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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에 대한 근원적 물음
김성아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오자와 마키코 저 ㅣ 박동섭 역 ㅣ 서현사 ㅣ 2010 (원저 2001)
2012년 03월 23일 (금) 00:07:35 평화뉴스 pnnews@pn.or.kr

2011년 거의 십여 년 째 구독하고 있던 교육 격월간지 민들레에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글이 있었다.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헛, 이것 봐라, 심리학이 아이들 편이 아니면 누구 편이란 말이야? 최근 이 책을 번역한 박동섭 교수의 다른 글들을 읽다가 이 책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에, 또 전문가와 전문성에 쉽게 우리 자신을 홀라당 맡겨버리는 그 이면을 살펴보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자기주도성조차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이 구조를 내가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의 저자는 오자와 마키코, 임상심리학 전문가이자, 일본에서 가장 가사를 아름답게 쓰는 가수로 정평이 나 있는 가수 오자와 켄지의 어머니이다. 이 둘째 아들이 저자 머리말에 나오는 여섯 살 때 유치원을 자퇴한 그 아들이다. 저자를 자세히 알아보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도 아직까지 오자와에 대해서는 그닥 아는 바가 많지 않지만, 이 책에 배여 있는 그녀의 진솔한 경험과 이야기에서 그녀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 -교육으로부터의 해방

   
▲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오자와 마키코 저 ㅣ 박동섭 역 ㅣ 서현사 ㅣ 2010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보자. 심리학, 아이들 편, 교육, 해방. 또 하나, 아이들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아이 키우기 즉 육아는 ‘일하기’ ‘놀기’ ‘쉬기’ 중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자. 나는 이것을 어느 바구니에 넣고 있는가. 이 책에서 하라 히로코는 캐나다에 있는 ‘헤어 인디언’마을에 살면서 문화인류학적 조사를 통해 그들은 ‘놀기’ 바구니에 넣는다고 보고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생각하면서 읽어나가자. ‘일하기’에 넣을 때와 ‘쉬기’바구니에 넣을 때는 무엇이 달라질까.

현대 사회를 살면서 이런저런 이름의 심리검사는 지능검사, 적성검사와 더불어 누구나가 한번은 받아봤음직하다. 지능검사와 적성검사는 학교라는 사회에 들어서면 받게 되는 것이고, 심리검사는 재미로 하거나 취업을 위한 필수조건이어서 하게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일단 아이들과 연관지어 이야기하면서 심리학은 교육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왜 ‘해방’이라는 단어는 갖다 붙였을까? 그것도 교육으로부터의 해방이라니.

심리학은 일단 심리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어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돕기 위한 학문이 아닌가? 꼭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도 더 나은 삶을 위한 학문 도구가 아닌가? 긍정심리학, 인지심리학, 교육심리학, 상담심리학, 행동주의 심리학, 구조주의 심리학, 설득의 심리학 등등등. 저자 자신 심리학 공부를 마친 후 1960년대에 10년 정도를 상담과 임상심리학 연구에 몰두하며 2명의 아이를 키우고 심리테스트 관련 저서를 집필하기도 하였으면서 말이다. 오자와 마키코는 “왜 심리학에 의문을 갖게 되었는가?” 저자 머리말은 이 물음으로 시작하며 이렇게 답을 하고 있다. “그것은 심리학이 약한 입장(아이, 내담자, 피험자, 장애인)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은연중에 관리하고, 때로는 그들을 묶어두는 정교한 새그물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자각하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직업과 심리학의 전문성에 관한 의문이 시작되었던 첫 계기는 자신의 아이들과의 생활속에 있었다. 또 하나는 심리테스트와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말에 있었다 한다. 여기서 우리가 눈치채야 하는 것은 개인의 경험이라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관찰과 성찰이 의식의 변환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자와 마키코가 이것에만 머물렀다면 그저 또 하나의 꽤 괜찮은 반론 정도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자와 그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을 우연이라고 부르지만, 그 인연 즉 주민운동과의 인연으로 의식의 변환, 생명의 변화를 우리와 나누는 힘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문제는 어떤 시각을 갖고 우리 앞에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꼼꼼히 생각해 볼 것인가에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저자가 말하듯이 격물하여 치지하는 것이다.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말하듯, “심리학은 부드럽고 상냥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비전문가들에게도 꽤 인기가 있는 학문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주로 임상심리학인데 이 학문은 아이의 발달을 돕고, 문제해결에 기여할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 편’이라고 인식되어져 왔다.”

