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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핵주권 위해 우리 주권 제한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 정책·인선 구상, 여전히 민심과 너무 먼 거리
2013년 04월 09일 (화) 11:34:32 평화뉴스 pnnews@pn.or.kr

낙마 인선·신뢰 추락, 국내문제로만 끝나지 않아

박근혜 대통령 낙마 인선. 끝은 어딘가?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도는 어디까지인가?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과 그 정부가 국민에게서 얻을 것은 무엇인가? 그런데 박근혜 낙마 인선, 신뢰도 추락은 국내문제로만 끝날까?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은 최근의 언론에서 드러난다.

그 답은 백 년 전 우리민족과 우리나라가 미국-일본이 엮은 그물에 걸려 되돌릴 수 없는 식민지 나락으로 떨어진 우리 역사가 이미 제시했다. 국민이 깨어 있지 않았기에 그랬을까? 오늘 우리 앞에 서 있는 정치인들 중에 과연 이완용, 한일합방 상소문을 발표하면서 여론몰이를 한 송병준, 이용구는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는 말한다. 반복된다고.

인선·정치지향 특징들

   
▲ <매일신문> 2013년 4월 1일자 사설

지난 2주 동안 몇몇 일간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인선과 검증, 정치 지향,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련해 보도한 주요 기사들을 정리하면 몇 가지 특징을 드러낸다. 그 하나는 검증 과정에서 후보자의 능력보다 자질의 한계가 더 뚜렷하다는 것, 국민 대다수를 불행하게 한 군사독재-유신독재로 회귀하는 인상을 준다는 것, 그러는 가운데 미국이 우리나라 주권을 옥죄는 듯한 행태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양수산부장관 후보자 검증과 관련한 기사를 제시한다.

박근혜 대통령 인선-정부조직구상 능력·한계를 보여주는 기사 사례
   
 
   
▲ <조선일보> 2013년 4월 4일자 사설

해수부장관후보 검증과정 블랙코미디 보는 듯

정부 주요 인사의 인선은 청와대 담당 부서에서 하지만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한다. 그 인선은 대통령의 구상에 근거하고 그러기에 그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지방신문인 매일신문조차도 대통령의 구상과 인선에 의문부호를 강하게 붙이고 있다. 「“그 수첩 속에 누가 있길래…”」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모르는 창조경제」. 이것은 ‘박근혜낙마자들’이 숱하게 쏟아진 뒤 언론이 토해낸 검증의 말이라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이제 막 박근혜정부의 인사가 발표된 단계가 아니란 것은 국민들이 다 안다. 매일신문의 이 기사·사설들은 한 마디로 대통령의 인선 관련 구상에 국민과 괴리가 크다는 것을 말한다. 윤진숙 해수부장관 후보자의 청문회 검증 관련 기사를 보면 한 마디로 블랙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 아니. 이런 장관 후보자가 다 있나라고.

   
▲ <매일신문> 2013년 4월 3일자 1면

이 기사를 실은 신문이 박근혜 후보의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날 1면을 전단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바로 그 신문이라고 누가 믿을 건가. 그 신문이 대통령의 정부 요직 인선이나 조직·업무 관련 구상에 한계가 많아서 국민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자를 ‘공공의 적’으로

대통령의 인선은 대통령의 정치적 태도에 바탕을 둔다. 대통령의 정치적 태도가 전진적인지, 수구적인지, 창조적인지 퇴행적인지, 공정한지 아니면 편파적인지에 따라 주권의 원천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그 국민에게 메가톤급의 영향력을 미친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태도와 관련해서 다룬 신문기사를 보자.
박 대통령의 정치적 태도를 보여주는 기사 사례
   
 
   
▲ <한겨레> 2013년 3월 27일자 29면(기획)

한겨레는 ‘구별 짓는 정치’가 박 대통령의 독배가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작은 제목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이 기사의 한 토막을 인용하기로 하자.

