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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 작은도서관이 만들어온 진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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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희 칼럼] 작은도서관 배제하는 '도서관법 시행령 개정안'을 반대하며


오래 전, 기적의 도서관이 하나 둘 세워지는 모습이 방송을 타던 그 감동을 기억한다. 책과 너른 세상을 접하기 어려운 시골 지역에 제1호 '순천 기적의 도서관'이 만들어진 순간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책을 만나고 책과 놀 수 있는 다채로운 공간이 열리던 순간, 우리 동네에도 우리 동네 아이들에게도 저런 공간이 있었으면 했다.

그 후 한 두 해가 지난 뒤 내가 일하던 시민단체와 지역주민들이 만나 10평의 작은도서관을 만들게 되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기적의 도서관의 수려하고 다채로운 공간에 비하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도서관이었지만, 오래지 않아 그 공간에는 아이들이 뒹굴었고, 엄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2005년 '도토리어린이도서관'의 시작이었다.

도토리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전국 각지에 있는 도서관 활동가들을 만나서 도움도 받고 힘도 얻게 되었다. 기적의 도서관보다 더 진한 스토리와 오랜 역사를 가진 진짜 기적이 그들이 일구어낸 마을 작은도서관, 바로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공도서관이 턱없이 부족하고 멀기만 했던 1990년 무렵부터 방 한 칸에서, 동네의 비어있는 자투리 공간에서 오직 열정과 헌신으로 도서관을 일구어온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 빌게이츠의 명언처럼 ‘어린 시절의 나를 키운 것은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라는 그 말에 꼭 맞는 도서관들이 오늘도 마을에서 꿈틀거리며 살아가고 있고 생겨나고 있다.
 
꿈꾸는마을도서관도토리 '길위의 인문학' 강좌, 마을강사가 진행한 '망원경DIY만들기' 체험(2022.9.27) / 사진. 꿈꾸는마을도서관도토리
꿈꾸는마을도서관도토리 '길위의 인문학' 강좌, 마을강사가 진행한 '망원경DIY만들기' 체험(2022.9.27) / 사진. 꿈꾸는마을도서관도토리

지난 9월 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도서관법 시행령 전부개정령안” 입법 예고를 했고 10월 17일 입법 예고 종료를 앞두고 있다. 대통령령으로 입법 예고된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마을에서 진짜 기적을 만들어온 사립 작은도서관 활동가들은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현실에 맞게 도서관 운영관리와 기준을 개선한다는 명목 하에, 시설 및 자료 기준 상향을 포함한 개정법안은 30년 넘게 국가와 지자체가 하지 못한 공공도서관의 빈자리를 꼼꼼히 메꾸며 제 역할을 톡톡히 해온 사립 작은도서관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령으로 시행되는 현행 도서관법은 공공도서관 이외에 단체나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도서관인 사립공공도서관과 사립작은도서관 설치와 등록을 인정하고 있다. 지역주민을 위해 정보이용, 독서 및 문화활동, 평생교육을 위한 공공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면 누구나 도서관을 설립할 수 있고, 기준과 절차에 따라 지자체에 설립 신고 등록을 하면 된다. 사립공공도서관은 공공도서관 설치 기준 중 봉사인구 2만명 이하 지역의 시설 기준에 해당하는 면적 264㎡(80평), 열람석 60석, 장서 3000권 이상, 연간 증성 300권 이상이라는 시설 기준을 충족하면 설립할 수 있다. 작은도서관은 공공과 사립 도서관 모두 면적 33㎡(10평), 열람석 6석, 장서 1000권 이상이 설립 기준이다.  

입법예고된 시행령 법안에서는 시설기준과 자료기준이 모두 상향 변경되었다. 공공도서관 면적이 봉사대상 인구수에 상관없이 면적 330㎡(100평)이상으로 조정되었고, 자료기준은 봉사 대상 인구수 2만명 미만인 경우 소장자료수 1만권 이상, 연간 증서는 그 10%해당하는 1000권으로 강화되었다. 기존 법안에 있던 사립공공도서관은 봉사대상 2만명 이하의 시설 및 자료기준에 따른다는 단서 조항이 삭제되어, 사립공공도서관의 등록은 시설 100평이상 자료수 최소 1만권~최대 5만권이라는 등록 기준이 적용된다.
 
