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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 두렵고 우습다
[임성무 칼럼]
2023년 08월 21일 (월) 12:15:03 평화뉴스 임성무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우리의 독립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 운동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2023년 8.15광복절 기념사)

'조국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보편적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선열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을까? 이것이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 국가 계속성의 요체요, 핵심'일까? 나는 환갑을 맞도록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고, 38년 선생을 하면서 단 한 번도 가르쳐 본 적이 없는 말이다. 도대체 윤석열 대통령은 이 말을 어디에서 배웠을까?

초등학교 교과서는 2023년부터 국어와 도덕을 제외한 전 교과서가 중등처럼 검정교과서로 발행되고 있다. 최근 공개된 2023년 8월 15일에 발행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디지털교과서를 살펴보면 어디에도 '자유민주주의', '공산전체주의', '건국운동'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대한민국 임시정부', '나라를 되찾으려는 다양한 노력', '독립운동', '항일투쟁', '한국광복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아마도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윤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 대해 심각한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어쩌면 혹시라도 이념적 갈등에 연루될까 싶어 교육과정이나 교과서와 윤석열 대통령의 말 사이에서 자기검열을 할까 걱정이 된다.
 
   
▲ 2023년 8월 15일 발행한 초등학교 5학년 2학기 사회 검인정교과서(천재교육)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되었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대한제국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을 건립했다. 이제 백성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나라, 민주공화정 국가를 건립한 것이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또한 1948년에 '대한민국 30년'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이들은 '국부'라고 그토록 떠받드는 이승만의 건국 인식을 따르기 바란다. (물론 우리는 단군기원 연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고조선부터 나라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라는 역사인식을 갖고 있다.)

만약 윤석열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건국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국가의 3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이 다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라면, 이는 우리가 배워온 대로 일제의 '강점'을 인정하지 않는 꼴이 되어 버린다. 해방 이후 건국동맹이나 건국준비위원회가 있었고,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해방 전후에 건국을 위한 준비가 있었다고 가르치지만, 제헌의회는 제헌헌법을 만들면서 1948년 8월 15일은 정확하게 ‘대한민국 정부수립일’로 분명히 하였다.

하지만 제헌헌법에서 현행 제9차 개정헌법의 전문은 여러 차례 개정되어왔다. 최초 헌법(1948.7.12)부터 4차 개정헌법까지 유지되어 오던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는 전문은 62년 박정희 5,16 군사쿠테타, 72년 유신헌법, 80년 전두환 시기에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으로 바뀌었다가 1987년 6.10항쟁으로 다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으로 바뀌어 왔다. 이처럼 ‘대한민국 수립’과 관련한 논쟁은 반복되어 왔다. (『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 민족문제연구소, 2016 참고)
 
박근혜 정부 당시 뉴라이트를 중심으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해 온 세력들은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치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논리는 북한이 1948년 9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했는데, 남한이 기껏 정부 수립이라 부르는 것은 국격에 문제가 있다는 논리였다.

북한은 1948년을 사회주의 조선을 새로 건국했다고 내세운다. 그러니 3.1운동이나 대한민국(임시정부)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쪽 대한민국은 헌법 전문에서 밝힌대로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기 때문에, 1948년 8월 15일은 광복절이고, 1948년에 정식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러니 윤석열의 멘토라는 광복회 회장인 이종찬마저도 "우리 광복의 과정에서 흥망은 있었어도 민족의 역사는 끊기지 않았다. ~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더이상 왕정은 없다며 일제히 민주 공화정으로 체제를 바꿔 독립운동을 새로이 시작한 것이다. 이는 정부체제 변화일 뿐 건국은 아니며, 1948년 건국 주장은 일제강점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5년 겨울 내내 논란이 되었던 국정교과서 논쟁은 엄청난 혼란을 겪으며 정리되었다. 정리하면, 대한민국은 1919년에 건국(대한민국 수립)되었고, 1945년 해방, 광복했고, 1948년에 정식 정부를 수립(대한민국 정부 수립) 한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건국 운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식민지근대화론을 펼친 뉴라이트의 주장을 다시 가져온 말이지, 헌법을 준수해야 할 대통령이 할 말이 아니다. 뉴라이트 세력들이 건국절 주장을 본격적으로 한 시기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건국 60년' 때였고, 박근혜 정부 때 다시 '건국 67년'이라는 말을 또 사용했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건국 78년'을 사용하지 않고 '건국운동'이라는 말로 살짝 비틀어 끄집어낸 것은 '건국절' 논쟁을 피해 가는 듯 보이지만, 근본 인식은 윤석열 정부의 일제강점기와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 뿌리가 바로 뉴라이트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끊임없이 '건국'을 들먹이는 것은 청산되지 못한 친일매국, 친독재 세력이 언제든지 권력을 장악할 만큼 여전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정치적 기반이 약한 윤석열 정부가 뉴라이트 세력에게 의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입증해 보이려는 노력으로 보이기도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촛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에 뭉그적거리는 가운데 등장한 윤석열 정부에서 노골적인 역사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친일 매국세력과 손잡고 일본의 극우 세력과 연합하여 가치동맹이라고 주장하고, 일제강점기 피해자 문제를 덮으려 하고, 후쿠시마 핵 오염수 해양 방류에 대해서 IAEA에 기대어 찬성하고 있으며, 미국이 동해를 일본해라고 주장해도 침묵하고 있다. 이런 식이면 애국가 가사도 ‘동해 물과 백두산’을 ‘ 일본해 물과 백두산’으로 바꾸고, 독도를 일본 땅이라 우겨도 못 들은 척 참고, 독립기념관은 건국기념관으로 바꾸자고 나설 것 같다.
 