박 대통령이 윤창중 씨를 ‘자신의 입’으로 삼은 이유도 짐작이 간다. 윤 씨는 대선 직후 국민을 “대한민국 세력”과 “반대한민국세력”으로 구별짓고, 박 당선인에게 “반대세력에 대해 섣부른 감상주의, 낭만주의에 빠져서는 절대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단칼’로 ‘한 방’으로 ‘박근혜 정권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하는 인터넷 칼럼을 썼다. 국민통합에 부적격자라는 숱한 비판에도 그를 인수위에 이어 청와대대변인에 재신임한 것은 박 대통령 스스로 반대세력에 대해 전선을 구축하고 싶었기 때문이라 볼 수밖에 없다.…

상청회 전회장이 밝힌 정수장학회 이사장

   
▲ <한겨레> 2013년 3월 30일자 사설

이 기사는 1950년대 미국을 휩쓴 매카시 광풍을 걷어낸 언론인으로 CBS 방송 진행자 에드워드 머로라고 밝힌다. 매카시즘의 허구성을 낱낱이 폭로한 머로의 특집방송 마지막 코멘트를 이렇게 소개하는 것으로 맺는다. “반대와 (조국에 대한) 불충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들은 묻는다. 윤창중의 편향성의 근원은 어디, 누구인가라고. 정수장학회의 이사장이 최필립에서 김삼천으로 바뀌었는데 정수장학회 장학생들 모임인 상청회의 16대 회장은 김을 “박근혜 해바라기”라면서 “이건 누가 봐도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나…”라고 언론에 밝혔다. 언론은 이 두 기사를 통해 말하려는 것, 그것은 대통령의 정치적 태도가 편향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 아닐까.

웹2.0 관점에서 보면…

편향적이고 퇴행적/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은 변화·소통과 거리를 두는 경우에 흔히 나타난다. 참여·공유·개방으로 축약되는 웹2.0 관점이 현재와 가까운 장래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사표현·행동에서 특징적으로, 그리고 기본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면서 디지털·지식정보 시대 민주주의와 부합하는 것이라면 웹2.0 관점과도 거리가 멀다. 그것이 언론에 비친 대통령의 정치적 태도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역시 언론의 기사를 통해보면 가능하다. 대통령이 국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일상적 거리가 가까운지, 아니면 계단-책임 전가의 계단이 많은지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거리는 대통령이나 그 권력 구조 속에 있는 측근들이 재는 것이 아니라 국민 대중이 민심이라는 신뢰도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정치 발전을 위한 국민의 의무이다.

박 대통령-국민 거리 유무를 드러내는 기사 사례
   

대통령-국민사이 너무 많은 ‘계단’

박 대통령-국민 사이 거리 유무를 보여주는 기사들이 한 결 같이 말하는 것. 바로 국민과 사이가 너무 멀고,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리가 멀다고 사과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닐 텐데 언론이 사과를 요구하고, 또 대변인을 통해 사과를 했는데도 ‘아니함만 못하게 된 청와대 사과’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 뭘 말하려는 걸까.

   
▲ <한겨레> 2013년 3월 26일자 사설

한겨레는 3월 26일치 사설을 통해 ‘새누리당의 사무총장과 대변인이 청와대의 반성과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예사롭지 않다. 청와대더러 반성을 하라는 것은 결국 인사권자인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다. 대통령의 ‘나홀로 리더십’이 여권에서조차 광범위한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라면서 총체적 인사 실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대통령이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포문을 열었다. ‘이래서야 어떻게 국민이 마음 놓고 나라를 맡길 수가 있겠는가’라는 대목은 바로 신뢰회복을 위해 대오각성하라는 주문이 아닐 수 없다.

창조경제, 교리 전도하듯 해

 경향신문 4월 1일 치 사설은 박 대통령의 인사난맥, 선거 과정에서 국민에게 제시한 공약을 잇따라 파기한 것, 새 정부의 핵심정책인 ‘창조경제’를 여당 의원들에게조차 마치 교리를 전도하듯 하는데 국민과 무슨 소통이 되겠느냐는 것을 들었다. 이에 따라 60대 이상과 대구·경북에서 지지율의 하락 폭이 컸다고 했다. 핵심지지층마저 흔들리고 있는 반증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 <경향> 2013년 4월 1일자 사설

대통령비서실장이 한낱 대변인을 통해 그것도 뉴스 주목도가 떨어지는 토요일 오전에 단 두 문장의 사과문을 읽게 했는데, 걸린 시간은 17초였다. 여야가 요구해온 인사 검증 책임자 문책은 사과문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이 사설은 ‘우선 인사 실패의 궁극적 책임자는 비서실장이 아니다. 잇단 잡음의 원인이 박근혜 대통령의 ‘나홀로 인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고 했다. 책임질 사람은 따로 있는데 한낱 ‘대독사과’로 면피를 하려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것. ‘민심은 천심’이라는데 국민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서야 감행할 수 없는 일을 ‘사과’라고 하고 있으니 누가 그 진정성을 믿을 것인가.

