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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의 차별과 배제
[오택진 칼럼] '배제' 당하는 입장에 서본다면...나눔과 배려가 절실하다
2016년 02월 01일 (월) 10:24:46 평화뉴스 pnnews@pn.or.kr

 학교,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사

 한 학교의 방과 후 학교 A 선생님의 이야기다. 수업시간에 맞춰 출근하는데 예상치 못하게 도로가 막혔고 급하게 간다고 갔는데도 5분 정도 늦었다. 학교 안에 주차공간은 이미 꽉 차있고 부득이 이중주차를 했단다. ‘방과 후 교사인데 급해서 이중주차하고 가니 연락 달라’는 메모도 남겼다. 수업을 마칠 때쯤 학교 선생님이 ‘자기 차가 나가야한다’며 전화가 와서 차를 빼러 나갔고 ‘죄송하다’고 하고 다시 수업을 마쳤단다. 그리고 며칠 후 그 학교에서는 A 선생님의 ‘이중주차’ 문제가 교무회의에 올랐단다. 결론은 ‘방과 후 학교 선생님들은 학교 안에 주차하지 못하게 한다’였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조그만 불편함도 보다 나은 합리적인 대책을 세울 수 있다면 의논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학교의 ‘교무회의’에 부쳐진 안건은 누구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는가? 이날 A 선생님의 이중주차로 인해 자기 차가 나가는데 조금 불편함을 겪었던 선생님의 불편함이었다. 그리고 이 선생님은 이를 ‘교무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했고 정규직 교사들은 방과 후 교사를 자기들의 주차공간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했다. 그러니까 주차공간 또는 주차질서의 문제는 정규직 교사와 계약직 방과 후 학교 선생님들의 공동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정규직 교사들이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방과 후 학교 선생님으로 인한 불편함을 겪은 문제로 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방과 후 학교 선생님들은 학교 밖에 주차하라’고 친절하게(?) 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정규직과 계약직 교사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공동체적 마음이 있었다면 논의의 ‘시작’과 ‘대안’은 달라졌을 것이다. 다양한 해결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주차공간을 어떻게 더 확보할 것인가? 공간이 없다면 자가용 소유자들의 홀짝제 운영 등 다양한 공동의 해결대책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불편함을 느낀 정규직 교사는 이미 A 선생님을 문제를 일으킨 대상으로 생각했고 이의 문제제기에 정규직 교사들이 동의한 것이다. 누군가는 침묵으로 묵인했을 것이다. 이미 그들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그 전화를 받은 A 선생님은 불쾌감에 방과 후 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이 학교에 다니는 다른 방과 후 학교 선생님들은 어땠을까? 심한 불쾌감을 느끼면서도 ‘예. 알겠습니다’하고 계속 수업을 나가야 하는 선생님들도 있었을 것이다. 보통사람이 보통사람에게 저지르는 차별은 이렇게 일어난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일상의 권리(누군가에게는 기득권처럼 보이는)를 지키기 위해서 또 다른 누군가를 배제시키는 것이다.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내정'된 공개모집

 ‘미술’ 강의를 하는 K선생님이 겪은 이야기다. 한 학교에서 방과 후 학교 수업으로 ‘미술’수업을 하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검색을 하다가 K선생님께 연락이 왔단다. 아이들과 ‘미술’수업을 창의적으로 하고 싶은데 선생님께서 맡아주시면 좋겠다고 했고, K선생님은 수업시간과 수업료를 확인하고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 서류를 제출하셔야 된다면서 인터넷 주소를 보냈다. K선생님이 그 주소로 들어가 보니 그 학교에서 그 수업을 ‘공개모집’하는 것이었고 거기에 자기가 서류를 내야하는 것이었다. K선생님은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분명히 자신에게 이 수업을 맡아달라고 먼저 연락이 왔는데 ‘공개모집’에 서류를 내라니. K선생님은 학교 측에 전화를 걸었고 학교 측은 규정상 형식적으로 ‘공개모집’을 하는 것이고 서류만 내시면 선생님이 하는 걸로 하는 것이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했다. K선생님은 이를 거절했다. ‘공개모집’을 하는데 사람을 내정하면 여기에 ‘희망’을 걸고 신청하는 다른 선생님들은 어떻게 되냐면서.

