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권력과 현재 권력에 대한 언론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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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ㆍ매일신문 '전두환' 때리기...국정원 '대선개입'은 눈가림?


<조선일보> 2013년 7월 17일자 1면
<조선일보> 2013년 7월 17일자 1면

'16년만에'


최근 이른바 메이저 신문이라는 것에 정말 많이 등장하는 인물-전두환. 하도 많이 띄워 어지러울 정도지만 1면에 올린 기사를 중심으로 표를 살펴봐도 정말 많다. 그 중에 압권-「16년만에 찾아 나선 ‘全斗煥 재산’」(조선일보 2013. 7. 17.) 마치 1980년대 (대표적인 ‘기획오보’인) 「김일성 사망」 보도 때처럼 거의 통단 컷을 사용했다(‘기획오보’-김일성이 당시 사망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보기관이 아니라 신문사 내부에서도 다 알고 있었다. 필자는 전두환의 ‘1도1사’주의에 묶여 어쩔 수 없이 대구 유일이 된 모 신문사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편집국 풍경을 옮기면 이렇다. “다른 신문에서도 ‘사망’이라고 다룰 텐데 우리 신문이 다르게 다루거나 아예 다루지 않는다면…” 편집국 중견 고참의 변명 반 강압 반의 회유성 발언에 우린 모두 놀랐고(기자가 저래도 되나? 해서) 기가 팍 죽었다(전두환 정부의 ‘보도지침’이 균형보도와 비판보도를 생명으로 하는 신문사 편집국에 그토록 환영? 받은 데 놀라서).

그런데 참 이상하다. 박정희의 쿠데타를 대물림해서 상관인 육군참모총장을 ‘합수부장’이란 권력으로 제거하고 청와대를 접수한 전두환 시절 자타가 공인하던 1등 신문은 ‘밤의 대통령’을 배출한 조선일보였다. 그 조선일보가 추억 속의 호외를 떠올리는 듯한 제목으로 전두환 죽이기에 나섰다.

아! 제목에 답이 있다. ‘16년만에’ 찾아나섰다는 그게 열쇠. 바로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박근혜 대통령이 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 강조하려는 언론공학 작품. 광주 민주화 운동을 조선일보의 종편이 애써 부인하고 폄하해오고 있는 그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종편 조선의 ‘사과’는 서푼어치도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저 쇼였을 뿐이다.

비판하면 '민주주의 흔든다'?

한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전두환의 언론 근위대를 자처한 조선일보가 이제 박근혜 근위대의 선봉에 선 것이다. 이번에도 말로 한 몫 보려고 한다. 박근혜 번견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말 고리는 민주주의를 운운하면서 문화를 건드린다. 「반복되는 선거 不服, 민주주의 흔든다」 기사(7. 16. 1면) 그 어디에서도 국정원이 저지른 불법 대선 개입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다.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선거 불복’ ‘민주주의 흔들기’로 침을 뱉는다.

<조선일보> 2013년 7월 16일자 1면
<조선일보> 2013년 7월 16일자 1면

'전두환' 언론장악과 '1도1사'

‘리틀 조선일보’로 행세해온 매일신문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 신문은 다산 정약용을 들먹이면서 ‘막말’에 대해 훈계하고 있다(「막말과 더블스피크, 그리고 정치」, 7. 25. 27면 오피니언).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 동안 전두환의 지방 근위대 구실을 보도를 통해 해온 매일신문이 아닌가. ‘대구공고의 전두환’을 시시콜콜 다뤄 부각해온 매일신문.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매일신문이 전두환을 발로 찼다. 「정권초기 ‘司正 정국’ 시작됐나」(7. 17. 1면)로 운을 뗀 이 신문은 3면에선 노골적으로 벗기 시작했다. 「1억원 상당 그림·불상 등 190점 확보…내부엔 ‘빨간 딱지’」 . 조선일보 못지 않게 통단 제목을 붙여 확 벗겼다. 지면 타이틀도 아예 「전두환 일가 재산 추적」이다.

