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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코발트광산 '민간인학살' 마지막 유해 수습...폐광에 묻힌 3천 포대, 역사의 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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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담은 5천개 포대 작년 2천개 수습
희생자들 뼈 1,403점 발굴→세종 안치
6월 2차 수습...남은 3천포대 굴 밖으로
진실화해위 예산·경산시 조사단 입찰
유족 "국가폭력 억울한 세월 진실규명"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경북 경산시 코발트광산에서 조만간 마지막 유해 수습을 한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는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광산 희생자 2차 유해 수습 사업을 확정하고 지난 4월 예산 1억원을 경산시로 내려보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인 경북 경산시 코발트광산 수평2굴 입구에 제사상이  차려졌다.(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인 경북 경산시 코발트광산 수평2굴 입구에 제사상이  차려졌다.(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산시는 유해를 수습할 조사단 입찰 중이다. 이번 주 안으로 입찰 작업이 마무리되면 6월 안으로 2차 유해 수습 작업을 할 예정이다.  지난해 1차 유해 수습에 이어 두번째다. 

1차 수습 당시 진화위 발주를 받은 조사단 '한빛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3월 27일부터 석달 가까이 수평2굴에 남겨진 유해 포대를 굴 밖으로 꺼내 사람 뼈로 보이는 유해를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사)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회장 나정태)도 이 과정에 함께 했다. 이들은 당시 폐광에 70년 넘게 밀봉된 뼈가 담긴 포대 자루 5,000여개를 굴 밖으로 꺼냈다. 1차 수습 당시 모두 2,000여개 포대를 꺼냈다. 

나정태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장이 어버이날 위령탑에 묵념하고 있다.(2024.5.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나정태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장이 어버이날 위령탑에 묵념하고 있다.(2024.5.8)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버지 1950년 경인년 잊지 않겠습니다.. 무덤도 없는 원혼들 천년을 두고 울어주리다" 코발트광산에 새겨진 글귀들(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버지 1950년 경인년 잊지 않겠습니다.. 무덤도 없는 원혼들 천년을 두고 울어주리다" 코발트광산에 새겨진 글귀들(2023.3.23)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포대를 하나씩 풀어 흙과 모래 등 여러 물질이 뭉친 덩어리를 깨고 사람 뼈를 골라내는 작업을 했다.  1차 수습 결과 모두 1,403점의 뼈가 발견됐다. 하나로 모인 뼈는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돼 있다. 

이번 2차 수습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굴에 남은 3,000개 포대를 모두 밖으로 꺼낸다. 혹시 포대에 담기지 못한 뼈가 있는지 훑는 작업도 한다. 6월 중순부터 시작해 작업은 2~3개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포대 하나에서 뼈가 수백점 나오거나 한 점도 안나오는 경우도 있어 몇 점이나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이번에 수습하는 뼈들도 모두 한 곳에 모아 세종으로 보낼 예정이다. 

1차 유해 수습 과정에서 포대를 풀어 흙과 모래 더미에서 희생자들의 뼈를 찾아내고 있다.(20243.
1차 유해 수습 과정에서 포대를 풀어 흙과 모래 더미에서 희생자들의 뼈를 찾아내고 있다.(2023.3.30) /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이 뼈들은 추후 대전 골령골에 정부가 짓기로 한 '한국전쟁 민간인희생자 위령평화공원'에 묻힌다.

나정태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장은 3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70여년 긴 세월을 폐광에 묻힌 아버지, 어머니, 내 가족을 이제서야 모두 굴 밖으로 꺼낼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이번에 모든 포대를 굴 밖으로 꺼내서 남은 뼈들을 수습하면, 역사의 아픈 진실도 제대로 규명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포대를 밖으로 다 꺼내도 진실규명 작업은 마지막이 되어선 안된다"며 "정부는 국가폭력의 아픈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진상규명 작업은 계속해서 이어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학살 관계 보고서'를 발표했다. 과거사위는 이 보고서에서 이승만 정권 당시인 1950년 7~8월까지 우리나라 군인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 3천여명이 코발트광산에서 집단사살됐다고 밝혔다. 주로 경산과 청도지역의 보도연맹원과 대구형무소의 수감자들로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에 협조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희생됐다.

과거사위는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결론을 내렸다. 가창골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민간인 2천~3천여명이 집단사살됐다고 보고서에 나와 있다. 이후 정부와 시민단체 유족들은 모두 6차례에 걸쳐 유골 5백여구를 발굴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과거사위의 활동이 중단되고 민간인 학살 진실규명과 관련된 예산지원도 끊겨 유골 발굴 작업은 현재 모두 중단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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