 K 선생님은 그냥 ‘알았다’고 하고 수업을 나갈까 생각도 했단다. 팍팍한 자신의 주머니 사정도 그렇고 내가 뭐 잘났다고 이렇게까지 원칙적으로 하나 싶기도 했단다. 그런데 만약 수업을 하게 되면 학생들의 눈빛을 보면서 ‘나 공개모집했는데 사실은 내정되어 이 수업을 하는 거야’라는 죄책감을 이길 수 없겠더란다. 내가 본 K선생님은 정말 창의적인 미술수업을 하신다. 아마도 이 학교의 담당선생님이 검색을 통해 좋은 선생님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도 좋은 수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K선생님을 아이들과 만나게 하는 방법이 이 수업에 생계와 자신의 꿈을 걸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배제’하는 부당한 방법이었다.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누군가의 ‘땀의 가치’를 펼쳐 볼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K선생님과 이 학교 담당선생님은 인맥과 학맥으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뇌물이 오고 가지도 않았다. ‘차별과 배제’는 뇌물과 학연 지연을 통한 부당한 관계가 아니어도 가능하다.

 자기 것 내놓지 않고 남들 주머니만 짜내는

 이번엔 사립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비정규교수 S의 이야기다. 학기가 끝나고 학과장님이 차 한잔하자고 해서 얘기를 나눴단다.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학과장님이 ‘등록금을 인상해야한다’며 주장하셨단다. 학교 발전기금도 잘 안 모이고 교육부 지원도 줄어들고 큰일이란다. S선생님 같은 비정규교수를 계속 고용하려면 등록금을 올리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고. 안 그러면 비정규교수의 고용숫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S 선생님은 왜 그 책임을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전가하냐고 반대한다고 했다. 학과장님이 ‘선생님! 등록금 안 올리면 선생님 수업 못 할수도 있다’고 했단다. S선생님은 내가 이 학교에서 강의 안 해도 되니까 등록금 올리지 말라면서 열변을 토했다. 학과장님은 헤어지면서 ‘그럼 우리 등록금 인상 얘기는 없던 걸로 하지요“라며 웃음 띈 얼굴로 얘기했단다.

 이 학과장님은 본인이 몸담고 있는 학교가 걱정이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재정상태가 열악하면 학교가 발전하지 못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경쟁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재원을 마련하고 투자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대학은 돈을 만들어야 하고 외부에서 못 만들면 등록금을 올려서라도 만들어야 한다. 사립대학과 국공립대학이 다르지 않다. 등록금이 워낙 비싸서 여론에 못 이겨 최근 몇 년간 동결되었지만 등록금 인상률이 물가인상률보다 몇배나 더 높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 아닌가.

 그런데 왜 이 학과장님은 열악한 학교의 재정문제의 대책을 학생들의 등록금 인상 또는 비정규교수의 해고 등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스스로의 연봉 인하나 동결, 안식년 폐지 등의 자기 양보적인 방법은 왜 선택사항에 없는가 말이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해서 얼마의 돈이 만들어지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문제의 해결에서 자신의 책임을 제외시킨다. 그러니 스스로가 들여야 할 노력은 빠진다. 공동체가 아닌 것이다. 운명을 같이하지도 책임을 같이 나누지도 않는다. 비정규교수의 일자리를 줄이거나 다수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주머니를 더 짜내는 방법으로 본인의 연봉을 지키는 것은 아닌가 말이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들이 자기 것은 하나도 내주지 않은 채, 남들을 생각한다면서 생각한 방법이 남들의 돈을 더 걷어서 남들의 고용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보장된 정년, 연구실, 안식년 등 온갖 혜택과 권한을 누리는 정교수가 시간당 4, 5만원, 월급 50만원 남짓의 비정규교수에게 학교 상황이 안 좋으니 잘못하면 당신을 해고해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같이 차 마시면 앉아서 우아하게(?) 하는 것이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일상의 기득권을 1도 내려놓지 않으면서 하는 교육은 배움은 대학은 도대체 어떤 것을 가르칠 수 있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의문이다.

