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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국은...분단이 낳은 상처, 재일 조선학교의 그림자
신은진 / 『보쿠라노 하타 - 우리들의 깃발』
(박기석 지음 | 정미영 옮김 | 품 펴냄 | 2018)
2018년 12월 24일 (월) 11:10:54 평화뉴스 pnnews@pn.or.kr

재일동포 2세 작가의 조선학교 시절을 고스란히 담은 자전적 소설이자 일본에서 나서 자란 조선인의 고민을 담은 소설인 ‘보쿠라노 하타’. 1950년대 복잡한 한반도 정세와 일본 정부의 탄압 속에서 주인공 석철과 친구들이 조선학교를 통해 어떻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지 아주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아주 무겁게 쓰여진 이야기는 아니다. 누군가는 성장 소설이라고 할 만큼 풋풋한 연애, 의리, 꿈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조선학교

조선학교에 대한 이야기할 때 이 학교의 시작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강제징용이나 재산 수탈 등 여러가지 이유로 바다를 넘어갔던 조선인들은 침략국인 일본에서 해방을 맞았다. 이후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데 이때 만들어진 국어강습소가 조선학교의 모태이다. ‘모어’와 ‘모국어’가 다른 2세대들에게 ‘모국어’ 즉 ‘우리말’을 가르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국어강습소는 일본 전역에 약 500여개가 넘었다고 한다. ‘재일조선인연합(조련)’ 결성 이후 국어강습소는 체계화된 조선학교로 발전하였고 식민지배를 당하며 일본인으로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민족교육이 중심이 되었다. 당시 세계는 ‘사회주의 혁명’이 시대적으로 자리잡는 때였는데 조련의 지도자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일본공산주의자들과 연대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하지만 일본을 점령한 연합국총사령부(GHQ)는 일본 내 공산당을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는데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고 그 중 다수를 차지하는 조련과 조선학교를 통제와 관리의 대상으로 보았다. 조선인들의 민족교육이 계속되자 GHQ와 일본 정부는 일본에 잔류한 조선인들을 일본인으로 규정하였다. 곧바로 문부성 통달을 보내 조선인 학생들을 일본 학교에 취학시키라는 명령을 내리고는 조선학교 폐쇄 조치 작업을 진행하였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조선인들을 권리를 보장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도적으로 일본인으로 동화시켜 일본 내에 소수민족을 없애고 보다 수월하게 통제하려는 것이 그들의 본심이었다. 이에 격렬하게 항의하는 동포들에게 GHQ와 일본 정부는 공권력을 행사하며 총부리를 겨누었다. 이후 한반도에서 남쪽을 시작으로 단독정부가 수립되며 냉전체제가 심화되자 일본 내 조선인들에 대한 탄압도 심해졌다. 그들은 눈엣가시였던 조련을 강제로 해산시키고 조련의 교육기관인 조선학교에도 2차 폐쇄령을 내렸다.

이후 조선학교의 민족교육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그 중 공립학교로 일본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았던 도쿄의 도립 조선인 중고등학교가 이 소설의 배경이다. 입학식에서 일본인 교장에게 이곳은 조선학교이니 조선말로 해달라는 요구와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선학교의 그림자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본 내 차별은 생각보다 골이 깊다. 심하거나 약하거나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일관되다. 조선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왜 그런 곳을 다니냐는 질문을 한다거나 오히려 안쓰럽게 바라본다. 또 동포들은 통명(본명 외 불리는 이름, 보통 일본식 이름 사용)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명을 사용하면 채용이 되지 않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가 나빠질 때 조선학교에 대한 악성루머와 헤이트스피치가 가장 심해지는데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은 조선학교 앞을 찾아가 확성기를 들고 입에 담지도 못할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욕설을 퍼부은 적도 있다. 이 소리를 들은 어린 학생들이 공포와 겁에 질려 울부짖었다고 한다. 동포들이 특권이라며 누리는 것이 없는데도 무엇을 특권이라 하며 무엇을 용납하지 않는 지 알 수 없다. 오히려 고교무상화 정책과 학교 보조금 지원에서 조항을 삭제해가며 조선학교만을 배제하는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탄압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동포들에 대한 차별은 비단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도 있다. 일본에선 조선인이라고 차별하는 우리 동포들에게 반쪽바리, 북한의 지령을 받는 빨갱이라며 다시 또 차별한다. 기대를 안고 들어온 동포들이 얼마나 실망 했겠나. 또 일본 재외공관은 조선적(분단 이전의 조선)에서 한국 국적으로 변경할 때 동포들에게 ‘서약서’를 작성하고 낭독하게 하는데 한글을 모르면 카타카나 일본어 표기를 해가며 공개적인 낭독을 강요한다. 권위주의 시절에나 했을 법한 행동을 동포들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이때 그들이 느끼는 수치심과 모멸감은 말로 다 하지 못한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 낡은 이데올로기 사고를 버리지 못한 우리는 동포들에게 두 번 상처를 주고 있다. 

   
 
여기서 잠깐 조선학교와 북한의 관계를 짧게 이야기 하면, 당시 조선학교는 동포들의 자발적 참여로만 만들었기 때문에 교육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때문에 1950년대 후반 북한은 타국에서 민족교육을 이어가는 동포들을 위해 장학금과 교육원조비 그리고 교과서를 보냈다. 원조비는 교원들의 밀린 월급이나 집안이 어려운 학생들의 교비를 지원하는 등에 쓰였으며 이후 북한으로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겐 무상 교육의 기회를 주어 귀국 사업을 진행하였다. 조선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로 멸시를 견디며 살아온 동포들의 내면엔 자신이 누구이며 조국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을 것이다. 갈라진 한반도 틈에서 부는 가장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을 맞았던 동포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북한의 태도에 깊은 유대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재일동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선 오만한 편견을 벗어 던져야 한다.

존재의 괴이함

조선학교에는 일본에서 나서 자란 재일동포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방 이후 한반도의 어지러운 상황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온 사람도 있었고 귀국 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도 있었다. 일본인 교사도 있고 일본 학교를 다니다 조선학교로 전학 온 전학생도 있다. 석철은 영순과 ‘존재의 괴이함’이라고 이름 붙인 노트를 교환하며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는다. 일본학교에서 전학 온 영순은 석철에게 조국이 무엇이고 고향이 무엇이며 왜 조선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석철은 ‘존재의 괴이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역사의 사생아 같은 자신들의 처지를 인정하고 조국으로 회귀하는 것이야말로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며 그 과정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깃발을 힘차게 휘날려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석철이 말하는 조국은 하나로 통일된 한반도라고 생각한다. 그랬으면 좋겠다. 분단의 역사를 뒤로하고 통일된 국가의 사람이 되어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며 살아나가는 것.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는 것. 그것이 빛나는 깃발을 힘차게 휘날려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책 속의 길] 157
신은진 /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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