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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노래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면
배종령 / 『음악과 함께 떠나는 세계의 혁명 이야기』
(조광환 지음 | 살림터 펴냄 | 2016)
2018년 11월 26일 (월) 10:25:12 평화뉴스 pnnews@pn.or.kr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시간이 흐르면 음악도 사라진다.
그러나 역사는 전승된다. 그래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일제 강도 정치 아래 문화운동을 부르짖는 자 누구냐고 일갈하신 적 있으시고, 80년대만 하더라도 문화 운동이 마이너 취급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촛불 광장에서 확인했듯이 문화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 특히 "헌법 제1조"나 "하야가" 같은 노래들이 집회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데 큰 역할을 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6,70년대만 하더라도 번안가요나 가스펠이 운동가요의 주류였다면, 김민기나 정태춘 같은 가객들이 나타나면서 그 시대를 대변하는 노래들을 만들었고, 80년대에는 대학마다 노래패가 생겨났으며 시위의 현장에는 언제나 노래가 있었다.

변혁의 현장에서 노래의 역할은 만국공통이어서 어느 나라나 고유한 자기 노래들을 가지고 있다. 지난 정권에서 5.18 기념식에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니 마니 논쟁이 벌어진 적 있지만, 프랑스 국가인 "La Marseillaise(라 마르세예즈)"에 비하면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는 그야말로 온건하다고 할 수 있다. "라 마르세예즈"에는 '적의 피로 우리의 밭고랑을 물들이자'는 무시무시한 후렴구가 따른다.

우리의 노래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의 음악은 실패한 것이다

노래의 역할은 만국공통일 뿐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1997년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영국의 댄스음악 "Tubthumping"(열변)을 부른 Chumbawamba(첨바왐바)는 "우리의 노래가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면...우리의 음악은 실패한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1998년, BRIT Awards(브릿어워드) 시상식에 오른 Chumbawamba의 리더 Danbert Nobacon(댄버트 노바콘)은 현장 VIP 관람석에 있던 부총리 John Prescott(존 프레스콧)에게 얼음 세례를 퍼부었다. 항만 노동자 출신이던 부총리 Prescott이, 함께 일했던 항만 노동자들을 '파업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500명이나 해고해버린 사건에 대한 그들 나름의 처벌(?)이랄까. 하루아침에 일용직 신세가 된 항만노동자들과, 그리고 시작된 신자유주의 정책을 향한 끝없는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노래가 "Tumthumping"이였던 것이다.

   
 

나의 기타는 나의 총, 나의 노래는 나의 탄환

Chumbawamba의 음악이 우리나라 CF에 쓰일 정도로 신나는 가락이었다면, 칠레의 Victor Jara(빅토르 하라)의 경우는 처절하다. 그의 노래는 감미로웠지만 그의 최후는 비장했다. 피노체트의 쿠데타 병사들의 총구가 삼엄하게 주변을 경계하는 에스타디오 체육관.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머리를 숙이고 있는데, 덥수룩한 장발의 한 남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Venceremos, venceremos(단결하라, 단결하라)!"

노래 소리는 점점 커가고,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당황한 군인들은 남자를 끌고 나가고 개머리판으로 얻어맞은 남자의 머리에선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가 바로 빅토르 하라였다. (영화, "Il Pleut Sur Santiago(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 중에서) 실제로 그는 총구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벌어진 일주일 동안 약 3만여 명의 칠레 시민이 학살당했다. 집권 기간 동안 사망자 3천여 명, 실종 1천여 명, 고문 불구자 10만 명, 국외추방자만 100만여 명. 《Nueva Cancion》(누에바 칸시온, 라틴아메리카의 노래운동, "새로운 노래"라는 뜻)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음악인들도 학살당하거나 추방당했다. "나의 기타는 나의 총, 나의 노래는 나의 탄환"이라 했던 빅토르 하라 역시, 싸늘한 주검이 되어 사랑하는 여인에게 돌아왔다. 다시는 기타를 연주할 수 없도록 손가락이 뭉개지고 손목이 부러진 채. 피노체트의 뒤에는 헨리 키신저(노벨평화상을 받았다!)와 미CIA가 있었고 세계 최고의 경찰국가답게 그들은 이 무수한 죽음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음악과 함께 떠나는 세계의 혁명 이야기

이 책에는 유럽에서 중남미, 아시아를 거쳐 빛고을 광주에 이르기까지 변혁운동의 순간마다 민중들에게 사랑 받았던 노래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예를 들어, 신경숙의 소설로 유명해해진 Mikis Theodorakis(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곡, "To Treno Fevgi Stis Ochto(기차는 8시에 떠나네)"는 원래 파르티잔의 암호였다. Maria Farantouri(마리아 파란두리), Agnes Baltsa(아그네스 발차)등이 부른 이 노래는 곡도 곡이려니와 부주키(그리스의 전통 악기)의 선율이 애절하다. 이 책은 음악애호가들은 물론이고 '혁명'이라는 시대정신에 투철했던 20세기 각국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싶은 모든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다행히 이 책에 소개된 곡들은 유튜브를 통해 쉽게 만날 수 있다. 인터넷 만세다!

Victor Hara, 'Manifesto(매니페스토, 선언)'
Chumbawamba - Tubthumping
To Treno Fevgi Stis Ochto(기차는 8시에 떠나네)  


   
 






[책 속의 길] 153
배종령 / 상원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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