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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우 / 불편한 진실, '제명'의 정치학


엊그제 모처럼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힐링캠프’에 안철수 교수가 등장했다. 아버지는 채널을 고정하라시며 안 교수 칭찬에 여념이 없다. 반면 어머니는, 이번에는 박근혜 의원이라며 쓸데없는 소리 말라신다. 과거 반골기질로서 괄괄한 성격의 어머니는 김영삼 정권 이후 철저히 여권으로 기울어지셨고, 평생토록 공교육에 봉직하신 아버지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 지지를 계기로 정반대의 입장이 되셨다.

논쟁이 격화되면서 예의 부부싸움이라도 벌어질 조짐이 보인다. 안절부절 새내기 신혼부부인 여동생 내외도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보통 이런 다툼에는 진보정당의 후보로 공직선거에 세 번씩이나 출마한 아들(필자)의 의견이 중화제 노릇을 톡톡히 해왔다. 한국사회 현실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큰 이야기의 틈바구니에서 소금 같은 진보정당의 작은 이야기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화제 전환으로 모면하기 위한 단골메뉴였기 때문이다.

어제도 통합진보당 이슈가 휴전(休戰)의 모멘텀이 되긴 했다. 다만 과거 양상과 다른 점은 당신들께서 잠시 말씀을 내려놓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일심동체로 이석기∙김재연 의원을 변호하는 자식을 ‘고립’시키는 게다. 지난주에는 서울에서 고교시절 친구들을 20년 만에 만났는데, 이번 총선에서 우리 당을 지지한 그들도 하나같이 ‘제명’건을 입에 담았다.

그렇다. 지금 통합진보당을 안주 삼는 프레임은 두 의원의 ‘제명’이다. 제명을 찬성하면 혁신이요, 그렇지 않으면 수구라는 논리가 득세한다. 제명 천국, 거부 지옥이다.

밖으로는, 제명만 이뤄지면 야권연대가 보란 듯이 복원되고, 정권교체의 불씨도 살아날 것이란 말이 설교의 논리로 작용한다. 야권연대의 거대 파트너는 아예 부정선거 몸통을 이유로 국회의원직 박탈까지 추진할 입장이다. 안으로는, 제명만 이뤄지면 ‘진보시즌2’가 가능하다며 그 지지 여부를 혁신파와 수구파의 기준으로 삼는 편 가르기가 횡행한다.

불편한 진실, '제명'의 정치학

곁눈질하지 않고 진보정당 운동에 열성을 바쳤던 사람들이라면 정치적 생명의 모든 것인 당의 부정에 좌절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제 심장에 못을 박고 살점을 모두 도려내야할 만큼 심각하더라도 진실이라면 그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일이다. 부정의 당사자를 떠나, 다시 재기하기 위해 공동의 책임을 나눠 갖자는 것 역시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문제의 ‘5월2일’ 이후 우리 당이 감내했던 내홍에는 위의 공동책임론이 무색할 사건들이 등장한다.

인터넷투표 1위를 기록한 오옥만 후보가 대리투표의 정황이 뚜렷한 일부 현장투표의 집계로 비례대표 순번 1번에서 9번으로 밀린 사건, 개표결과 8번으로 낙점된 노항래 후보가 일부노조의 거센 반대로 10번을 수용한 배경을 조사하고 정치적 처분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1차 진상조사보고서의 부실 문제는 이미 도마 위에 오르내린지 오래다.

조사가 시작된 원인 규명은 없고 인터넷 투표 값의 조작 등을 통한 부정선거로 두 의원이 당선되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내놓은 채, 억울하지만 받아들이라고 강요한 일은 공평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은 처사였다.

2차 진상조사보고서와 김인성 교수의 기술검증보고서를 둘러싼 공방을 통해 ‘진짜’ 부정선거의 실체가 드러난 오늘에도, 불명예를 풀지 못한 두 의원의 제명만이 절대선인 것처럼 여기는 정치행위가 지속된다. 당신들이 직접 부정에 연루되지 않았으나 일부 부정선거 사실이 드러난 만큼 공동책임을 지자는데, 왜 의원직이라는 기득권에 연연하는지 따지는 것도 솔직하지 못하다. 안팎의 여론으로 괴물을 만들어 오다, 이제 와서 공동책임 운운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차라리, 당권파라는 괴물이 싫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강고한 조직력으로 당원총투표 때마다 힘을 발휘해 온 저들이, 야권연대 전략지에 출전한 모든 후보가 당선되는 괴력의 저들이 익숙하지 않은 데 따른 의혹이 있었다고만 말하는 게 옳다. 그리고 종북주의 혐의가 짙은 저들과 함께 있다가는 수구검찰의 칼날에 언제든지 베일 수 있다는 피해의식도 만만찮았다는 게 흔쾌한 진심일 수 있다. 그러나 술자리에서 안주 삼아 욕할 수는 있지만 진실 아닌 것을 들고 정치적으로 매장하려는 일은 별개의 차원이다.

결국 제명을 둘러싼 공방은 헤게모니를 향한 이전투구일 뿐이다. 유권자와 함께 하는 현대정당에 맞지 않은 선거관리의 부실은 행정의 보완으로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진실에 기초하지 않은 방법으로 당권에 접근하는 것은 진보정당 운영원리에도 맞지 않으며 이 지난한 사태를 풀 열쇠도 아니다.

오늘도 중앙위원회가 열리고 ‘제명’ 건을 논한다고 한다.
예고된 갈등이 다시 재현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기고]
송영우 / 통합진보당 대구 동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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