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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수선 50년, 뒤축만 봐도 그 인생이...
칠성시장 강모(70)씨..."고달픈 인생 내 손에 맡겨주니 고맙지"
2013년 03월 25일 (월) 08:44:34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돋보기안경을 코에 걸치고 하얀 천을 맨손에 둘둘 감아 구두약과 물을 묻혔다. 구두 앞뒤로 살살 비비자 얼룩덜룩하던 구두가 반짝반짝 광이 나기 시작했다. 구둣솔을 들어 바닥과 표면에 묻어 있는 먼지도 깨끗이 떨어냈다. 한참 무릎에서 떠날 줄 모르던 갈색 구두가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대구 북구 칠성시장 입구. 강모(70.대현동)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51년째 구두를 수선하고 있다. 한 평 남짓한 할아버지 일터는 간판도 문도 없다. 합판 몇 짝만 바람을 막아줄 뿐이다. 작은 공간에는 할아버지가 앉을 의자와 손때 묻은 공구가 엉켜있다. 그라인더와 재봉틀은 모두 인도에 나와 있다.

22일 오후 3시. 할아버지는 손질을 마친 갈색 구두를 검은 봉지에 넣어 앵글에 걸었다. 봉지는 모두 4개로 늘었다. 신발을 맡기고 찾아가지 않는 손님도 간혹 있지만 다음날이면 거의 찾아가기 때문에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 사이 돋보기안경을 벗고 구두약이 묻은 손을 수건에 몇 차례 문질렀다. 세월에 찌든 검은 구두약은 손가락 마디와 손톱 끝을 파고들어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 구두약을 바르는 강 할아버지(2013.3.22.칠성시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뜨거운 물에 푹 담그고 있어야 지워져. 쉽게 질 것 같으면 이렇게 시커멀까. 세월의 흔적이고 삶의 훈장이지. 50년 넘게 종이만 만지고 있어도 그럴걸? 남의 신발만 잡고 있었는데 오죽할까. 허허"


여기 저기 널린 공구는 끝이 닳아 반질반질하다. 사과 궤짝과 재봉틀에는 하얀 먼지가 가득 쌓였다. 수건과 천에는 구두약과 본드가 붙어 본래 색을 알아 볼 수도 없다. '구두, 가죽, 자크'라고 써진 간판은 박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다. 대부분 공구와 선반은 할아버지가 직접 만든 것들이다. 요즘에야 대형마트만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수선이 끝났다. 할아버지는 공구와 장갑, 안경을 무심히 던졌다. 손만 뻗으면 닿는 위치라 애써 정리할 필요는 없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들과 바쁘게 걷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벽에 걸린 오래된 라디오에서는 트로트 가요가 흘러 나왔다.

앞치마를 맨 시장 상인이 찾아왔다. 할아버지는 "1만5천원"이라 말하며 신발 두 켤레가 든 검은 봉지를 건넸다. 아주머니는 "2천원만 깎아 주이소"라며 앞치마에서 1만3천원을 꺼냈다. 할아버지는 별말 없이 돈을 받아들고 "예쁘게 잘 신어"라고 했다. 단골손님에게만 주는 할아버지의 작은 서비스다. 

   
▲ 구두 수선을 맡기는 손님과 대화하는 할아버지(2013.3.2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신발신고 비오는 거리도 헤매고, 꽃잎 떨어지는 봄 길도 걷고, 흙도 밟고, 출근도 하잖아. 여기에 사연이 다 담겨있다니까. 뒤축만 봐도 무슨 고민이 있구나, 무슨 일을 하는구나. 한번에 알아. 진짜야. 고달프고 서글픈 인생들 내 손에 맡겨주니 참 고맙지. 뿌듯해. 2천원 깎아주는 건 어렵지도 않아" 


오후 5시. 젊은 여성이 구두 높이를 낮춰달라고 할아버지를 찾았다. 할아버지는 구두를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구두 굽에 연필로 줄을 긋고 "여기까지만 자른다. 그래야 걸을 수 있어. 내 말 안듣고 후회하는 아가씨들 많아"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라인더 앞에 앉아 전원을 켜고 굽을 갈았다. '징'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순식간에 인도에 울렸다. 고무 타는 냄새가 났다. 할아버지 얼굴로 까만 먼지가 날렸다.

순식간에 구두 높이가 줄어들었다. 할아버지는 쇳덩이에 구두를 뒤집어 올려놓고 새 굽을 꺼내 밑판에 올렸다. 망치를 들고 4-5번 '쾅쾅' 두드리자 감쪽같이 구두 높이가 낮아졌다. 할아버지는 "5천원이야. 넘어질 것 같으면 다시와"라고 말했다.

   
▲ 그라인더로 구두 굽을 깎는 할아버지(2013.3.2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값싼 중국산 신발 신고 한번 망가지면 버리지. 수선하면 돈이 더 드니까. 그래도, 중국산 신발 들고 수선하러 오는 알뜰한 사람도 있어. 고쳐는 주고 싶은데 웬만하면 가라해. 밑창 뜯다가 더 망가지니까. 밑만 보면 중국산인지 아닌지 알거든. 그래도 측은해 보여서 고쳐줘"


강 할아버지는 지난 1962년 18살 때부터 칠성시장에서 구두를 수선해 왔다. 매일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365일 쉬지 않고 구두를 닦고 수선했다. 일본에서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가 해방 이후 한국으로 넘어 온 뒤 모든 재산을 몰수당해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 후 바로 생업에 뛰어들었다.

박스를 메고 다니며 '아이스께끼(아이스크림)'도 팔고, 양담배 장사도 했다. 그러나, 자리싸움에서 밀려 오랫동안 장사를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방직공장에 취직했다. 하지만, 생활비를 보태고 세 동생 뒷바라지를 하기에는 월급이 적었다. 그때부터  양화점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밤마다 구두를 닦고 수선하는 법을 배웠다.

   
▲ 새 굽을 끼우고 망치 질을 하는 할아버지(2013.3.2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구두 통을 들고 다니며 어디서나 신발을 닦았다. 그러다, 술에 취한 사람에게 멱살을 잡히고 뺨을 맞은 적도 있다. 눈과 비에 홀딱 젖어 앓아눕기도 했다. 그래도, 다른 곳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성실히 일했다. 결혼 후에는 부인과 3남매를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일했다. 구두를 닦고 2천5백원을 벌면 허투루 쓰지 않고 꼬박 저축했다. 그렇게, 자녀들 대학도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

"굶을 수 없으니까 남의 신발 잡았지. 풋내기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했고 자식새끼 낳고는 죽어라 일했지. 사람들한테 상처도 많이 받았고 내가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그렇게...그래도, 구두장이 세월 50년이 부끄럽진 않아. 부자는 아니지만 빚진 거 없고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최대한 다 해줬어. 이제 욕심은 없어. 한 80살까지만 하다가 정리하고 싶어. 구두약도 본드도 그때 되면 질릴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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