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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을 통해 철학을 다시 소환하다"
이강화 / 『헤겔의 체계철학』(이재성 지음 | 계명대학교출판부 펴냄 | 2017)
2018년 07월 10일 (화) 16:40:30 평화뉴스 pnnews@pn.or.kr

1980년대 이후 헤겔에 관한 관심은 당대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과 맞물려 국내외적으로 크게 고조되었다. 국내의 경우, 헤겔 철학 자체에 대한 관심도 있었지만, 당시에 커다란 지적 관심사로 떠오른, 그러나 오랫동안 금지와 억압의 영역이었던 마르크스 철학이나 정치경제학 탐구를 위한 우회적 경로로서 헤겔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1989년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는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더 이상 이념적 차원에서 정치적 의심을 받지 않고, 사상 그 자체를 과학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흔히 ‘헤겔 르네상스’라고 불리우는 국제적 차원에서의 헤겔연구로 구체화되었다. 1983년 미국헤겔협회의 기관지 ‘미네르바의 올빼미’에 발표한 ‘1945년 이후 영어권에서 일어난 헤겔 르네상스’에서 H. S. 해리스는 2차 대전, 특히 1960년대 이후 북미 영어권에서 헤겔 연구 문헌이 늘어나는 현상을 ‘헤겔 르네상스’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독일의 H. G. 가다머는 “유럽에서 헤겔철학이 무슨 이유로 그렇게 빨리 종언을 고했는가?”를 물으면서 그 이유를 “과학의 모든 분야에서 현대적 연구의 융성”에서 찾았다. 1980년대 초 두 대가의 이런 상반된 평가는 헤겔 연구가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저물어 가는 반면,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에서는 살아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한편, 최근 내한한 국제헤겔연맹 의장이자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인 안드레아스 아른트는 “헤겔 철학은 근대를 역사적으로 반성한 것이기에 헤겔 철학의 새로움은 구조에 대한 기술 뿐 아니라, 역사적 과정을 같이 사유했다는데 있으며, 특히 그의 변증법은 ‘복합적 구조들의 역사적 발전’을 기술하는데 그 어떤 방법론보다 탁월한 도구이기에 변증법을 통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고 올바르게 보고 기술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한국에서 헤겔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시들해진 것도 유럽과 비슷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인문학을 대표하는 철학은 존폐위기에 처해있고, 전공강좌들 역시 고사 직전이다. 특히, 헤겔철학은 특유의 ‘관념성’과 ‘난해함’으로 인해서 철학 내에서도 관심이 계속 감소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도 헤겔전공자들의 학문적 노력은 지속되었고 다양한 연구문헌들이 발간되었다. 많은 입문서 혹은 연구서들이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헤겔 철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동원된 개념들과 용어들이 아직도 전통적인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러한 개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헤겔에 대한 일정 수준의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는 공통되는 한계를 보여주었다.

   
 

