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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현장, '새벽'에 얻은 나눔과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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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사람들> 연재를 마치며..."일상의 감동, 잊지 않겠습니다"

 

 "백번 서민을 말로 위하는 것 보다, 한 번 직접 보는 게 낫다"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들 가운데 열에 아홉은 '소외된 이웃을 위해, 서민을 위해'라는 이유를 든다. 나도 역시 그랬다. "소외된 이웃을 위하겠다"며 평화뉴스에 들어왔다. 입사 한 뒤 쪽방과 노숙인급식센터, 홀몸어르신, 인력시장을 비롯해 소외된 계층을 찾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들었다. 또, 그만큼 서민을 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입사 두 달이 갓 지났을 무렵, 서민들의 삶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기회가 생겼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 기획기사였다. 1월1일 새해 첫 시내버스를 취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반응도 좋았다. 새해 새벽에 취재할 내용을 찾던 중 떠올렸던 아이템들을 매주 한 차례씩 취재해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나의 '새벽'은 시작됐다.

쓰레기 수거차량 뒤편 압착기에 쓰레기를 싣고 있는 환경미화원들. 연탄재가 많이 날려 마스크를 꼭 쓰고 일해야 한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③> 환경미화원 / 여름 악취 겨울 연탄재, 묵묵히 거리에서... (2011.1.20)
쓰레기 수거차량 뒤편 압착기에 쓰레기를 싣고 있는 환경미화원들. 연탄재가 많이 날려 마스크를 꼭 쓰고 일해야 한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③> 환경미화원 / 여름 악취 겨울 연탄재, 묵묵히 거리에서... (2011.1.20)

새해 첫 시내버스부터 도매시장, 환경미화원, 응급실, 새벽 세차, 페지 줍는 노인, 새벽시장, 떡 가게, 신문지국에 이르기까지 모두 10회에 걸쳐 '새벽을 여는 사람들' 기획기사를 연재했다.

"어, 이런 것도 있었어?" 할 만한 '새벽'이란...

그러나 1월 1일부터 지난 주까지 매주 새벽 취재를 하는게 쉽지 많은 않았다.
내색은 안 해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이번엔 뭘 취재하지?"라는 생각에 둘러싸여 살았다. 독자들이 "어, 이런 것도 있었어?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라고 할 만한 아이템을 찾으려고 노력했었다. 출.퇴근 길에도, 쉬는 날에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그래도 취재 아이템은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당장 내일 새벽에 취재를 해야 하는데도 취재 아이템을 정하지 못했을 때도 있었다.

고민 끝에 아이템을 정해도 취재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새벽 택배 물류센터의 모습을 담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작업현장의 모습은 '대외비'라는 이유로 각 택배회사마다 거절을 당했다. 아르바이트생으로 위장해서 취재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포기했다. 아쉬웠다.

전화 100통에 찾은 새벽 세차...아들이 알면 안된다는 시장 아주머니

지난 2월, 새벽 세차원을 취재할 때 이틀 동안 100통 가까이 전화를 걸었다. 규모가 큰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뒤져 세차원들의 연락처를 알아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차원들이 취재를 꺼려했다. 당연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밤새 아파트를 돌며 세차를 하는 모습을 타인 또는 가족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한 세차원이 몇 번을 망설이던 중 어렵게 승낙해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새벽 3시, 세차원 안모씨가 동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닦고 있다...<새벽을 여는 사람들⑤> 새벽 세차원 / 장갑 세 겹에도 시린 손, 쉴 틈 없는 새벽 세차(2011.2.10)
새벽 3시, 세차원 안모씨가 동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닦고 있다...<새벽을 여는 사람들⑤> 새벽 세차원 / 장갑 세 겹에도 시린 손, 쉴 틈 없는 새벽 세차(2011.2.10)

비슷한 일은 또 있다. 달성공원 새벽시장을 취재하면서 쑥떡과 가래떡, 땅콩을 파는 한 50대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들과 나이가 비슷하다며 이것저것 물어볼 때마다 친절하게 답 해줬다. 그런데 사진은 찍지 말아달라고 했다. 아들이 새벽에 시장에서 일하는 건 알지만 사진을 보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새벽에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나름의 사연을 갖고 있었다. 어느 누가 이른 새벽부터 고된 일을 하고 싶을까? 새벽 현장의 모습 그 자체가 서민들의 삶이었다. 

아침 7시 30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떨이"를 외치는 상인들과 저렴한 가격에 얼른 물건을 사고 돌아가려는 손님들로 시장이 북적댔다...<새벽을 여는 사람들⑧> 새벽 시장 / 훈훈한 새벽 인심, 달성공원 '반짝시장'(2011.3.9)
아침 7시 30분,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떨이"를 외치는 상인들과 저렴한 가격에 얼른 물건을 사고 돌아가려는 손님들로 시장이 북적댔다...<새벽을 여는 사람들⑧> 새벽 시장 / 훈훈한 새벽 인심, 달성공원 '반짝시장'(2011.3.9)

가장 사건 많은 지구대...가는 날이 장날?