심리검사와 심리상담, 상담치료로 우리가 쉽게 이해하는 심리학은 먼저 아이들을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심리검사가 필요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심리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그리고 그 다음은 그 아이가 그런 문제를 일으킬 수 밖에 없었던 심리(여기엔 가족관계, 친구관계, 교사와의 관계 등이 포함된다)상태를 파악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당연히 부모 특히 엄마와의 관계이다. 사실 이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아니 아마 죽을 때까지도 따라다니는 가장 중요하거나 기본이 되는 원인으로서의 관계로 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아이 관계는 평등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오자와 마키코는 “등교거부 아이에 관해서 종종 유아기때부터 부모-아이 관계가 비뚤어진 것 때문에 자아형성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나로서는 납득이 안 간다. 유아기 때의 경험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배후에는 부모를 궁지로 몰아넣는 특별한 장치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그렇다면 그 배후와 장치를 드러낸다.

이 책은 크게 1부 ‘교육심리학 재고’, 2부 ‘서로 배우는 일상으로부터’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7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머리를 바위로 치는 듯한 충격을 주는 것이 아마 1장 ‘발달’에서 ‘생명의 변화’로 가 아닐까 싶다. 발달=선 이라는 명제를 너무도 당연히 여기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것은 오히려 억압성의 구조라 한다.  ‘느려도 괜찮아 그래도 좋아’라며 웃을 수 있는 ‘생명의 변화’로 우리 아이들, 아니 우리 인간을 봐야 하지 않은가 라고 한다. 발달은 올라가야 할 단계와 성취해야 할 완전태를 상정한다, 그래서 이것은 이미 불평등을 전제로 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자크 랑시에르의 책「무지한 스승」이 떠오른다. 설명자의 질서를 가진 교육은 지적 능력의 불평등을 전제한다고 말하고 그것은 예속과 복종의 관계이니 스승과 학생은 해방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심리학은 아이들 편인가?」는 7장 부모-아이 관계론으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하며 ‘아이 키우기’가 아니라 ‘아이와 같이 하기, 아이와 함께 살기’, 즉 해방하는 관계를 역시 말하고 있다. ‘관계의 해방’이 아니라 ‘해방(하는) 관계’를 말한다. 따로 읽고 나서 요즘 다시 이 두 책을 같이 읽는데 「무지한 스승」에서 배운 ‘보편적 가르침’ 즉, ‘무엇이든 배우라.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연결하라’가 저절로 실천되며 ‘공부하는 재미’를 느낀다. 2장 ‘학습이라는 이름의 상실’에서 말하는 의욕까지도 조작하는 심리학의 이면을 볼 수 있다.

심리 검사, 그 중에서도 지능검사가 1905년 프랑스의 비네가 공립학교 내에서 특수학급에 배치할 아이를 선별하기 위해 제작되었고,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포드-비네 검사가 되었다. 이후 심리검사는 세계 1차 대전을 통해 군인들의 능력 감별 방법으로 광범위하게 개발 사용되었다. “지능검사의 탄생과 보급이 공교육과 전쟁, 즉 학교와 군대와 연관된 국가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심리검사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본질이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인간의 효율적인 선별방법이다.”라고 오자와 마키코는 말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이렇다 할지라도 개개인에게 있어서는 심리검사가 도움이 되지도 않은가. 나의 지능을 알고, 나의 성격을 알고, 나의 불안정도를 알고 미리 대처하면 좋지 않은가. 대개 이렇게 느슨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내 주변의 상당수가 자신의 아이큐라고 하는 지능지수를 나이 40이 넘도록 잊지 못한 채, ‘나는 머리는 나쁜데 노력을 안 했대.’ ‘나는 노력도 별로 안 했는데 아이큐가 140이 넘어서 늘 상위권이었어.’ 또는 ‘나는 내향적이고 우울기질이 있대’ 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아이들 또한 지능검사 후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자기들끼리 ‘쟤는 우리 반에서 머리가 제일 좋은 애’라는 식으로 등수를 매긴다. 사람은 누구나 궁구하지 않으면 그냥 특정한 사회의 장치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심리검사나 지능, 학교 교육의 이면에 대해서는 여타의 다른 책이나 주장을 통해 이러저러하게 생각해 볼 기회가 꽤 있었지만, 발달에 대해 근원적 물음을 이처럼 강하게 제기하는 책은 처음 만났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발달은 곧 선, 인간은 평생 발달, 발전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강박이 우리 사회 도처에 선의를 갖고 자리잡는 특정한 상황을 보는 눈, 세상이 환해지는 재미를 느낀다.