이미 결정해버린 인물이라 검증 안 해

조선일보는 사과해야 할 이유로서 ‘새 정부 인사 실책은 대통령이 자신의 개인 기록과 인연·경험에 의해 사람을 고르고, 청와대 참모진은 대통령이 이미 결정을 해버린 인물이라서 이들에 대한 적극적 검증을 하지 않는 ‘선택의 실수’와 ‘검증의 부실’이 합쳐져 만들어진 복합 사고다.’라고 했다. 결국 책임지는데도 대통령이 중심에 서야 한다는 말이다. 위 표에서 보듯 언론은 국민과 ‘불통’하는 청와대를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국정동력이 떨어질 것을 염려하면서.

   
▲ <조선일보> 2013년 3월 28일자 사설

국민과 불통하는 것은 국민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을 선택하게 된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국민적 저항을 받고 우리 헌정사에서 퇴장당한 반민주적, 반인간적, 시대착오적인 정책. 그것은 유신독재의 유물을 복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경향신문은 이 시대착오적인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다뤘다.

박근혜 대통령 정책의 지향을 드러내는 기사 사례
   

시대착오적인 유신군대 이념교육

국방부가 4월 1일 대통령에게 업무를 보고하면서 2014년부터 각군 정훈교육을 통합, 유신시대에 창설됐다가 없어진 국군정신전력학교를 15년 만에 부활하겠다는 내용을 다룬 것이다. 경향신문은 국군정신전력학교에서 우려되는 대목을 4월 2일치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다뤘다.

   
▲ <경향> 2013년 4월 2일자 사설

…국방정신교육원의 전신인 국군정신전력학교는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장병들의 투철한 국가관과 사생관 및 필승의 군인정신을 함양한다는 취지에서 창설됐지만 체제수호를 위한 반공이념교육에 치우쳤던 것이 사실이다. 유신군대의 잔재인 정신교육을 재개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이념교육으로 흐를 공산이 다분하다. 더구나 김관진 장관의 국방부는 총선과 대선이 있었던 지난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을 싸잡아 종북세력으로 매도함으로써 군의 정치 개입 논란을 빚어왔다. 재작년에는 ‘종북세력 실체인식 특별교육’ 자로를 통해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직간접으로 참여했던 민주시민들에게 종북딱지를 붙이기도 했다.…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이다. 민주적 가치를 잘 보존해야 강한 군대가 된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 군대가 권위주의 군대에 승리해온 것은 뒤틀린 정신교육 덕분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에 억지 정신교육이 없는 이유다. 불행히도 우리 군은 여전히 유신군대의 유산에서 자유롭지 않다. 헌법 5조 2항에 규정된 정치적 중립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은 물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까지 비뚤어진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미지 조작을 서슴지 않았다. 국방부는 군 기강을 다잡는다는 미명하에 또다시 현대사를 왜곡하고 정치적 편향을 주입하는, 반헌헙적인 작태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가 4월 1일 사설에서 밝힌 대로 ‘잇따른 인사 실패를 보고 낙담하면서 나라 앞날을 걱정하는 국민마음을 달’래려면 국민과 소통하는 태도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 답은 길지 않은 우리 헌정사에서 자명하다.

미국 움직임 심상찮다

국민이 박 대통령의 인사실패,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이에도 한반도를 둘러싼/겨냥한 국제적인 움직임은 빠르게 돌아갔다. 그 가운데 미국의 움직임이 있다.

한-미-일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기사 사례
   

한반도 문제라면 흔히 남북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언론이 그 문제를 빈번하게 다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론의 보도내용이 항상 전방위적이거나 심층적인 것만은 아니다. 북핵, 개성공단 등을 키워드로 떠올리는 것은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는/있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다루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기화로 한반도를 다시 100년 전 정치/역사 지형으로 되돌리려 한다면? 언론이 눈감아도 될 일일까?

