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할 권리, 정치할 권리. 턱을 허물고 판을 넓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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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움(어린보라 활동가)
청소년단체 <어린보라> '여차저차 교차성' 인터뷰 - 대구여성장애인연대 최현진 활동가

* <어린보라>는 '어린것들을 보라! + 어린것들의 페미니즘(보라색)'의 의미로, 2018년 스쿨미투를 계기로 탄생해 청소년 인권과 페미니즘의 교차성을 찾아가는 단체입니다. 대구에서 다양한 지역 인권 단체들과 연결되며 차근차근 교차성의 언어를 만들어가기 위해 '<여차저차 교차성> 대구지역 인권단체 네트워킹 연속 인터뷰 – 4월의 영차영차'를 기획하였고, 대구여성장애인연대가 그 첫 단체입니다


"여성장애인들과 함께 요구를 모으는, 11년차 시민단체 활동가 최현진입니다."

  대구여성장애인연대는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단체는 사무국(전체 활동)과 부설기관으로 나뉘고, 부설기관은 여성장애인 통합상담소, 보호작업장, 어울림센터로 구성되어있다. 통합상담소는 여성장애인을 내담자로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지원을 하는 상담기관이다. 보호작업장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여성장애인만 활동하는 작업장이다. 임가공을 주로 하는데, 일도 하면서 집에서 무료하게 지내는 시간을 줄여 발달장애인들의 사회생활을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여성장애인어울림센터는 여성장애인 교육지원사업을 하는 곳으로 보건복지부 사업 중 하나다.
 
대구여성장애인연대 최현진 활동가 / 사진. 일움(활동명) 대구청소년페미니스트모임 '어린보라' 활동가
대구여성장애인연대 최현진 활동가 / 사진. 일움(활동명) 대구청소년페미니스트모임 '어린보라' 활동가

 이와 관련해서 여성 장애인에게만 한정되는 교육 사업이 적절치 못하다며 사업을 축소시키려는 움직임이 오랫동안 있어왔고, 그에 따라 여성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이 사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투쟁해왔다고 한다. 그렇게 투쟁으로 유지되어 온 어울림센터까지, 각 부설기관에서는 고유의 업무를 계속 진행한다. 한편 법인에서는 장애인인권운동, 여성인권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시민단체 내에서 장애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대구여성장애인연대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여성장애인의 삶과 장애인 정책에 중심을 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여성장애인지원법제정, 여성장애인의 삶과 직결된 문제

 최현진 활동가는 단체에서 수년간 같은 이야기를 하는 현실이, 여성장애인 인권 보장의 속도가 무척이나 더딤을 반증한다고 설명했다. “여성장애운동은 전국적으로 여성장애인지원법 제정 운동을 진행 중이다. 폭력피해 여성장애인 쉼터 설치 등에 대해 여성장애인지원법이 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게 ‘법’인만큼 지선 대응 활동에서 역시 여성장애인지원조례 제정 운동이 있어왔다. 그 성과로 경남에서는 전국 최초로 여성장애인기본조례가 제정되었지만, 그 외의 지역은 여전히 투쟁 중인 상태다.”

 여성 장애인 쉼터 설치는 여성 장애인의 삶과 직결된 문제다. “여성 장애인들만 갈 수 있는 쉼터가 전국에 3개 정도로 굉장히 적다. 그나마 성폭력 피해 여성분들은 갈 곳이 조금 있는데 가정 폭력을 특화해서 여성 장애인들을 보호해 주는 곳은 없다.” “여성장애인들은 여성으로서의 차별과 장애인으로서의 차별을 함께 경험한다. 가정폭력을 경험하는 여성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보다 폭력적인 환경을 벗어나기가 더 힘들다. 현실적으로 이혼을 선택하고 싶어도 (원가정이 없으면) 나의 삶을 온전히 지탱할 수 없는 세상에서, 폭력적인 가정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폭력 피해 뿐만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자체에 여성장애인이 겪어야할 장애물이 너무 많다.”