   
▲ 윤석열 대통령, 2023년 8.15광복절 기념사 / 사진 출처. 대한민국 대통령실 홈페이지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습니다. (중략)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윤석열 대통령, 2023년 8.15광복절 기념사)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공산전체주의 북한'과 싸워야 하고, 자신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국민을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는 위장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낙인찍고, 탄압할 명분을 만들고 있다. 왜 이렇게 듣도 보도 못한 말과 논리로 일관하며 막나가고 있을까? 권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거에서 승리해야 하며, 남북대결을 넘어 군사대결까지 가서라도 분단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고 있는 걸까?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뉴라이트 세력들이 부추기는 것을 믿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든다. 아니면 정말로 자신의 말한 것처럼 진짜로 그렇게 알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무서워진다. 나는 86년에 교사가 되고, 87년 6.10항쟁을 겪으면서 참교사가 되고 싶었다. 88년 전국교사협의회를 만들고, 89년 ‘하늘 같은 스승’에서 ‘교육 노동자’가 되겠다고 하면서부터 졸지에 빨갱이가 되었고, 급기야 학교에서 쫓겨나 해직교사가 되었다. 복직하고 38년째 교사의 길을 걷고 있다. 그동안 끊임없이 이념적 공격을 받고, 겨우 법적 권리를 누린지 4년이 되었다. 탄압을 견디는 동안 한때 젊은 교사들은 늙었고, 비합상태를 견디지 못한 일부는 탈퇴하고 교사노조를 결성하기도 했다. 새로운 젊은 교사들은 전교조가 비정규직 교직원들과 함께하면서 정작 교사들의 어려움은 멀리한다고 여기고 있다. 최근 서이초 교사 사건으로 들불처럼 타오르는 분노를 보면 대중 교사들의 마음이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전교조뿐만 아니라 교원단체들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상황에서 어쩌다 우리가 피땀 흘려 만든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어쩌다 우리는, 나는 다시 '위장 민주주의 운동가'가 되어 생전 처음 들어보는 공산전체주의 세력으로 낙인되는 희한한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었을까? (참고로 ‘공산전체주의’는 네이버도 모르는 말이다)

아무튼 나는 무섭기도 하지만 우습기도 하다. 무섭다는 느낌은 다시 공안 통치를 자행할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건 겁이 나지 않는다. 단지 형편없는 말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말해도 되는 세상이 지속할까 하는 두려움이다. 우스운 느낌은 이렇게 말하면 부끄러울 텐데 하는 감정이다. 유승민, 이준석, 진중권마저도 속으로 생각하더라도 어떻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을까? 윤석열은 이렇게나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다. 여기에다 이렇게 말해도 환호하는 지지자들이 30%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독립운동은커녕 반독재 민주화운동 근처도 가보지 않았을 조상을 가진 세력들이 이렇게 활개 치도록 만들었나 싶어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이런 상황이 두렵다. 지금 온 인류가 힘을 쏟아야 할 것은, 인류의 생존이 걸린 기후위기를 줄이거나 적응해 나가는 203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을 1.5도로 막아내는 탄소중립을 가는 결정적인 에너지전환, 생태문명전환의 전기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온 국민을, 더 나아가 국제사회 전체를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게 해야 함에도, 겉으로는 기후위기를 말하지만 결국 속셈은 여전히 경제성장이나 국가경쟁력, 개인의 성공만을 향해 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미국 정부가 부추기고 있다는 것에 더 화가 난다. 일본 정부야 늘 그래왔으니 그르려니 한다. 지금 당장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하지만, 한반도나 국제 정세가 돌아가는 꼴을 보니 아무래도 기후위기를 막는 일은 불가능한 모양이다.

이 여름 우리가 겪고 있는 폭염-장마-폭염-태풍-폭염의 기후와 하와이 산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산불과 이상 기후를 두려워 하면서도, 당장 우리 앞에 닥친 정치 현실을 보면서 한숨만 쉰다.  

 
   
 








 [임성무 칼럼 7]
 임성무 / 대구 화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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