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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모른 척하고 있는 이미 당도한 지옥, 우리의 교실들
[김문주 칼럼] 우리에게 교육은 무엇인가
2023년 09월 11일 (월) 12:47:32 평화뉴스 김문주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교사들의 죽음으로 인해 교육 현장의 응급 상황이 알려지고 있다. 중·고등학교의 현실이야 모르는바 아니고 그 원인이 우리의 입시교육에서 기원한 것 또한 익히 알고 있지만 입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생각한 초등학교의 교실현장이 이렇게 심하게 멍들었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초등학생 아동을 둔 학부모와 교사(가족)들은 인지하고 있었겠지만 대개의 국민들은 학교 현장에서 아동학대법과 학부모의 민원이 교실을 이렇게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서이초사건’이 터진 이후 수십만의 교사들이 이 일을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하며 분노 속에 거리로 나서고 있다는 점, 사건 이후에도 참담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초등학교 교실 현장의 심각한 위기를 반증해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아마도 이 사건은 적당히 봉합될 것이고 얼마 가지 않아 다른 뉴스들에 의해 덮일 것이며 곧 사그라들 것이다.

가르치는 자의 권위가 실종된 교육 현장

이유는 둘이다. 현 정부와 교육 당국,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사회에 이 사건을 제대로 다룰 인식과 진정성이 부재하기 때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법이나 규정을 수정한다고 근본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과 규정을 바꾸면 교사들의 운신의 폭은 확보되겠지만 그렇다고 교육 현장이 정상화될 가능성은 단언하건대, 없다. 그것은 핵심 당사자인 교사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교사들의 분노와 슬픔은 현재의 교실 현장이 그만큼 끔찍하니 최소한의 숨통이라도 틔어달라는 생명 방어권의 요청으로 보인다.

정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 즉 가르치는 자의 권위가 실종된 상황에서 무슨 교육이 가능할 것인가. 아동학대법을 들먹거리는 학생과 다양한 학부모들의 작태들이 창궐하는 교실은 마치 다양한 갑질-테러가 난무하는 자영업자의 영업현장 같다. 교실은 이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을의 영업장일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병폐가 우리 교육의 일단(一端)이라는 점,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의 문제는 병폐의 관성에서 헤어날 수 없을 만큼 깊고 구조적이어서 거론조차하기 어렵다.  
 
   
▲ 서이초 교사 49재 '9.4공교육 멈춤의 날'(2023.9.4. 대구교육청 앞)...대구지역 교사와 시민 1,000여명이 참석해 "아동학대법 개정"과 "교육권 보장"을 호소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얼마 전 스웨덴에서 온 유학생과 상담하는 자리에서 스웨덴 학생들의 대학 선호 전공에 대해 물었다. 스웨덴은 대학의 학비가 없지만 고등학교 졸업자 중에 일부만이 대학에 진학한다는 것, 대학을 졸업해야 갈 수 있는 일자리가 분명히 있고, 그래서 진학의 유인(誘引)이 되긴 하지만 다수의 학생들이 선호하는 두드러진 전공은 특별히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흥미롭게도 나와 상담한 학생의 학업 목표 중 하나는 한글-중세어를 공부해서 그 내용을 영어책으로 만들어 중세-한국어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 그리고 본인의 유학비용은 스웨덴 정부에서 일부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주 20시간 정도의 알바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국어 실력이 매우 뛰어난 이 학생이 서울이 아닌 대구로 유학을 온 이유가 한국어의 방언을 접할 수 있는 곳이어서, 그러나 부산은 자신이 익숙한 바다와 접한 곳이기 때문에 내륙 도시인 대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실에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답변이었다. 북유럽의 교육 현장에 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터였지만, 한국의 교육 현실을 재삼 성찰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한국 사회의 교육 현실

얼마 전 프랑스에 거주하는 목수정의 글(「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선진국 한국'의 섬뜩한 광고」)이 재삼 확인해준 사실은 한국의 광고시장이 둘, 즉 학원과 병원으로 양분된다는 점이었는데, 비단 광고뿐인가, 대로의 건물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교육은 대한민국의 전 영역에 두루 연결된 사회구조의 중심이다. 서울의 강남은 어찌 한국의 ‘강남’이 되었으며, 각 지역의 이른바 ‘강남학군’은 지역부동산 시장의 핫플(hot place)이 아니던가. 부동산 시장에서 학군은 핵심 가치이다. 이른바 명문대, 그리고 의대에 보내는 학교들이 많은 곳이 한국 부동산 시장, 아니 이 사회의 핫플인 것을 우리 모두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한국 사회의 가장 엄중하면서도 시급한 사안인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에는 아이를 낳는 게 본인들의 삶을 행복하지 않게 하는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지금-이곳’의 현실이 태어날 아이에게도 결코 행복한 삶의 조건이 아니라는 인식이 가로놓여 있다. 그 핵심에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자리한다. 교육은 한국인의 삶을 규정하고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이 구성원들을 성장시키거나 행복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자양은 결코 아니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다수의 아이들을 소외시키고 자기 삶의 방관자로 떠돌게 한다.

이번 ‘서이초사건’은 표면적으로 학생을 통제할 교사의 수단이 법에 의해 무력화된 현실에서 기인하고 있지만, 중고등학교의 교실 현장은 통제의 의지조차 작동되지 않는 공간이다. 학생기록부에 목을 매는 학생들만이 지극히 제한적으로 교사의 통제에 따를 뿐이고, 나머지 학생들은 그 바깥에 있다. 그렇게 버려진 학생들은, 교실에서 잔다. 깨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공식적으로 학급 인원의 20%가 채 되지 않는다.
 