시설에서의 주거권

 어린보라는 작년 7월, ‘청소년 쉼터 내 인권침해 대응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이어 여성 청소년 쉼터 내에서 고질적으로 발생하는 가정폭력 2차가해, 외출 금지, 폭언, 사생활 침해 등의 인권침해 사안들을 공론화했다. 한편으로 당시 현장에는 “사실 저 너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활동가의 발언도 있었다. 그의 발언처럼 우리는 인권친화적 청소년 쉼터를 넘어서, 청소년의 탈시설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청소년의 주거에는 아직 쉼터를 제외한 다른 대안이 사실상 부재하고, 계속하여 쉼터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삶들이 있으므로 우리는 기존의 인권침해적 쉼터를 개선하라 요구했다.

장애 진영에서도 마찬가지로 탈시설 이야기를 이어오지만, 쉼터조차 없는 현실에 놓인 가정폭력 피해 여성 장애인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우선 쉼터의 공간 보장이 중요한 목표가 된다. 그러나 결국 쉼터 시설의 보장과 입소자 인권 보장에 대한 투쟁만큼, 탈시설 투쟁도 중요하다. 시설 내의 시설화된 삶에 대한 저항은 곧 시설사회에 대한 저항으로 나아간다.
 
대구여성장애인연대 홈페이지
대구여성장애인연대 홈페이지

지방선거, 장애여성의 참정권은 어디에

 최현진 활동가는 이번 대선에서부터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뚜렷이 없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쪽은 아예 전무했고 민주당도 크게 많지 않았으며, 설령 있더라도 점자 공보물·쉬운 공보물 등의 부재로 장애 유형별로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뒤이어 발달장애인들의 경우, 주변인들의 의견으로 나의 결정권이 침해될 우려가 큰 구조에 놓여있는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최현진 활동가는 장애인 인권 활동가로서,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 실태가 열악한 가운데 경험하는 딜레마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한편으로 ‘장애인’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장애인들의 말을 진중히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맥락을 언급했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 많은 여성장애인들이 오해받는다. 그래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에서도 마치 비장애인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은 시선을 받고, 접근 자체가 박탈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당사자들에게 그런 경험은 굉장히 불쾌한 경험이다. 또 정신장애인의 경우 성격 자체가 이상한 사람으로나 대우 받는 경우가 있다. 필요한 의견을 말해도 괜히 딴지거는 사람처럼 보는 시선들. 장애인 당사자가 목소리를 온전히 내더라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 환경이 답답하다.”

또한 장애인들이 정책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면, 국민의 정당한 요구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사회복지서비스를 ‘또’ 원한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장애인들은 복지서비스를 받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인지한다. 왜 이들이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사회적 인프라 구축을 정당하게 요청하는 것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사회적 인프라를 장애인들의 입장에서 구축하는 것은 노인, 아동, 비장애인등 모두의 접근성이 된다. 우리의 요구를 복지로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권리 보장의 차원에서 무겁게 받아들이고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 약자만을 위한 특혜라는 구도에서 벗어나, 모두의 공간이 되기 위해 배제된 존재들의 권리를 외치는 것. 장애 운동은 계속해서 말해오고 있다.

장벽에 대한 투쟁길, 그 길의 장벽

 장애여성운동으로서 ‘당사자 투쟁’에 갖는 고민도 있었다. 비장애중심적 세상에서 장애여성의 경우 일상의 많은 영역에서 턱을 마주한다. ‘휠체어 접근성 없음’으로 대표되는 그 턱은, 일상에 촘촘히 펼쳐진다. “예를 들면 장애 여성이 출산을 한다 치면 출산할 안전한 병원이 없다. 그리고 저는 여기 와서 처음 느끼게 됐는데, 치과도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특성화된 치과가 있어야 되더라. 이분들이 이렇게 신체 자체가 비장애인들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그냥 누우면 완전히 목이 끊어질 듯이 아프다.” 최현진 활동가는 장애여성 당사자의 곁에서 알 수 있었던 세세한 차별들을 예시로 들었다. “당사자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삶의 어려움을 호명하려면 그들이 가장 잘 알지 않겠나.” 장애여성차별에 대한 투쟁은 장애여성의 삶의 언어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여성장애인의 삶의 장벽들은, 투쟁하는 삶 역시 상상이 어렵게 했다. “과거 대구여성장애인연대가 꾸려지며 모인 여성 장애인들이 고령화되어, 현 회원들은 투쟁에 함께할 힘이 부족한 상태라고 느껴진다. 온라인으로 소통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시는 분들도 많고. 이게 다른 여성계랑 참 다르다.” “대구여성장애인연대 회원은 월 3천원 회비를 낸다. 원래는 요리, 여행, 영화 프로그램 등에 참여를 하면서 회원분들이 회비를 냈었다. 우리는 3천원 자동 이체 걸어놓으면 되지만 그렇게도 못하시는 분들이 많으신거다. 코로나 때문에 아예 못 오게 되면서 회비를 못 내니까 지속적인 회원 리스트에서 빠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점점 소통이 어려워지고 고립된다.”

