 축소하지 않는다. 논의해야 할 사안은 교사와 아이들에게 스스로 기획하는 자유를 주는 방안에 관한 고민이다.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학습을 기획하는 기회를 허락하는 문제이다. 이 자유를 어떻게 관리할지 그것이 논점이 되어야 한다. 논점을 이탈하면 관료엘리트주의자가 된다. 아이들과 교육을 논하며 기성세대와 관료의 편에 선다. 교사와 아이들을 교육의 주체라고 하면서 결과적으로 그들을 객체의 자리로 밀어낸다.

교육의 문제를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정치적 의도 때문이지 모른다. 교사와 아이들의 자율 능력을 의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밝힐 수 없는 속내가 있을지 모른다. 개혁을 외치며 체제에 순응하는 처세를 해온 내력이 그대로 들어난 것이라고 본다.
 
내친김에 말한다. 개혁을 자기들의 것으로 소유하고 개혁정책을 선제적으로 공표하는, 서울의 ‘개혁꾼’들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귀를 열어라. 토론할 용의가 있다.
 
도대체 당신네들에게 공교육체제 구축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있기는 한가?
‘교육의 문제’를 확정하고 있기는 한가?

토론에 진정성을 담기 위해 먼저 ‘개념없음’의 교육개혁 정책안을 일단 접는 행동을 보여주기 바란다.

이 글은 손종현교수의 ‘교육개혁정책’ 발제(지역문화 연구:사람 대 사람, 세미나, 11월 21일)을 다시 읽고 적은 것이다.

   





[김민남 칼럼 25]
김민남 / 교육학자. 경북대 교육학과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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