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보름달에 비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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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칼럼]


올 추석에는 달님을 실컷 올려다 봤다. 연휴 동안 매일 저녁 밖으로 나가 어둡고 맑은 밤하늘에 깊이 뜬 달을 바라보다가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다. 유독 맑은 날씨였고, 차례를 지내지 않고 보내는 추석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가위와 정월 대보름 밤이면 아이들을 손을 잡고 나가서 달님에게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빌라고 하면 꼬맹이들은 제 소원이 잘 생각나지 않는지 엄마 소원은 뭐냐고 되물었다. 그 무렵 나는 우리 가족 다 건강하게 잘 지내게 해달라고 빌고, 두 아이 씩씩하게 잘 자라게 해달라고 빌고, 우리나라 통일되라고 빌고, 노동자들이 잘사는 세상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것 같다. 욕심 없는 바램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루고 싶은 게 많은 마음이었다.

어느듯 대보름 둥근 달님을 바라다 봐도 소원 같은 게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주로 씩씩하게 자라 이제 재난지원금을 각자 계좌로 받을 만큼 온전한 개인이 되었다. 부모라도 대신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되도록 안 하는 게 더 나을 듯하다. 지금까지 가족 모두 큰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인재(人災)가 아니라면 자연사(自然死)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류 등장 이후 가장 긴 수명을 누리는 시대에 더 오래 살게 해달라고 빌 필요는 없겠다. 혹시 너무 오래 살지 않도록 해달라고 비는 게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통일은 되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더 소원하는 것은 남과 북이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체제를 다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서로 간 평화와 공존을 도모하고 실현하는 것이 더 좋겠다.

노동자가 잘사는 세상은 여전한 바램이다. 인간은 누구도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다. 모두 타인에 기대어 살아간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공간은 타인의 노동의 공간이기도 하다. 자신의 노동을 통해 스스로의 생존과 삶을 영위하고 타인의 삶과 사회의 유지에 기여하면서,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그러나, 세상은 노동을 하찮게 취급하고 노동을 감추고 지워버린다. 턱없이 낮은 값이 매겨진 노동, 하찮게 평가되는 노동, 지워져 버린 노동이 천지다. 싼값과 낮은 가치 평가로 인해 삶마저 한없이 낮아진 사람들이 그 수렁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지나친 친절, 헌신, 초저가, 로켓 배송의 뒷면에 있는 노동자의 얼굴을 그려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새로운 소원을 하나 보태본다. 좋아하는 도서 팟캐스트에서 두 젊은 여성 아티스트의 서간집  『괄호가 많은 편지』를 다루는 편을 들었다. 저자의 한 사람인 슬릭은 여성 래퍼이자 페미니스트이고 비건이었다. 슬릭은 비건이 된 이유를 “아무것도 해치지 않고 살고 싶어서"라고 했다.

『괄호가 많은 편지』(슬릭, 이랑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괄호가 많은 편지』(슬릭, 이랑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책에서 그는 "<씨스피라시>(다큐멘터리)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바다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을 착취하는 일은 아주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공고한 시스템 아래 진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어업에 강제로 종사하게 된 사람 역시 노예제 수준의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선을 먹으면 그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공고한 시스템에 일조하게 됩니다. 동물권뿐만 아니라 인권 모독 그 자체죠."라고 말했다.

비건이 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될 수 있으면 되고 싶지만 못될 것 같다. (비건이 아닌 것이 훨씬 살기 편하니까) 못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자고로 삶의 목표는 내가 더 강해지고(건강이든, 생명이든), 더 성취하고(사적이든 공적이든), 더 소유하는(경치나 공기 같은 자연마저도) 것이라고 알았건만, ’다른 존재들을 해치지 않고 사는 꿈‘이라니…… 그 꿈을 곱씹으며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앞으로도(영원히는 아니길) 공장식 축산에 일조하면서 계속 동물을 잔인하게 해치며 살 것이다. 그래도 고기를 먹으면 내가 동물의 생명과 삶을 해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다른 존재를 해치는 것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매일 매일 애쓰며 살고 싶다. 할 수 있다면 과감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은정 칼럼 20]
정은정 / 대구노동세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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