<매일신문> 2013년 7월 17일자 1면
<매일신문> 2013년 7월 17일자 1면
<매일신문> 2013년 7월 17일자 3면(종합)
<매일신문> 2013년 7월 17일자 3면(종합)

전두환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언론을 장악할 때 매일신문은 당시 욱일승천의 기세로 뻗어가던 영남일보를 제치고 전두환 지키기에 나서 대구경북 유일의 신문으로 ‘1도1사’ 주의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 오늘의 매일신문은 전두환의 ‘공’이라 한다 해도 아니라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역사를 안고 커온 매일신문이 전두환을 발로 찬다는 것은 전두환 벗기기가 아니라 스스로 신문의 금도라는 옷을 벗는 것과 다름이 없다.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니라 ‘염치를 벗은 매일신문’ 노래가 골목 어린이들 입에서 입으로 메아리치지나 않을까.

'위안부' 외면했던 언론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게 하나 더 있다. 양심 있는 사람들에게 대구에서 자랑거리를 물으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눈물겨운 고투”라고 서슴잖고 대답할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전쟁박물관이다 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 대구시는 대구시대로 대구근대역사관이다 뭐다 해서 혈세를 쏟아 부으면서 정작 전쟁의 가장 비참한 최대 피해자인 국민, 근대 역사에서 가장 천대받고 그러면서도 외면 받은 여성들의 생활을 조명하는 데는 한사코 투자를 외면해온 터.

왜 정부와 지방정부가 그 모양으로 행세했을까? 언론이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본군대의 종군 위안부에 대해 변변한 기사 한 번 실어주지 않았던 게 대구 언론의 현주소였다. 박정희가 일본군 장교 출신이었던 것도 언론이 여성들을 홀대하는데 한 몫 하지 않았을까.

<매일신문> 2013년 7월 24일자 1면
<매일신문> 2013년 7월 24일자 1면
<매일신문> 2013년 7월 25일자 사설
<매일신문> 2013년 7월 25일자 사설

그런데 매일신문이 위안부를 다뤘다(「위안부 역사관 건립…시민 힘모아 적산가옥 샀다」, 7. 24. 1면, 「위안부 역사관, 시민 성금에만 맡겨둘 일인가」, 7. 25. 27면 오피니언, 사설). 참으로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 정치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을 말할라 치면 ‘선거불복’ ‘민주주의 흔들기’ 아니면 애매모호한 따옴표 보도로 치고 빠지기를 예사로 한 것이 메이저신문의 언론버릇이었다. 대구공고의 전두환 치켜세우기를 다루면서 ‘각하’를 ‘몇 번’이나 ‘연호’했다고 마치 5공시대로 회귀하는 듯한 착각 분위기를 만들더니 이제 와서 위안부역사박물관 만들기에 대구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섰다면서 정부와 대구시 더러 소극적으로 굴지 말란다. 막강한 언론의 세치 혀로 그동안 무슨 말을 해왔는지는 감추고서 말이다.

어제는 "황군만세"…오늘은?

메이저 언론은 이제 제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전두환 근위대를 자처했고, ‘밤의 대통령’을 배출한 조선일보가 전두환을 발로 찼고(그 보다 앞서 조선일보는 ‘황군만세’를 선전하면서 「천황폐하의 어(御)위덕」을 외쳤다) 동아일보도 마찬가지.(미디어창 6월 4일치, 「 무도(無道) 언론, 끝이 안 보인다」 참조) 매일신문도 판박이 보도의 길을 걷고 있다.

<조선일보> 1936년 1월 1일 1면 기사. 일왕 부처를 전면에 올리고 칭송하는 기사로 도배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같은 면에 이 기사를 올렸다.
<조선일보> 1936년 1월 1일 1면 기사. 일왕 부처를 전면에 올리고 칭송하는 기사로 도배했다. 동아일보도 같은 날 같은 면에 이 기사를 올렸다.

매일신문과 조선일보 같은 수구언론이 ‘막말’ 열쇠말로 민주주의와 문화를 들먹이며 갈짓자 행태를 보이는 그 어디에서도 진정성은 찾을 수 없다. 강렬한 맛에 끌리던 독자들도 “이건 아니지”라고 혼잣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국정원의 불법 대선 개입은 범죄행위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며 조선일보나 매일신문의 말(언어) 몰이 식 보도가 우리 문화나 정치의 대안/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역사 편에서 민족과 함께 실사구시를…

시시비비-실사구시. 우리 민족역사를 민족과 민중, 국민과 인간으로서 누려야 하는 자유를 확보하도록 하는 토대와 외연을 다른 세력이 아니라 민족-민중-국민-인간과 소통하며 함께 넓혀나가는 틀이 바로 민주주의임을 인정하고 거기에 맞서는 대결 정책을 반성, 지양하는 게 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이 아닐까? 민족문화가 숨 쉴 수 있게 하고 민주주의가 압살되지 않도록, 바로 갑에 짓눌린 대다수 을을 부축하는 실사구시 보도가 언론이 돌아가야 할 자리가 아닐까.