 배제당하는 입장에 서보지 않았기 때문에

 앞의 세 이야기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듣고 보는 이야기이다. 기업의 사장과 직원, 집주인과 세입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일어나고 우리가 직접 겪는 일들이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권력의 추악함과 대기업의 사악함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다가온다. 직접적으로 피해자가 되지 않는 한 피부로 와 닿지 않을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범한 보통사람들, 얼굴을 대면하고 있는 이웃들의 ‘차별과 배제’는 훨씬 센 강도의 상처로 다가온다. 스스로들은 누군가를 배제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현재까지 누리던 것을 누리고 혹은 좀더 좋은 것을 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뿐인 것이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배제하기 위한 의도는 절대 없었을 것이다. 배제당할 사람의 입장에 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를 박탈당하고 차별을 당할 사람들의 삶에서 세상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아직은 따뜻한 햇볕이 비추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늘에 선 사람들은 학교 밖에 주차하기 위해서 무료주차공간을 찾아야 한다. 혹은 불법주차를 하더라도 단속되지 않는 공간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조금 더 일찍 움직여야 하고 그렇게라도 방과 후 수업을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미술수업 ‘공모’에 응하면서 주제와 커리큘럼 수업방법 등에 대해 고민고민 하여 정리된 계획서를 제출한다. 합격하여 수업을 맡아 새로운 꿈을 키우고 있을 사람들이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미있고 알차게 미술수업을 진행해서 더 많은 학교로 보따리를 싸 들고 다니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도 나도 우리 모두가 따뜻한 햇볕에 비추는 곳에 서고 싶다. 써늘한 그늘에 선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햇볕에 비추는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눌 ‘온기’가 없다. 따뜻한 햇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의 나눔과 양보 배려가 절실하다.

 사회구조적인 문제 본질적 문제를 제외하고 개인의 사회적 책무를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자행되고 있는 권력과 자본의 차별과 배제는 이루 말 할 수 없다. 이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은 심각하다. 4월 총선과 내년 12월 대선이 다가오면서 또 다시 권력구조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시기다. 정치와 제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와 함께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가 겪고 보고 있는 차별과 배제가 함께 바뀌어야 한다. 권력 상층부가 바뀌면 제도가 바뀌어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으나 개개인의 공동체의식이 자연스럽게 성장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너와 내가 함께 산다는 생각이 어떻게 갑자기 생길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을 바꾸는 일과 나의 일상을, 삶의 터전에서 오늘 바꿀 수 있는 일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

 후배 L은 한 벤처기업의 임원이다. 며칠 전 그에게 들은 얘기는 내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작년 매출이 회사 필수운영경비의 1/5 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회사를 운영하려면 인건비 사무실 임대료 등등 50억 원 정도 드는데 1년 매출은 10억 이었단다. 아니 어떻게 안 망하고 살아남았느냐고 물었다. 다행히도 몇 년 전에 대기업과 큰 사업을 해서 순이익이 많이 남았고 그 여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했다. 경영하는 입장에서 직원들의 해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어봤다. 고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CEO도 그렇고 그동안 함께 고생한 직원들인데 최대한 버텨보자고 했단다. 이 회사가 버틸 수 있는 재정 여력은 올해까지란다. 올해까지 직원 월급을 줄 수 있는 상황인테 올해 실적이 좋지 않으면 회사로서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이런 상황을 맞는 다른 회사들의 결정은 회생불가능의 경영상태가 오기 전에 ‘정리해고’를 통해 재정여력을 비축하고 연구개발 또는 영업을 통해 다음을 도모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직원들 모두 해고시키고, CEO 가족들이 남은 회사자본을 월급으로 몇 년간 계속 받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모르겠다. 이 회사의 경우 ‘경영’의 입장에서 올바른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회사는 적어도 ‘공동체’로 살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졌다. 매월 매출과 지출을 직원들에게 공개하고 퇴직금은 사외적립해 두어서 회사가 묻을 닫는 경우에도 퇴직금은 완벽하게 보장한단다.

‘성장’할 때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쇠락’할 때 자르는 것이 상식이 되어 버린 사회다. ‘고객’일 때 사랑하다고 하고 ‘고객’이 아닐 때는 배제시킨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사람으로 존중받고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회다. 나의 일상에서 시작하고 일상의 틀을 규정하는 정치를 함께 바꾸자.

   





[오택진 칼럼] 31
오택진 / <연구공간Q+> 대표.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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