취재 과정에서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있다. 새벽 지구대를 취재할 때였다. 북부경찰서와 중부경찰서에 가장 사건이 많은 지구대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칠곡 지역의 동천지구대를 추천받았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하필 그날따라 비가 내리는 바람에 사건이 하나도 없었다. 조용했다. 그러나 조용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본 그대로 기사를 쓰기로 했다. 사건이 없어도 예방을 위해 매 시간 순찰을 한다는 내용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쨌든 기사를 쓰기는 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사회적으로 본다면 사건이 없는 게 좋은 일이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새벽3시쯤 동천지구대 전영국 경위와 이영호 경사가 태전동 대학로 일대를 순찰하고 있다. 사건이 없어도 예방을 위해 매 시간 순찰을 해야 한다...<새벽을 여는 사람들⑥> 경찰 지구대 / 사건 없어도 쉴 틈 없는 지구대의 새벽(2011.2.18)
새벽3시쯤 동천지구대 전영국 경위와 이영호 경사가 태전동 대학로 일대를 순찰하고 있다. 사건이 없어도 예방을 위해 매 시간 순찰을 해야 한다...<새벽을 여는 사람들⑥> 경찰 지구대 / 사건 없어도 쉴 틈 없는 지구대의 새벽(2011.2.18)

1월 1일 새해 첫 시내버스...

취재 하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다 기억에 남는다. 이 가운데 특별히 기억나는 사람 또는 현장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첫 취재 때 만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1월 1일 새벽 첫 시내버스를 운행한 달구벌버스 이형문 기사와 그 버스에 탔던 사람들이다.

"새해라고 특별한 건 없다"던 이형문 기사는 손님들이 탈 때 마다 일일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에 새해를 맞아 등산을 가던 30대 직장인도, 아파트 경비 일을 마치고 퇴근길에 오른 60대 경비원도, 갓 전역한 뒤 영화관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던 휴학생도, 동대구역 도시락 전문점에서 일하는 한 50대 아주머니도 환한 웃음을 지었다. 새해를 실감하는 듯 했다. 일상의 작은 감동이다.

새해 첫 버스의 시동을 거는 이형문(51)씨와 첫 손님인 정순미(31)씨...이들은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사님도 새해 복 많이 반으세요"라며 반갑게 인사했다...<새벽을 여는 사람들①> 시내버스 기사 /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춥니다"(2011.1.2)
새해 첫 버스의 시동을 거는 이형문(51)씨와 첫 손님인 정순미(31)씨...이들은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사님도 새해 복 많이 반으세요"라며 반갑게 인사했다...<새벽을 여는 사람들①> 시내버스 기사 /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춥니다"(2011.1.2)

취재를 하면서 한 편으로는 이들에게 폐를 끼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현장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바쁘다'였다. 눈 팔 틈 없고 손 쉴 틈 없었다. 바쁜 새벽에 취재한답시고 끼어든 내가 오히려 짐이 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옆에서 일일이 캐묻고, 사진 찍고 했던 것이 매우 귀찮고 피곤했을 것 같았다.

사람사는 온기 가득한 새벽 현장...'나눔과 섬김'의 가치를

또, 고작 서너 시간 잠깐 보고는 마치 서민의 삶을 다 이해한 듯 한 모양새가 되진 않았을 까 걱정됐다.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겠다. 선거철만 되면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재래시장을 찾아 사진 한 컷 찍고 가는 정치인들과 하루 잠깐 찾아와서 몇 가지 묻고 마치 다 아는 것 마냥 글을 쓰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무척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어도 한번은 작게나마 경험을 해봤다는 것이다. 사람사는 온기 가득한 새벽 현장의 모습을 직접 둘러봤다. 모르고 쓰는 것과 조금이라도 알고 쓰는 것은 차이가 있다. '새벽'의 경험만으로 이들의 삶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분명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10주 동안의 경험은 정말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경험을 가슴 속에 잘 간직한 채 나눔과 섬김의 가치를 기사에 잘 담아내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정 할머니가 폐지와 고물이 담긴 리어카를 끌고 인근 고물상으로 향하고 있다...<새벽을 여는 사람들⑦> 폐지 줍는 노인 /  밤새 주워도 몇 푼...할머니의 고단한 새벽(2011.3.2)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정 할머니가 폐지와 고물이 담긴 리어카를 끌고 인근 고물상으로 향하고 있다...<새벽을 여는 사람들⑦> 폐지 줍는 노인 /  밤새 주워도 몇 푼...할머니의 고단한 새벽(2011.3.2)

"새벽, 떠오르던 해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참고로, '혹사'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새벽 취재 때는 평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잠을 잤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새벽 취재를 마친 뒤 오전 내내 푹 쉰 다음 기사를 썼다. 배려를 많이 해줬기에 그동안 '새벽을 여는 사람들' 기사를 이어 올 수 있었다.

이제 '새벽'을 마치려 한다. 그동안 기사에 부족하고 서툰 점이 많았음에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독자들과 마음껏 기사를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준 평화뉴스에 감사를 드린다. 새벽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떠오르던 해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직 세상은 아름답다.






글.사진 / 평화뉴스 박광일 기자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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