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이주민 정책이 전반적으로 모순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E-9(비전문취업)' 외국인근로자 고용 비자 한도를 정부는 올해 16만5,000명으로 늘렸다. 역대 최대 규모 수준이다. '외국인력 도입 확대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다.
정작 현장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강제 단속과 추방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그 탓에 반인권적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고용, 의료, 난민, 종교 등 각종 분야를 둘러싸고 대구경북 현장에서도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강제 단속·추방을 축소하고, 이주민 정책에 있어 인권 보호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대구경북이주인권대회 추진위원회는 지난 22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인권교육센터에서 '대구경북 이주인권대회'를 열었다.
육주원 경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기조 강연을 맡았고, 토론자로 김헌주 대경이주연대회의 대표, 박정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구지부 변호사,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양선희 미등록이주민건강권실현을 위한 동행 대표가 나왔다. 대구시민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은 3시간가량 진행됐다.
◆ 육주원 "정부·지자체 외국인력 유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단속...모순"
'지자체 외국인 유치를 외치는 시대, 미등록 이주자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화두'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육주원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가 외국인노동자 유치에 나서고 있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육주원 교수는 "정부가 외국인 유치를 위해 지역 특화형 비자를 마련하고, 지자체도 이민 정책 전담 기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면서 "경북도도 'K-드림 외국인 책임제'라는 종합적인 대책을 발표해 광역 비자 제도 마련, 맞춤형 해외 유치설명회 개최 등을 약속했고, 지난해에는 외국인공동체과도 신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외국인 고용 한도는 확대한다고 하면서 불법체류는 단속하고 추방을 하겠다고 엄단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을 일하게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있는 사람을 나가라고 하는 추방 강화 정책이 고용 한도 확대와 더불어 모순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양선희 "이주민들, 건강보험 수가 4~5배 병원비 지출...진료 장벽"
양선희 '미등록이주민건강권실현을 위한 동행' 대표는 병원비 '국제수가'가 건강보험 수가의 4~5배, '일반수가'가 1.5배~2배 수준에 이르러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주민들이 비용 문제로 진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고 밝혔다. 때문에 단기의료관광비자나 장기 치료요양비자를 제외하고 국제수가, 일반수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선희 대표는 "의료비가 100만원이 나오는 진료를 이주민은 400~500만원을 내야 하니 병원에 가기가 쉽지 않다"면서 "병원에서도 미수금이 많아지니 이주민들에게 보증금을 받는 방식을 채택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한 베트남 여성이 병원에서 보증금을 내라고 하는데 돈이 없어 도움을 요청한 사례를 들었다. 양 대표는 "숨이 가빠져 입원을 해야 하는 한 베트남 여성이 병원 원무과에 전화했는데, 처음에 보증금 2,000만원을 내라고 했다"면서 "여성이 깎아달라 하니 1,000만원까지 내려온 상황에 우리에게 도움 요청이 왔다. 병원 측에 의료비를 못 낼 경우 우리가 보증하겠다고 이야기해서 500만원 정도 보증금을 내는 걸로 하고 모아둔 돈으로 입원을 했던 사례가 있다"고 했다.
◆ 김헌주 "보호 밖 미등록 이주노동자...지나친 단속에 유산(流産)까지"
김헌주 대경이주연대회의 대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법과 제도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지나친 단속으로 이주민들이 다치고 있다는 사례를 들었다.
김 대표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보장돼 있지 않고, 지역 간 제한도 언급하고 있다"면서 "이주노동자들의 노예 제도인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노동허가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출입국관리법에 대해서는 "가장 큰 문제는 임의조항이 강제조항이 된다는 것"이라며 "법은 '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놨지만, 이주노동자들에게 출국을 권고하는 서류 발급 없이 바로 체포해 강제 출국시킨다. 법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전락될 수밖에 없도록 하면서 인권을 보장하지 않고 추방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6월 출입국사무소가 경주지역의 한 태국 임산부에 대한 과도한 단속으로 유산에 이르게 한 사건을 들었다. 김 대표는 "울산출입국사무소가 지역 특성상 경주지역에 단속을 오는데, 태국 국적 임산부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임산부가 다쳐 결국 아이는 유산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 박정민 "난민심사 기간 긴데도 취업 등 생계유지 방법 없어"
박정민 민변 대구지부 변호사는 난민심사가 평균적으로 2년~4년 정도 걸리는데도, 그 기간 동안 생계를 유지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박정민 변호사는 지난 2021년 아프리카 난민 신청자·재신청자 여성 6명이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를 상대로 취업을 허가해달라는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까지 간 끝에 불허 결정이 난 사례를 들었다. 박 변호사는 "소송 당사자 중 다수가 난민 재신청자였는데, 출입국사무소에서는 적법하게 한국에 체류할 수 있는 비자가 없기 때문에 취업도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고 밝혔다.
또 "난민 신청자도 난민 신청 이후 6개월이 지나 취업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근로계약서·사업자등록증 제출 등 사업주의 도움이 필요한데, 보통 2~3개월 단위로 연장해야 하는 G-1 비자(난민비자)는 취업 시 계약 기간 설정에 한계가 있어 사실상 취업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서창호 "대구 이슬람사원 갈등 4년째...북구청 대안 없어" 비판
서창호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는 "대구 북구 대현동 이슬람사원 갈등이 벌써 4년째로 접어들었다"면서 "하지만 북구청이 이슬람사원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너무 얄팍하고 대안이 없다"고 비판했다.
서창호 활동가는 "북구청에서 이슬람사원을 담당하는 부서가 건축주택과인데, 이 문제는 단순한 건축 문제가 아니"라며 "사회적·문화적 갈등을 해결하고, 지역 주민을 설득하는 등 부서 간 협력이 이뤄져야 하는데 전혀 아니다"고 비판했다.
이어 "현재 한국 사회의 이주민들에 대한 태도는 예전보다 훨씬 더 공격적이고 폭력적 형태로 내면화됐다"면서 "이주민들이 서로 관심을 갖고 연대하며, 그 속에서 정주민도 함께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 이주활동가 선언..."단속추방 중단·차별받지 않을 권리 보장"
토론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토론이 끝난 뒤 '2024년 대구경북이주인권대회 이주활동가 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회사나 학교 등 삶의 뿌리가 되는 곳에서 이주민들은 한국 경제를 떠받치며 제 삶을 녹여 버팀목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며 "그러나 실상은 자국민 보호라는 미명 하에 미등록 이주민을 제멋대로 체포하거나 구금하는 등 이들을 향한 차별과 배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돈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아니라 사람이 먼저가 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더 빼앗기고 착취 받는 이주민들과 함께 손잡자"면서 "자본주의에서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과 함께 연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인권 보장 ▲미등록이주민에 대한 단속추방 정책 중단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법과 제도 정비 ▲아플 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 보장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 보장 ▲대구 이슬람사원 평화적 건립 ▲이주노동자 최저임금 차등적용 시도 중단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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