   
▲ "학생에게는 학습권을, 교사에게는 교육권을"...서이초 교사 49재 '9.4공교육 멈춤의 날', 대구교육청 앞네 내걸린 현수막(2023.9.4. 대구교육청 앞)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그러니 대학의 사정이 나을 리 없다.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입시 체제에서 성공한 학생들이 모이는 서울의 유명대학들도 사정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우수한 이공계 학생들의 진로는 거의 예외 없이 의대계열인데, 심지어 이공계에 진학한 학생들은 입학 뒤에 재수, 삼수를 통해 다시 의대로 빠져나간다.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은 로스쿨 진학이 유리한 학과로 지원자가 몰리고, 재학생 중 상당수는 전공과 상관없이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다.   

자본에 포획된 대학, 공동체 가치가 실종된 대학

우리의 대학들, 정확하게 대학 구성원 전체가 이미 자본에 완전히 포획되어 있다. 오래된 현실이다. 2024학년도 올해 수능 지원자 49만여 명 중에 N수생은 34%가 넘는 17만에 육박한다. 수능이 도입된 1995,96년 이후 최대치이다. 그뿐인가. 대학의 전임교원들은 모두 펀드를 주는 연구과제에 매달려 있고, 대학본부도 여기저기 돈을 끌어 모으느라 사실 교육에는 여념이 없다.

이제 대학은 진리, 정의, 민주주의 등 공동체의 가치에는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르칠 만한 자격조차 없다. 대학의 교원들은 신분계급처럼, 감히 넘볼 수 없는 전임교원을 필두로 하여 교육중점교원·강사·객원교원·겸임교원 등 층층의 위계로 나누어져 있고, 대학공동체를 구성하는 청소·시설 노동자들은 학교 바깥의 존재로 외주화되어 있다. 그 사이에 많은 강사들이 대학의 담장 밖으로 쫓겨나고, 외주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은 참담해지고 있다.

대학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타자들에 대한 의도적 무관심, 공동체 가치에 대한 논의가 실종된 대학에는 철저한 각자도생의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재정지원금으로 대학 구성원 전체가 교육부에 포획되어 있으니 대학이 정부와 정치권의 눈치만 볼 수밖에, 그래서 대통령 부인의 학위논문에 대한 기초적인 심의조차 아예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진리나 정의는 고사하고 학문적 권위, 최소한의 염치와 학문하는 이들의 자존감조차 이제 대학에는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교육 속에 신분 상승의 사다리 기능이 사라짐으로써 교육을 통한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이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교육, 정확히 말하자면 입시를 위한 시스템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유지하고 존속시키는 대물림 기능으로 온전히 전락해버렸다. 온갖 지표들이 이를 생생하게 증명해준다. 범박하게 말해 우리 교육제도는 전국 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 정원 6,614명, 전국 로스쿨 정원 2,000명, 그리고 나머지 서울 유명대학의 일부 선호 전공 인원에 들기 위한 경쟁시스템일 뿐이고, 대학의 남은 기능은 대통령도 당당히(?) 공언해준 것처럼 기업체에 납품할 인간-상품에 도장을 찍는 기능뿐이다. 학업 성취의 피라미드 정점에 오를 소수의 아이들을 위해 우리의 교육제도는 존재하는 셈이다.

교육의 변화, 지금 나서지 않으면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로 오는 동안 경쟁의 대열에서 탈락한 아이들은 당연히 많아지고, 자기 성취를 이루는 극히 적은 아이들을 제외한 다수는 좌절과 한계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적당한 대학에서 별다른 희망 없이 몇 년을 보내다 사회로 진출한다. 우리의 교육은 대다수의 아이들을 열패자로, 그리고 결국 자기 삶의 방관자로 만드는 조건이자 주범이다. 이제 대학에서도 엎드려 자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과연 우리의 교육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 두루 걸친 핵심 요소이고, 특히 기득권의 계층적 존속을 공고히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변혁의 가능성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교육의 변화 없이 한국사회의 희망은 결코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을 바꾸는 일은 우리 사회의 구조를 개혁하는 매우 힘든 과제이다. 그러나 교육의 문제를 제대로 숙고하고 바꿔내지 않고서 한국은 결코 살만한 사회가 될 수 없다. 교육은 우리 공동체의 생존 문제이다.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를 학교에서조차 다룰 수 없다면 지금-이곳은 그저 정글일 뿐이며, 그 현실은 점점 참혹해질 것이다.  

교육의 핵심 주체인 교사의 권위가 부재한 교실에 아무리 규정을 바꾼다 해도 그것은 임시방편이 될 수밖에 없다. 대다수의 아이들을 소외시키면서, 극히 한정된 학력 자본을 놓고 경쟁하는 극한 입시 중심의 현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도저한 병폐들은 해결되지 않는다. ‘서이초사건’을 매우 예외적인 개인들에 의해 벌어진 교실의 파행이라고 본다면, 올해 우리의 여름을 달구었던 참혹한 사건은 늘 그러한 것처럼 수없이 많은 한때의 뉴스로, 곧 잊힐 것이다.

우리 교육의 문제를 좀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관점에서 진단하고, 진지하게 실천하는 강한 개혁의 논의들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다. 교육은 우리 모두의 일이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우리들은 더 끔찍한 교실, 나아가 공동체의 방향과 가치를 전혀 회복할 수 없는 참담한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대체 누구를 위해, 그리고 어떤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가? 교육은 이제 우리 공동체 전체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우리에게 과연 교육은 무엇인가? 아니, 교육은 우리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

 
   
 








[김문주 칼럼 2]
김문주 / 문학평론가. 영남대 국문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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