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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를 넘어서는, 용서를 위한 전제
[김문주 칼럼] 빛을 찾아가는 길
2023년 08월 16일 (수) 11:17:15 평화뉴스 김문주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모두가 느끼는 것처럼, 우리 공동체가 매우 험악해졌다. 개인들 간에도 분쟁이 넘쳐나고 집단 간에도 몹시 사납다.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과 분쟁이야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요사이 한국사회의 관계 양상은 피로사회 그 자체를 현시(顯示)하고 있어 뉴스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피곤이 몰려오는 듯하다. 물론 매체의 발전을 이유로 꼽을 수도 있을 테고, 사람들의 본능과 감정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보도 관행이 더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관계의 장애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그 양상이 심각해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우리 사회에 문제가 되고 있는 익명의 다수를 향한 무차별적 공격, 전혀 양상은 다르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 중 적잖은 경우가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와 갈등에서 기인한 것들이다. 전자는 부정적 정념(情念)이 외부를 향한 것이고 후자는 스스로를 향한 것인데, 결국 해결되지 않는 정념이 존재를 삼킨 셈이다. 해소되지 않은 관계의 정념들이 우리의 공동체와 구성원들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르상티망(ressentiment)’은 분노나 적의를 뜻하는 영어 ‘resentment’에 해당되는 프랑스 어휘로서 약자(혹은 피해자)가 강자(혹은 가해자)에게 품는 질투, 증오, 복수심, 열등감 등이 뒤섞인 감정, 무력감, 자존감의 상실 등 수많은 복합적 감정이 오랫동안 쌓여 내면에 자리 잡은, 단순한 분노보다 훨씬 복합적인 감정의 응어리를 뜻하는 개념이다. 약자나 피해자가 느끼는 정념의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차별이나 불공정 등 부당한 상황에 노출되고 혐오나 비하 등 부정적 감정을 지속적으로 겪게 되면 사람들의 내면에는 르상티망의 정념이 자리하게 되고, 이것이 해소되지 않으면 타자나 스스로를 파괴하는 독소로 작용한다.

문제는 ‘분노’로 범칭할 수 있는 이러한 부정적 감정의 덩어리가 단순히 몇몇 개인의 내면 상태가 아니라 적잖은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정념이라는 점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동종 범죄가 줄을 잇고, 특정 사고로 인해 삶을 마감하는 사람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깊은 애도를 표하며 거리로 나서는 일은, 지금-이곳의 사건·사고들이 예외적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일시적이거나 즉흥적인 사태가 아님을 뜻한다. 사람들의 내면에 잠복한 분노의 정념이 사건·사고를 통해 분출되고 있는 것인데,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분노의 양상을 ‘본능적 분노’ ‘성찰적 분노’ ‘파괴적 분노’로 나눈바 있는 철학자 강남순에 따르면, 이러한 우리 공동체의 상태는 본능적 분노가 파괴적 분노로 커져 증오와 복수의 폭력으로 전이된 것으로써 사람들의 내면에 축적된 르상티망의 정념이 용서로 길을 내지 못한 채 타인이나 스스로에 대한 파괴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분노 자체는 악이 아니다. 본능적 분노는 부정적인 상황으로부터 우리 자신과 다른 이들을 보호해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문제는 이러한 분노가 해소되지 못한 채 파괴적인 행위로 표출되고, 이러한 사건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성찰적 분노가 동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후속 조치들이 만들어지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당한 상황에 상처를 입고 부정적 감정 속에 놓인 이들이 자신의 삶에 자리 잡은 내부의 부정적 감정을 떨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들을 조성하지 못한다면 분노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피해자나 수난자가 고통스러운 과거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미래를 도모할 수 있도록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조치들이 취해져야 한다.  
 
   
▲ 대구경북지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현재 생존자는 이용수(95.대구) 할머니와 박필근(95.경북 포항) 할머니 2명뿐이다. / 사진 출처.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홈페이지

분노를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원천은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는 일이다.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일의 경과는 어떠했는지, 누가 무슨 일에 어떻게 관여하였고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일의 선후와 연관 내용들이 낱낱이 구명되는 일이야말로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이다. 진실과의 대면을 피하거나 묵과(默過)하는 것은 부당한 사태를 반복하게 하는 일이며, 구성원들이나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피해자로서의 삶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하는 일이다. 이는 약자나 피해자가 스스로 자신에 대한 존중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말소하는 일이다.

사건의 사실을 명확히 하는 일, 그것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피해자들로 하여금 고통스러운 과거로부터 해금(解禁)되어 새로운 삶의 장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수많은 수난의 당사자들이 한결같이 요구하는 것은 진실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이는 진실에 대한 규명이야말로 과거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단서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피해자들, 일본군 위안부나 강제징용자들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당사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확한 사실 규명과 이에 기초한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이다. 이를 단순히 국가 간의 미래나 평화라는 미명하에 진실에 대한 규명이나 사과를 건너뛴 채, 국가가 앞장서서 피해자의 고통을 돈의 문제로 환산하여 처리하려는 태도는 피해자들로 하여금 과거의 끔찍한 상처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일이며, 피해자들의 자존을 반복하여 훼손하는 2차 가해이다.

국가는 ‘사면’은 할 수 있지만, 결코 ‘용서’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국가나 정부가 개인의 수난과 슬픔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용서는 피해 당사자인 개인만이 할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이 규명되어야 한다. 제대로 된 사과가 선행된다면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용서와 화해는 망각이 아닌 기억에서 시작되고, 그것을 기억하는 과정은 성찰적 분노를 동반한다. 기억과 분노는 용서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진실과 마주할 능력이 없는 공동체에 어찌 건강한 미래가 주어질 것인가. 용서와 화해는 선물처럼 오지 않는 법이다. 그것은 기억하고 분노하는 주체들, 그들의 천신만고(千辛萬苦)의 고투 끝에 당도하는 것이다. 광복 78주년에 용서의 의미를 재삼 생각한다.

 
   
 








 [김문주 칼럼 1]
 김문주 / 문학평론가. 영남대 국문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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