윤창중과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으로 우리 민족-민중, 국민-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이 무엇을 얻었고 얻고 있나? 그들로 인해 국익(?)은 만신창이-치욕과 고립, 불신-가 되지 않았나? 그런데 수구언론은 말의 ‘언론공학’으로 대결의 북소리를 높이고 강대국을 향한 예속(‘전작권 환수 연기’와 같은)의 깃발만 높이려 하고 있다. 언론으로 인해 민족의 평화는 영영 사라지고 대신 예속과 유혈만이 예고될 뿐인데 말이다. 작게는 우리 근현대사가 그걸 아프게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경향신문> 2013년 7월 19일자 사설
<경향신문> 2013년 7월 19일자 사설
<경향신문> 2013년 7월 22일자 사설
<경향신문> 2013년 7월 22일자 사설

「사과 한 마디 없이 뒤집히는 ‘박근혜 공약’」(경향신문, 7. 19. 31면 오피니언 사설, 「안보현안의 국내 정치화 우려된다」, 경향신문, 7. 27. 27면 오피니언 사설), 「낙동강 재퇴적…폭 440m서 300m로 줄었다」(한겨레, 7. 29. 1면), 「국정원 대선개입 부정하며 무슨 국정조사인가」(한겨레, 7. 25. 35면 오피니언 사설), 「방위비분담금 더 달라는 미국/5년간 못다 쓴 금액만 5317억」(한겨레, 7. 23. 1면) 같은 기사는 우리 민족의 삶과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제대로 된 말을 함으로써 지키려는 시시비비-실사구시 보도가 아닐 수 없다. 국민과 민족, 민중과 개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라보고 그 삶의 자유를 실천하도록 일깨우는 보도다. 거기에 ‘정치공작’의 쌍둥이 말 ‘언론공학’이 낄 자리는 없다.

<한겨레> 2013년 7월 29일자 1면
<한겨레> 2013년 7월 29일자 1면
<한겨레> 2013년 7월 25일자 사설
<한겨레> 2013년 7월 25일자 사설

국민과 여성이 역사 속에서 그 삶이 패대기쳐지면서 흘려온 피와 눈물을 감추고 뭉갠 위에서 휘날리려는 맹목적 애국, 특정 세력의 권력을 왕조권력으로 터 잡게 하고, 갑이 제왕과 같은 권력으로 국민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산과 강을 뭉개어 운하를 만듦으로써 토목업자들만 행세하는 정책을 국민의 눈을 피해 강행한다면 국민이 누릴 생존, 역사와 함께 숨쉬어온 우리민족의 문화, 우리 국민이 한 부분을 이루는 생태질서는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렇게 하려는 ‘언론공학’을 시시비비-실사구시를 실천하는 언론이 하나라도 있어서 막아야 한다(진실을 구체적으로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앞의 보도는 말해주고 있다. 특권신분을 창조하고 고정화하려는 따위는 말이 되지 않고 독자/시청자들이 용납하지도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보도사례들이다.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한 소통의 보도이므로.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눈가림

언론은 국민과 민족을 위해 말을 아끼지 않고 행실을 고쳐야 한다. 내가 차버린 그 권력이 영원하지 않았듯이 번견 노릇하는 현재 권력 이후의 권력 어디쯤에다 큰 자리 하나 마련해두려는 ‘계산법’이 아니라면 말이다.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을 가리려던 것이 민주주의의 퇴보라는 혼란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만 2013년 우리나라의 현실은 장래 언론이 새겨야 할 현재모습이다.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에 국민이 안중에 없었듯이 말을 아끼지 않고 행실을 고치지 않는 신문·방송은 독자도 시청자도 받들지 않는다. 그게 조선일보, 매일신문이 지난 2주 동안 보도를 통해 보여준 사실(팩트)이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242]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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