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 유해 수습 작업 중 사람 뼈 430여점이 나왔다.
본격적인 유해 수습 작업에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 흙포대에서 뼈가 무더기로 나왔다. 유족회와 조사단은 남은 포대l에 더 많은 뼈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아직 열지 못한 포대가 많이 남은 상황에서 유족회 측은 계속 유해 수습 작업을 이어간다. 수습 작업은 앞으로 6개월은 더 걸릴 예정이다.
(사)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회장 나정태)는 31일 "경산시 평산동 수평2굴에서 유해 수습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 뼈로 보이는 유해 430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유족회에 따르면, 유해 수습 작업을 맡은 조사단 '한빛문화재연구원'은 현재 수평2굴 안에 미처 수습하지 못한 마대자루 3,000여개 중 절반 분량에 대한 유해 수습 작업을 벌이고 있다. 앞서 23일 개토제를 시작으로 지난 27~28일 먼저 포대자루 1,100개를 수평2굴 밖으로 빼냈다.
유해 수습이 멈춘 지난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유해들이 굴 밖으로 나와 빛을 본 셈이다. 이어 한빛문화재연구원은 29일~30일 이틀간 반출한 포대 1,100개 중 100개를 풀어 흙과 모래 등을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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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평2굴 유해 수습 과정 중 포대자루에서 나온 여러 점의 사람 뼈(2023.3.30) / 사진.경산코발트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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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에서 430여점의 사람 뼈가 나왔다. 발견된 유해는 신원 불상의 사람 뼈로 한명이 아닌 여러 사람의 유해다. 부위는 치아를 포함해 손가락·발가락 뼈, 갈비뼈 등 수백점이다. 세월이 오래 지나 백골의 형태로 발견됐다. 온전한 인체 형태가 아니고 신체의 여러 부위가 깨진 잔뼈 형태로 남았다.
발견된 유해들은 일단 현장 인근에 보관한다. 유해 수습 작업은 계속 이어간다. 남은 1,000개 포대도 마저 풀어 분류와 세척 등의 작업을 거친다. 앞으로 더 많은 유해가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신원 확인은 사실상 어렵다. 뼈가 너무 많아 일일이 DNA 대조 검사를 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게 유족회 측 설명이다. 일단 포대를 반출해 뼈를 분류하는 게 이번 수습 작업의 목적이다. 수습 작업은 앞으로 6개월 더 걸린다. 모든 유해 수습 작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은 9~10월쯤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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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발트광산 수평2굴에서 14년 만에 굴 밖으로 꺼낸 희생자들의 유해가 담긴 포대(2023.3.30) / 사진.경산코발트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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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태(77) 코발트광산 유족회 회장은 "짧은 시간에 사람 뼈 수백점이 포대자루에서 쏟아졌다"며 "알고는 있었지만 눈 앞에 우리 부모님들 뼈가 펼쳐지니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또 "굴 안에 오래 방치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안타깝다"면서 "그렇지만 이제라도 빛을 봐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아무도 맡지 않으려고 했던 이 조사 용역에 응해준 한빛문화재연구원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며 "매일 아침부터 힘써준 덕분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 뼈 한조각이라도 찾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어떤 일이 있었도 유해 수습을 하는 중간에 사업이 멈추거나 방해가 있었서는 안될 것"이라며 "순탄하게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를 향해서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희생자들을 위해서 중단 없이 진상규명을 해달라"며 "1차 유해 발굴 보조사업에 이어 2차 사업도 진행해 남은 유해들을 마저 수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코발트광산은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지 중 하나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 3,500여명이 보도연맹원 등으로 몰려 코발트광산에서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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