이 글의 시작에서 헤어 인디언의 이야기를 했다. 헤어 인디언이 육아를 ‘쉬기’로 분류한다는 것은 ‘발달’이 아니라 ‘생명의 변화’로 보자는 오자와 마키코의 주장과 맞닿아있다. ‘일하기’롤 분류하면 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고, 이는 전문가,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이어지며 비교를 통한 불안이 생기는 일련의 과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오자와의 주장에 십분 공감하더라도, 다음에 이르러서는 꽤 당황하게 된다. “아이키우기의 비결은 거칠게, 여유롭게, 적당히라고 단언한다. 육아니 뭐니 하더라도 최종목표는 아이를 살려두는 것이다. 즉, 죽지 않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라는 이토의 주장을 빌려와 “이토식의 그냥 내버려두기 육아는 아이와의 삶을 재미있어하고, 놀이 감각으로서의 아이 키우기이고 발달이라는 위압적인 느낌이 드는 테마를 뛰어넘는 여유로움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러나 그 여정을 저지하는 것이 학교”이다.

그러나, 당장 그럼 학교를 없애자는 것인가 뭔가라는 식으로 시시비비를 따져 결론을 내리려 하지 말고 격물치지의 심정으로 곱씹어보자. 특히나 발달의 개념에 대해서. 이 부분에 대한 오자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발달이라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의 방식을 의미하고 있는 가치개념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있어 바람직한 것일까? 그것은 아이, 청소년을 국가,사회의 자원으로서 정의하는 시점에 의해서일 뿐이고, 반드시 아이, 청소년의 입장에서의 가치관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발달과제라는 것은 개인이 정상적인 발달을 성취하는 데 있어 각각의 발달단계에서 달성하는 것이 기대되는 과제라고 알려져 있는데 여기서 정상을 결정하는 것은 전문가이고, 달성을 기대하는 것은 지배하는 측이다. 당사자 본인이 “나는 이대로 좋습니다. 제발 신경 쓰지 마세요.”라고 말해도 그게 통용되지 않는 구도이다.
사람의 일생은 끊임없는 변화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발달개념이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증대, 증진, 진보라는 일방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생명체는 생명이 시작되고 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태양이 시시각각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변화를 거듭한다. 그것은 동물에게도 식물에게도 똑같으며 살아 있는 생명체가 움직이는 법칙이기도 하다. 수태로부터 죽음에 이르는 세월 속에서 증대와 증식도 있고, 축소, 감퇴도 있으며 생명은 정지로 향한다. 우리는 이러한 생명 덩어리를 전체로서 보면서 발달이 아니라 생의 변화로 새롭게 보고, 어느 시기에도 생명을 둘도 없는 것으로서 정의하는 가치의 반전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


나를 위로해주고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온갖 심리학이 넘쳐나는 시대에, 역자 머리말의 다음 글이 와 닿는다. “‘심리학이란 학문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심리학의 전제는 어떻게 학교교육과 우리의 일상에 침투되어 있는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은 반드시 아이들에게 도움이되는가?’ ‘발달이란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인가?’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와 같은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삶에 침투하여 이제는 그 진위를 향해 날카로운 회의의 눈길을 던지는 것 자체가 낯설어진 교육과 심리학에 관한,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간에 관한 물음들을 되새기고, 나아가서는 역자가 아직 자각하지 못한 우리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물음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 속의 길] 61
김성아 / 예방의학 전문의. 대경인의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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