조선일보 3월 29일치 1면 「美, 원자력협정 초강수」 보도, 경향신문의 4월 5일치 사설 「한반도 위기, 이제는 퇴로 찾을 때다」. 한겨레의 4월 5일치 1면 「‘끝장’ 치닫는 한반도…유일한 출구는 결국 대화뿐」과 일련의 보도는 역설적이게도 한반도 안 만이 아니라 밖의 움직임에도 국민의 눈을 향하게 한다. 보도의  행간에서 한반도의 약화를 노리는 세력의 움직임을 읽게 하는 것이 있다.

   
▲ <한겨레> 2013년 4월 5일자 1면

핵농축·재처리 권한 영구 포기하라고?

「한국의 핵농축·재처리 권한 영구 포기 추진」이란 작은 제목을 붙인 조선일보 관련 기사를 보노라면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되는데…’라는 의문을 저절로 가지게 된다.

   
▲ <조선일보> 2013년 3월 29일자 1면

미국은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할 때 한국 정부가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기를 바라는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미국은 외국과 새로 원자력협정을 체결할 때 ‘골드 스탠더드’(황금 기준)로 불리는 ‘농축·재처리 권한 포기 명시’를 관철하고 있는데 한국에도 이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운영 중인 한·미 원자력협정보다 더 후퇴하는 것으로 저농축우라늄 생산 및 재처리 권한을 확보하려는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이 문제는 북핵에 한·미가 공조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미지수이지만 그 답은 1905년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로 묵인하는 대신 필리핀을 미국의 식민지로 묵인 받은 태프트-카츠라 밀약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그 과정에서 이미 나와 있다. 미국과 일본은 러시아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일본에는 한국과 우리민족을 일본의 식민지 처분에 넘기는 데 합의했다. 미국은 필리핀을 홍콩처럼 키우겠다는 명분으로 스페인과 전쟁을 해서 필리핀을 점령, 식민지로 삼았다. 제국주의 식민지 경쟁을 기획, 주도한 것인데 명분도 자기네들 마음대로, 비밀협정도 자기네들 마음대로였다.

1898년 이전 미국의 정치·군사적 개입 사례
   
▲ 출처 : Frey 2004에서 수정, 20세기 미제국 행보의 역사적 회고, 세계지역연구논총 2005. 제23집 1호 p.8 전재

1898-1934년까지 미국의 정치·군사적 개입 사례
   
▲ 출처 : Frey 2004에서 수정, 20세기 미제국 행보의 역사적 회고, 세계지역연구논총 2005. 제23집 1호 p.10 전재

냉전시기 미국의 정치·군사적 개입 사례
   
▲ 출처 : Frey 2004에서 보완, 수정, 20세기 미제국 행보의 역사적 회고, 세계지역연구논총 2005. 제23집 1호 p.13 전재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정치·군사적 개입 사례
   
▲ 출처 : 20세기 미제국 행보의 역사적 회고, 세계지역연구논총 2005. 제23집 1호 p.15 전재

한-미-일 3각관계, 중심은 언제나 ‘미-일’

「한국의 핵농축·재처리 권한 영구 포기 추진」 보도가 미국의 의지대로 실현된다면 한국의 군사주권, 나아가 국체의 상징인 주권은 어떻게 되는가. 이러다간 우리나라가 미국의 식민지나 한 주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품게 된다. 실제로 미국이 조선왕조와 수호조규(수교조약)을 체결한 이후 행보를 보면 이런 의구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정도로 수교 당사국을 철저히 배신했다. 미국이 관심을 보인 국가는 일본이었지 한국이 아니었다. 한-미-일 3각 관계에서 중심은 미-일이었다. 태프트-카츠라 밀약을 체결하던 해인 1905년 1월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헤이 장관에게 이런 유명한(?) 말을 했다. “우리가 한국을 위하여 일본에 대항, 간여할 가능성은 없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 방을 날릴 수 없지 않은가?”

미국은 위의 표에서 보듯이 19세기부터 최근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정세를 자국에 이로운 명분으로 가공해서 제국주의 정책으로 대응해왔다. 한 학자(김영호)는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해 학술 저널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 속성, 약탈적 제국주의와 다르지 않아”

오늘날의 미국 대외정책 기조를 과거의 식민주의에 기초한 제국주의로 바라보는 것은 커다란 오류를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정책 기조가 영토주의의 형태를 벗어났을지는 몰라도 민족국가의 경계를 벗어나 전세계적으로 통합되는 형태의 제국이 아니라 여전히 미국을 중심으로 비미국적인 것들과 경쟁하며 생존하기 위해 팽창하려 한다는 속성을 나타낸다면 이는 전통적인 약탈적 제국주의와 크게 다르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밑줄 강조 : 필자)
 
