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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 돌고개·대뱅이재, 잊혀진 '민간인 학살터'...유족 "작은 추모비라도"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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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시에 있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터 구성면 송곡리 '돌고개', 광명리 '대뱅이재'를 아시나요? 

◆ 1950년 7월 김천지역 보도연맹원들은 국군과 경찰에 의해 김천형무소(현 김천 평화동)에 감금됐다. 

'좌익' 사상범으로 내몰린 1,200여명은 대부분 평범한 지역 주민들이었다. 

갇혔있던 이들은 김천형무소에서 10여km 떨어진 돌고개와 대뱅이재 등 곳곳에 끌려와 사살됐다. 

지난 2003년 첫 유해발굴 당시 시신이 매장된 돌고개 구덩이 곳곳에서 유골 100여점이 나왔다. 

하지만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지역 주민들조차 돌고개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현장에는 허름한 간판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서 있을 뿐, 지자체나 국가 차원의 추모사업은 전무하다.   

고령의 유족들은 작은 추모비라도 세워 희생자들 넋을 위로하고 역사의 아픔을 기록하길 호소하고 있다. 

경북 김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터 구성면 송곡리 돌고개에서 희생자들에게 묵념하는 유족들과 지역 시민단체 인사들(2024.7.13) / 사진.김천교육너머 회원 함수연
경북 김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터 구성면 송곡리 돌고개에서 희생자들에게 묵념하는 유족들과 지역 시민단체 인사들(2024.7.13) / 사진.김천교육너머 회원 함수연

◆ 한국전쟁 전후 김천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회장 강영구)와 김천교육너머(대표 최현정)에 16일 확인한 결과, 지난 13일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대뱅이재(혹은 대방이재)에서 '제3회 한국전쟁 전후 김천지역 민간인 희생자 추모제'를 열었다.

강영구(79) 김천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장과 채영희(80) (사)대구 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 김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故) 임종업 선생 사위인 권상능씨, 나영민(58.국민의힘.) 김천시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분향과 제례, 헌화를 통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대뱅이재에 이어 돌고개를 찾아 또 참배했다. 

◆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008년 발표 자료(대구경북 형무소 재소자 희생 사건 진실규명 및 불능 결정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전후 김천에서 보도연맹원에 강제로 가입됐다가 예비검속된 주민은 1,200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천 출신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임종업 선생도 끌려갔다. 

김천지역 희생자들에게 헌화 후 묵념하는 유가족들(2024.7.13) / 사진.김천교육너머 회원 함수연
김천지역 희생자들에게 헌화 후 묵념하는 유가족들(2024.7.13) / 사진.김천교육너머 회원 함수연

이들은 지난 1950년 '좌익 사상범'으로 분류돼 김천경찰서 유치장(200여명)과 김천소년형무소(1,000여명) 등에 감금됐다. 한국 특무대(CIC)와 헌병대는 같은해 7월 14일 이들을 돌고개와 대뱅이재 등으로 끌고가 총살했다. 구덩이를 파놓고 시신을 흙으로 대충 덮어둬 유골들이 드러나기도했다.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통합특별법 쟁취 투쟁본부'는 지난 2003년 5월 9일 돌고개 계곡에서 첫 유해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사람의 유골 100여점을 찾았다. 권총, 소총 탄피, 허리띠, 신발, 단추 등 유류품도 발견됐다.

최근에도 진실규명 작업은 이어지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6월 11일 김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과 관련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1950년 7월 김천 주민 2명(20대 남녀)이 경찰과 국군에 의해 연행돼 대뱅이재와 돌고개 등에서 학살됐다고 판단했다. 유족 16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기도 했다. 

◆ 하지만 21년 전 민간에서 진행한 유해발굴 작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국가나 지자체 차원의 유해발굴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추모사업도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 대구시와 경산시는 각각 10월항쟁과 코발트광산과 관련한 조례를 만들어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탑을 세우고 추모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김천시는 관련 예산을 책정하거나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제3회 한국전쟁 전후 김천지역 민간인 희생자 추모제(2024.7.13) / 사진.김천교육너머 회원 함수연
제3회 한국전쟁 전후 김천지역 민간인 희생자 추모제(2024.7.13) / 사진.김천교육너머 회원 함수연

3년째 진행된 추모제도 유족과 지역 시민단체가 힘을 합쳐 열고 있다. 지자체나 국가 지원은 없다. 학살터는 잊혀진 상태다. 게다가 김천 유족 200명 중 회원은 고작 40여명, 이들 대부분 고령자다. 때문에 유족들은 한시라도 빨리 지자체나 국가 차원의 추모사업이 진행되길 바라고 있다.   

아버지 강태봉씨를 잃은 강영구 김천유족회장은 "연좌제로 인해 70년 세월 동안 고통을 겪었다"며 "그간 이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한 노력은 말로 다 못한다"고 했다. 또 "김천 유족들은 이런 자리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는 시민들과 지자체, 국가가 함께 진상을 밝히려 노력해야 한다"면서 "작은 추모비라도 세울 수 있게 함께해달라"고 호소했다.

채영희 대구 10월항쟁유족회장은 "누가 금수강산이라 말했는가? 온 천지가 학살터"라고 말하며 "국가의 진실규명은 멈춰선 안된다"고 말했다. 

최현정 김천교육너머 대표는 "그저 표지판만 세워두었을 뿐 위령탑 하나 아직 세우지 못해 죄송하고 부끄럽다"며 "아픈 역사를 밝히고 한을 풀어드리도록 노력하겠다"는 추모사를 했다. 

나영민 김천시의회 의장이 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다.(2024.7.13) / 사진.김천교육너머 회원 함수연
나영민 김천시의회 의장이 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다.(2024.7.13) / 사진.김천교육너머 회원 함수연

나영민 김천시의회 의장은 16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1,200여명이 학살 당한 곳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며 "후손들에게 역사를 알리는 학습 현장을 만들거나, 위령탑이라도 세울 수 있도록 추모사업 조례 등 근거를 만드는데 노력하겠다. 집행부에 뜻을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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