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팎의 껍데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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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우 / "실력 없이 정치협상에만 기댄, 그리고 진보개혁 시민사회"


참담하다. 지더라도 최소한, 내일을 준비하자는 희망을 길어 올릴 수 있었다면 이토록 비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구는 물론 전국적 패배가 준 울분이 쉬 가시지 않는다. 다시 일어서자는 격려를 말해본들 지지자들의 마음조차 붙들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여기저기서 대구를 떠나고 싶다는 탄식이 울린다. 어제까지 짝사랑한 애인에게, 오늘이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냉소로 등 돌리는 격이다. 적어도 지금, 나 역시 그 대열에 어정쩡하게 걸터앉아 있다고 실토한다. 대구와 대구시민들을 어찌 할꼬 하는 이 집단적 트라우마는, 아마도 꽤 오래 갈 것 같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하는 분석을 하기 이전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할 분들이 계신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반칙과 특권이 압도하지 않는 상식적인 사회를 바랐던 모든 분들께 사과드린다. 부당해고로 수백일째 싸우고 있는 공장의 해고자들에게, ‘낙하산’ 관료들의 탐욕과 횡포로 만신창이가 된 언론인과 친환경의무급식 같은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는 것만으로 공격당하는 부모들에게 송구스런 마음 가눌 길이 없다.

10년 전 민주노동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나는 꽤 오랫동안 사회운동가로 살아왔다. 그러던 것이 지난 18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선전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정치인이 된 셈인데, 그때까지만 해도 나를 떠민 것은 시린 동토의 땅에 새 봄을 연다는 ‘씨앗론’ 같은 사명이었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대의를 넘어 반드시 이겨야 했다. 배타적 온정주의로 꽁꽁 묶인 ‘정치분지’ 대구에 새로운 길을 뚫지 않는다면, 보수적 지역주의는 더욱 공고해지는 반면 진보의 패배주의는 더 깊이 확산될 것이라는 위기감이 컸기 때문이다. 25년 간 이어진 수구정치의 독점을 심판할 절호의 기회는 곧 위기의 동의어였던 셈이다.

"야권단일화"를 촉구하는 통합진보당 송영우 예비후보 긴급 기자회견(2012.3.12 동구 신천동 선거사무소)...송 후보는 '100% 참여경선'을 제안했으나 임대윤(민주통합당) 후보측이 거부하자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야권단일화' 경선을 치른 뒤 사퇴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야권단일화"를 촉구하는 통합진보당 송영우 예비후보 긴급 기자회견(2012.3.12 동구 신천동 선거사무소)...송 후보는 '100% 참여경선'을 제안했으나 임대윤(민주통합당) 후보측이 거부하자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야권단일화' 경선을 치른 뒤 사퇴했다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그래서였을까. 지난 2월 22일, 예비후보자 신분으로 연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나는 마지막 연설을 망쳐버렸다. 감동은 아니더라도 맥을 짚어 연설하는 것쯤은 자신이 있었던 나로서도 적잖이 당황한 일이었다. 유쾌한 도전과 패기가 아닌, 민심을 받들어 이기겠다는 정치인으로 연단에 선 그날, 나는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었다.

이처럼 우리 캠프는 매 순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갓 통합해 인지도가 약한 정당의 지지를 끌어올릴 비법 탐색에 분주했고, 무엇보다 전국적 야권연대의 타결에 목말랐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런데 대구가 '완주'지역으로 결정되면서 맥이 풀렸다. 어차피 당선가능성이 떨어지니 정당투표 홍보를 위해 각각 출전해도 무방하다는 논리인데, 야권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또다시 중앙당만 올려다봤다. 그러나 당선권에 근접할 만큼 우리 스스로 실력을 키우지 못했으면서 중앙당의 처사만 탓하는 것이  옳은 태도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여기에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쯤에서 함께 모색해 나가며 길을 찾으면 될 일이다. 진심이 가리키는 길을 따라 사력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는 통하지 않겠는가 하고.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던 100% 여론조사 수용은 이런 고민에서 나왔다.
안타까웠던 일은 우리의 결정을 접한 당 안팎의 인사들이 송영우가 선거를 포기한 게 아니냐는 냉소를 가졌을 때다. 그러나 우리는 긴장을 잃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그리고 졌다. 벽을 붙잡고 울었던 사무장의 절규가 아직까지 아프게 사무친다.

대구 '동구갑' 야권단일화 합의 발표 기자회견(2012.3.16 체인지대구 사무실)...(왼쪽부터) 통합진보당 강신우 대구시당공동위원장,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노진철 상임대표, 통합진보당 송영우 후보, 민주통합당 임대윤 후보, 체인지대구 김사열 상임대표, 민주통합당 김현근 대구시당공동위원장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대구 '동구갑' 야권단일화 합의 발표 기자회견(2012.3.16 체인지대구 사무실)...(왼쪽부터) 통합진보당 강신우 대구시당공동위원장,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노진철 상임대표, 통합진보당 송영우 후보, 민주통합당 임대윤 후보, 체인지대구 김사열 상임대표, 민주통합당 김현근 대구시당공동위원장 / 사진. 평화뉴스 유지웅 기자

또 돌아볼 게 있다. 우리 안팎의 껍데기들이다.
단일화라는 구도의 합리성만 갖추면 제 할 일을 끝낸 것 마냥 관조적이었던 시민사회 일부의 분위기는 진보정당을 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우울한 일이었다. 노동자.서민이 매를 맞고 있을 때 가장 가까이서 그분들을 대변하고 헌신해 온 이력은 그러한 합리성 앞에 보잘 것 없었다. 결과적으로도, 건강한 무소속이나 진보신당과의 단일화 없이 이룬 선거공학의 불충분한 합리성은 승리를 주지도 희망을 내포하지도 못했다.

감히 말하건대 진보개혁의 시민사회가 발휘해야 했던 것은 중재가 아니라 책임이지 않았을까. 약자가 알아서 결단하지 않으면 길을 찾기 어려웠던 지난 여정들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실력의 구비 없이 정치협상에만 기댄 내 안의 껍데기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진보의 몫을 양보받기만 원했던 무기력과 동구갑의 야권단일후보에게 모든 것을 바치지 못한 내 안의 이중성이야말로 도려내어야 할 또 하나의 적이다.

어쨌든 대구가 바뀌었다.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기대에서 다시 체념으로.
그리고 2012년 4월의 대구는 보여주었다. 우리 안팎의 껍데기들을. 결국 이 껍데기를 바로보고 제때 솎아내지 않는다면 앞으로 몇 번이고 맞이할 4월 역시, 잔인한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거둘 수 없을 것 같은 이 체념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역시 배반당한 짝사랑을 탓할 게 아니라, 잘못된 사랑의 방정식을 바꿔 제대로 된 연애를 시작하기 위해 다시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곧 선거를 넘어선 진보정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대구의 변화를 위해 고생하신 야권의 후보들과 범야권시민연대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기고]
송영우 / 4.11총선 '동구갑' 예비후보. 통합진보당 대구시당 공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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