운산금광 약탈의 교훈

의사·개신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왔던 알렌은 미국 공사로 변신한 후 당시 생산량 면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던 평안도 운산금광을 미국 기업가들에게 넘기도록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명분은 미국으로 하여금 조선왕국의 독립을 지켜내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미국인 기업가들(동양합동광업주식회사 OCMC를 세웠다)은 1897년 운산금광을 500만 달러에 인수한 뒤 매년 50만~300만 달러 상당의 금을 40년간 캐내갔다. OCMC는 엄청난 수익을 챙겼는데 배당금으로만 초기투자금의 3배인 1,438만 달러에 달했다. OCMC는 1939년엔 일본광업주식회사에 운산금광을 800만 달러에 매각했다. OCMC에 참여해 이익을 챙긴 한국인 참여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조선왕국 독립 지켜내기’도 지키지 않았다.

선교사들, 우리민족, 일본인에 동화될 것 대비 일본어 ‘열공’
 
1800년대 말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은 교육·의료 등 사업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이들은 미국-스페인 전쟁이 벌어지자 당연히 미국 편에 선 사실이 독립신문 영문판에 자세하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이익을 위해 주력했다. 미국상품을 기독교 홍보물을 통해 우리 농촌에 문명의 이기로서 보급했다. 개신교 선교사를 대표한 해리스와 이토오 히로부미가 맺은 정교분리 협정을 내세워 우리 민족에게 한국을 침략하는 일본은 문명국가이므로 후진국이 문명국의 지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일본에 맞선 의병전쟁에 개신교 신자들이 참여하는 것조차 막았다. 미국 출신 개신교 선교사들은 본국과 일본이 중국 시장·동남아시아 자원을 둘러싸고 갈등관계가 깊어가자 1940년부터는 우리 민족 개신교신자들에 앞서 일본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민족이 일본민족에게 동화됐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 미션필드 1940년 1월호-조선인이 일인에 동화됐을 때를 대비, 미국 선교사의 일본어 학습 습득, 준비 태만을 자문하는 글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것은 3년 9개월에 불과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면서 전쟁이 불붙었고 1945년 8월 15일 미국에 항복했다. 그 이후 미국과 일본은 철혈 같은 동맹국으로 복귀했다. 독도문제가 꼬인 것도 결국 미-일 강화조약 과정에서 비롯됐다.

미국에게 한국은 늘 일본 지키는 전초

한-미-일 관계에서 한국은 항상 일본을 위한 전초기지로서, 일본의 이익을 위한 약탈대상으로 미국과 일본에 고려돼 왔다. 우리는 미국과 접촉을 개시한 이래 처음에는 제국주의의 충실한 시민-첨병으로서의 선교사에 의해 종교의 자유라는 명분으로 이용당해왔다. 나아가 미국과 일본은 태프트-카츠라 밀약에 의해 한국을 점령,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잠시 미국과 일본은 3년여 전쟁 상태에 들어가기도 했으나 여전히 동맹국이다. 미-일 관계에서 한국은 없었다.

역사에서 답 찾아야

역사는 반복된다. 그래서 역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은 어떠한 외세에 대해서도, 외세의 어떠한 명분에 대해서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힌국의 핵농축·재처리 권한 영구 포기 추진」 「한반도 위기, 이제는 퇴로 찾을 때다」 「‘끝장’ 치닫는 한반도…유일한 출구는 결국 대화뿐」 같은 보도는 한반도 안의 문제와 밖의 움직임을 구별해야 할 필요성을 시사한 것에 불과하다. 그 필요성은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자주, 자유, 주권, 민족-로 구체적으로 모아져야 한다.

   





[평화뉴스 - 미디어창 227]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 미션필드 1940년 1월호 “선교노선을 개혁하고 전진하라”(“Reform the Line and Advance"). "1939년을 평가하다"(Survey for 1939)- 일본이 중국 침략을 확대하면서 미국은 중국시장을 상실할 위기에 처한 1939년 미국 선교사들이 1939년의 선교환경을 전면 재검토, 선교노선과 전략을 개혁하려는 것이지만 동맹국 일본에 대한 미국 본토의 정치·경제·군사 대응과 맥이 닿아 있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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