자료. (사)어린이와 작은도서관협회
자료. (사)어린이와 작은도서관협회

작은도서관 시설 기준은 면적 99㎡이상, 자료 3천권 이상으로 기존 법안보다 3배에 준하는 기준으로 대폭 상향 조정되었다. 특히, 작은도서관 설치관련 법안에 대해 가장 심각하게 반발하며 우려를 표하는 것은 도서관법 시행령 전부개정령안 내용 중 도서관 시설과 자료 기준 비고 2번항“작은도서관은 법 제4조제2항제1호가목에 따른 도서관으로 국·공립 작은도서관을 의미한다”라는 단서 조항이다. 작은도서관 설립 기준을 “국공립 작은도서관”으로만 한정하여 이대로 통과된다면 사립 작은 도서관의 설립 및 존재 근거가 모호해지게 된다. 사립 작은 도서관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하고 무시하는 것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도서관법 시행령 전부개정령안은 공청회는커녕 관계 기관과 단체의 의견 청취조차도 일체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

현재 공립 및 사립 작은도서관은 전국적으로 7천여개소가 운영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 중 60% 이상이 개인이나 시민단체, 종교단체, 아파트 등에서 운영하는 사립 작은도서관이다. 단지 도서관 숫자만으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사립 작은 도서관의 역사와 역동성까지 하나하나 거론한다면 공공도서관의 시설과 규모를 압도하는 영향력과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도서관 운영과 서비스는 시설과 규모, 자료수 만으로 잴 수 없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지역주민과 지역특색이 결합한 독서프로그램과 다양한 문화활동이다. 무엇보다 그 속에서 맺어지는 연결과 성장, 공동체적 가치가 가장 크다.

사립 작은도서관은 지역과 마을에 도서관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시절부터 지역주민들과 아이들과 밀착하여 호흡하고 움직이며 공공도서관의 양적 질적 성장을 견인해온 주역들이다. 입법 예고된 법안은 오랫동안 아무런 댓가 없이 가장 낮고 작은 마을에서 소리없이 공공의 몫을 감당해온 사립 작은도서관을 완전히 무시하고 배제하는 법안이다.
 
자료 출처. (사)어린이와 작은도서관협회
자료 출처. (사)어린이와 작은도서관협회

공공도서관의 양적 질적 성장을 바탕으로 현실에 맞게 조정한다는 명목 하에 상향 조정된 시설과 자료기준 역시 규모면에서 열악할 수밖에 없는 사립 작은 도서관의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시설과 자료라는 하드웨어만 잘 갖춘다고 도서관의 공공서비스의 질적 개선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것은 공사립을 막론하고 도서관 관계자들도 이용자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존 사립 작은도서관이 개정된 법안의 소급 적용을 받지는 않지만, 사립 작은도서관의 운영 특성상 도서관 이전이나 도서관 운영자가 바뀌는 등 변경 등록이 필요한 경우가 생기는데, 개정법령이 시행되면 오랫동안 마을에서 자리잡아 온 사립 도서관들이 새로운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여 변경 등록에 제약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전국의 무수한 사립 작은도서관들은 단지 도서대출서비스나 독서문화프로그램으만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 공간이다. 사람이 흐르고 성장하며 따뜻한 연결과 관계망으로 촘촘히 얽혀 돌아가는 곳이다. 엄마 품에 안겨서 도서관에 오던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도 사랑방처럼 찾는 공간이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도서관을 이용하던 엄마들이 배우고 성장하며 자원활동가가 되고 운영자가 되어 메꾸어가는 곳이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 있는 마을을 상상하고 실행하며 진짜 기적을 만들어온 공간이다. 작은도서관의 진짜 기적이 앞으로도 오래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법은 무엇보다 그 길을 걸어온 사립 작은도서관의 목소리를 진정성 있게 듣고 담아야 한다.  

* 도서관법 시행령 전부개정령안 반대 서명에 동참 링크<https://bit.ly/개정령반대서명>

 
 
 






 [신동희 칼럼 8]
 신동희 / 꿈꾸는마을도서관 도토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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