이런 차원에서 이재성 교수(이하 저자)의 <헤겔의 체계철학>은 헤겔 철학의 학적, 사상사적 의미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 설명한다는 점에서 종래의 개설서와 차별성을 보여주는 근래의 가장 생산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술 목적은 저자가 책머리에서 인용한 테리 이글턴의 글에서 잘 나타나는데, 이 글에서 이글턴은 자본주의적 모더니티가 인간적 공유와 연대적 가치보다 권력과 이윤을, 물질적 생존문제에 전념하는 생활방식을, 공통된 삶의 공동체 형성보다는 관리와 조작을, 이성 자체보다는 계산된 이성을, 도덕성 보다는 회의실과 침실과 관련된 개인적인 일에 전념하게 하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 이재성(계명대 교수)
이런 관점을 공유하면서 저자는 근대의 산물인 ‘보편적 이성’의 가능성 또는 ’이성‘ 일반의 가능성에 대한 현대의 특수주의적, 상대주의적, 회의주의적, 허무주의적 의심이 우리 시대에 팽배해졌음을, 그 결과 철학은 ’주체의 죽음‘, ’철학의 종언‘, ’역사의 종말‘, ’이데올로기의 종언‘으로 귀결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철학자들은 통합과 포섭이 불가능한 것, 보편적 이성의 공통분모로 환원할 수 없는 것과의 연대를 시작하였고, 이성과 진리에 대한 비판, 거부 그리고 무관심은 결국 ’도덕적인 것‘의 거부와 단절로 확장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저자는 우리 시대에 가장 절실한 ’도덕적 이성의 현실성‘ 회복을 위해서 헤겔을 다시 소환해야함을 강조한다. 그런데, 헤겔을 다시 소환하려면 그를 새롭게 알아가는 방식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헤겔의 이러한 ’재소환‘과 그 당위성을 설명하려는 저자의 새로운 헤겔 독해방식을 전개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구조는 전체 3부로 구성되어있으며, 제1부가 헤겔의 논리학, 제2부가 헤겔의 자연철학, 제3부가 헤겔의 정신철학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순서는 헤겔이 구상한 자신의 철학체계이자, 헤겔에 대한 입문자들의 통상적인 접근방식이다. 그러나 제1부 제1장 ‘<정신현상학>에 나타난 상호주관성과 소통 그리고 욕망의 변증법’에서부터 제3부 5장 ‘헤겔의 정치철학’까지 총 11개의 장에서 전개되는 저자의 헤겔읽기는 이 책이 종래의 도식적인 해석을 뛰어넘은 새로운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안내서임을 말해주고 있다. 새로운 입문서라는 기능에 충실하기 위해서 저자는 종전의 일반적인 개념이나 용어 대신, 최근 헤겔철학에서 제기된 주제와 논쟁점에 대한 포괄적이고도 치밀한 해설과 설명을 토대로 하면서 저자의 관점을 재구성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선, 제1부 제1장 ‘<정신현상학>에 나타난 상호주관성과 소통 그리고 욕망의 변증법’에서 저자는 현대철학의 언어적 전회와 관련하여 헤겔의 객관적 관념론을 새롭게 분석한다. 이를 위해서 철학과 논리학에서 논의되는 정신 개념의 오랜 역사를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여기에서 서양철학에서 정신 개념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철학의 역사성을 담지하는 심오하고 복잡한 개념들로 구성되어있고, 이 과정에서 이 개념은 변형되거나 발전되면서 오랫동안 수많은 지식과 사유의 토대로서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변천과정을 통해서 어떤 개념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서 발전해왔는지를 알 수 있기에 철학적 개념과 주제는 특정 개인의 사상뿐만 아니라, 특정 시대와 역사를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헤겔의 재소환을 위해서 헤겔철학의 개념들과 주제를 작금의 현실문제와 관련하여 설명함으로써 저자가 강조하려는 것은 헤겔의 철학적 개념이나 당대의 사회적 문제들이 우리들과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통시적 관점 이상으로 공시적 관점에서 헤겔 철학은 우리가 처한 시대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제2부 헤겔의 자연철학, 제3장 ‘자연철학: 자연의 구조에 대한 일반적 고찰’, 4절 ‘헤겔의 발전이론’에서 헤겔의 발전이론과 다윈의 진화론과의 비교하면서 헤겔의 생각과 다윈의 생각의 일치 보다는 불일치를 강조하는데, 여기에서 순수하게 ‘양적’으로 수행되는 다윈 진화론의 부족한 부분을 헤겔의 발전이론에서의 ‘질적’ 계기로 보완할 수 있다는 논리는 종래의 헤겔 논증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탁월한 관점이다.

철학과 현실의 관련성은 실천적 영역인 윤리학과 정치학에서 잘 나타나는데 저자는 이를 <법철학>에 대한 해설에서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다. 제3부 헤겔의 정신철학, 제2장 ‘루소의 정치철학에 대한 헤겔의 비판’, 2절 ‘루소와 헤겔의 이성적 공민’에서 저자는 루소와 헤겔의 정치철학적 입장의 구별점은 헤겔이 루소가 자유의지의 현존으로서의 법을 개념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데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헤겔의 <법철학>에서 시민사회는 역사적 이행이라기보다는 ‘자유의 전개’라는 변증법적 과정의 한 극을 의미하지만, 헤겔이 구상하고 있는 시민사회는 20세기 보수적인 사회비판적 사유들에 의해 사칭된 국가에 대립하는 반정립을 의미하지 않음을 재차 강조한다.

책머리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헤겔의 절대정신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저자의 관점에서 주제나 체계를 자유롭게 재배열할 수 있기에 반드시 헤겔 철학의 전형적인 체계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헤겔철학의 최종적 완성이 절대정신에서 구현되며, 철학체계 내에서 절대자를 직관하고 표상하고 사유하는 예술, 종교, 철학의 위치를 고려한다면 약간의 아쉬움을 표명하게 된다. 그럼에도 시대적 문제의 대안적 이념으로서 헤겔철학의 의미를 진지하게 되새겨보는 것이 우리 사회를 위한 의식을 풍부하게 한다는 저자의 견해에 동의 한다면,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위한 진지한 학적 사유의 결과물인 이 책을 함께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의도와 관점을 수용하면서 사색의 과정에 동참하는 지적인 작업이 될 것이며, 이 책을 덮었을 때 독자들은 헤겔철학이 인도하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이상적인 관념의 여행에 함께 하였던 자신을 즐거운 마음으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책 속의 길] 140
이강화 /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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