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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가 되는 시간들
[이재동 칼럼] "제한된 시간, 많은 변화들이 더 많은 시간을 만든다"
2019년 12월 30일 (월) 15:23:13 평화뉴스 이재동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시간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느냐, 라는 과학철학적 물음에 대한 강론에 어떤 청년이 멋진 댓글을 달았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내가 여자들에게 시간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다들 시간이 없다고 답하네요."

 우리는 늘 시간 속에 있고 시간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시간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답할 수 없다. 근본적인 개념일수록 설명하기는 더 힘들어진다. 시간이 공간과 함께 빅뱅으로 생겨났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의 능력으로는 시간이 있기 전과 시간이 소멸한 이후를 생각할 수 없기에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하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는 팽창하고 있다는 우주의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여 공간이 무한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간은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고 측정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도 있다. 세상의 변화를 통하여 시간을 느끼는 것이다. 인간이 이 변화의 흐름을 나누고 묶어 단위를 매기고 기념하는 것이 문명의 시작이 되었다.

 한 묶음의 시간의 말미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즈음 그 묶음 속에 담긴 변화들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실천하려는 다짐들을 한다. 과거는 개인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되돌아봄과 각성을 통한 실천을 통하여 이미 존재하지 않는 과거는 ‘현재적인 것’이 되고 미래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환갑을 맞았었다. 늙을수록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하는 느낌은 공통된 것 같다. 젊은 시절이 갖는 ‘삶의 다채로움’은 그 시간을 유별나게 만드는 ‘시간의 표지’들을 많이 만들지만, 중년 이후의 고정된 삶이 가져오는 단조로운 시간들 속에서는 기억할 만한 일들이 많지 않다. 우리가 몇 년 전의 일들보다 스무 살 때의 일들을 더 잘 기억하는 것도 이런 이유인 듯하다.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은 장편소설 <마의 산>에서 이러한 시간 개념에 관하여 설명한 적이 있다.
"하루하루가 똑같을 때는 매일이 똑같이 느껴진다. 하루하루가 완전히 똑같이 흘러간다면, 아무리 긴 일생도 짧게 느껴질 것이다...(역으로 충만하고 흥미로운 일들은) 시간에 무게와 폭과 부피를 주어 그 다사다난한 세월이 아무 일도 없는 세월보다 느리게 느껴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공허한 세월은 바람이 한번 불면 사라져버린다."

   
▲ 어느 낙조(落照)...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그렇다면 제한된 시간을 좀 더 충실하게 사는 방법은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변화들은 더 많은 시간을 만든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생각들을 반기며, 더 많이 감탄하고, 기뻐하고, 분노할 줄 아는 것이 그 비결이겠다.

 옛날 불란서어를 공부할 때, 사람의 나이를 말할 때 다른 언어들과는 달리 존재나 상태를 나타내는 조동사가 아니라 소유를 나타내는 조동사를 쓴다는 것이 특이했다. 불란서어에서는 ‘나는 60살이다.’가 아니라, ‘나는 60년을 가지고 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세월에 있었던 모든 변화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면 지나간 시간들을 나의 소유물로 내세우고 자랑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무심히 지나는 시간에 어떤 경계표를 세우고 이를 넘는 것을 개인이든 크고 작은 집단이든 떠들썩하게 축하하고 격려하는 사회적 관습은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결단하고, 실천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함이며, 여러 분야에서 이런 기제가 잘 작동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개인으로 보더라도 지나간 시간이 이러한 반성적 과정을 통하여 현재적인 것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이 그 시간들을 자신의 것으로서 자랑할 수 있는 이유이며, 참된 어른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재동 칼럼 4]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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