우리의 운동 : 학습할 권리, 정치할 권리. 턱을 허물고 판을 넓히자

  장애 접근권은 온라인/오프라인 전반에 부재하다. 특히 위와 같은 이야기는 수어·문자 통역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접근성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온라인 만남은 어떤 이들에게만 가능한 경험이었을지, 각 계층에게 온라인 접속의 접근성이 어떤 식으로 보장될 수 있었을지를 떠올린다. 궁극적으로 그들이 그들대로 참여할 권리를 말하자면, 교육권과 이동권, 참정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비장애인이 향유하는 것들이 그들 스스로 온전히 깨우쳐서 가능한 것이 아니듯, 모든 일에는 그것을 학습하는 과정이 있고, 우리는 계속해서 어떤 무능함을 가진 자는 학습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2022년 대구광역시 지방선거 후보자 장애인권리보장 정책공약 발표 기자회견(2022.4.18. 대구시청 앞) / 사진 출처. 대구여성장애인연대 홈페이지
2022년 대구광역시 지방선거 후보자 장애인권리보장 정책공약 발표 기자회견(2022.4.18. 대구시청 앞) / 사진 출처. 대구여성장애인연대 홈페이지

 장애계의 고민은, 지적능력이 보편의 성인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해지는 아동·청소년의 참정권과도 이어진다. 이들이 이해하고 참여하기에는 너무 어렵다고 여겨지는 정치의 판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까? 우선 그들에게 발언권이 주어져야 한다. 어떤 말하기는 인정받고 어떤 말하기는 그렇지 못한지, 그 격차에 집중해야 한다. 더듬고, 느리고, 너무 짧거나 너무 긴 문장을, 비교적 논리가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말하기는 왜 인정되는 과정이 없을까? 그것은 그 자체로 그들의 말하기를 더욱 어렵게 하고, 더욱 말할 수 없게 한다.

미성숙하지 않을 권리, 미성숙할 권리, 미성숙의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또한 어려움을 향유할 자원 역시 모두에게 주어질 권리다. 예를 들면, 세상으로부터 경험한 차별과 혐오를 해석하고, 그 안에 얽힌 계급의 교차성을 설명하는 작업은 복잡다단한 고민이 된다. 교육권을 다시 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아동-청소년-청년-비장애인을 대상으로, 그리고 입시와 취업를 목적으로 한 주입식 교육을 넘어야 한다. 모든 연령이 평생에 걸쳐, 입시와 취업, 스펙 쌓기를 넘어, 노동능력을 함양하는 것을 넘어 각자가 원하는 배움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교육의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또 교육의 보장과 함께 사회 참여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스마트폰을 쓰는 행위도 어려운 일일 수 있으나, 많은 아동·청소년이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사용법을 배우고,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이들이 여태껏 사회에 참여할 수 없었나 물으면 배울 기회가 없었고, 참여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동은 미성숙할 권리와, 미성숙한 이로만 대우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미성숙’의 낙인으로부터 자유롭게 말하고 배우고 살아갈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대구여성장애인연대와 함께 그 권리를 찾아갈 수 있어 더욱 뜻깊은 자리였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여성장애인의 주거권, 교육권, 참정권을 말하며 장애여성과 여성청소년 운동이 공명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장애여성 운동과 여성청소년 운동이 접점을 찾아갈 연대의 현장을 상상해본다.

[기고]
일움(활동명) / 대구청소년페미니스트모임 어린보라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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