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역사 앞에서, 교사들은 무엇을 가르치고 행동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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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무 칼럼]


윤석열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우리가 나라를 잃은 것은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라고 말했다. 이로써 일본의 야만적 침략행위와 36년 식민 지배의 원인이 피해자인 우리 민족에게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침략은 제국주의가 아니라 군국주의였고, 일본 덕분에 무지했던 우리 민족이 근대화되었으니, 이제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가자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졌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또다시 국무회의에서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고 국민을 훈시하고 약을 올렸다. 친일파 후손이라는 국회의원 정진석은 국민의 비판에 대해 ‘제발 좀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라고 말했다.

이들의 논리라면 그동안 역사 수업 시간에 가르쳐 온 일제의 침략에 맞서 싸운 애국선열들의 자랑스러운 항일 독립투쟁과 3·1독립운동은 명분 없고 치기 어린 행위로 치부되었고, 윤석열의 정책과 아직도 침략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와 반성 대신 기껏 유감을 50여 차례 말했으니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으냐? 뭘 또 요구하느냐, 이제 피해자인 우리가 먼저 용서하고 일본의 마음을 사는 것이 이래를 위한 일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논리를 강요하고 있다. 졸지에 이를 비판하는 우리 국민 대다수는 식민지 콤플렉스에 갇힌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나는 오랫동안 우리 집에서 독립군이라고 불렸다. 전교조 활동으로 여러 번 경찰에 연행되고, 심지어 구속 위기를 겪었다. 교육청 징계로 해직 교사가 되었고, 여러 차례 교육청 징계를 받았다. 일부는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부주의도 있었지만 나름 산전수전을 겪으며 교직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식구들로서는 걱정이 컸다. 무엇보다 어머니께 효도하지 못한 채 떠나보냈고, 내 가족들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늘 미안하다. 누가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갈 거냐고 물으면 얼른 대답하지 못한다. 저항의 길을 걸어 온 나 같은 ‘교사 독립군’들은 일제에 맞서 투쟁하고 희생당한 독립운동가들과 민주투사들의 삶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아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대구·경북은 우리나라 전체에서 독립유공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삼남의 독립군들은 왜놈들에게 잡히면 대구형무소에 갇혔다고 한다. 작년에 광주교육감이 대구형무소가 있었던 삼덕교회 자리를 방문해서 참배하고 가고, 올해는 광주 교사들이 교육 달빛역사동맹 사업으로 대구·경북을 방문하고 갔다. 광주교육감이 왜 대구형무소를 찾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렇듯 삼남의 독립운동가들이나 가족들, 지역 사람들에게 대구·경북은 잊을 수 없는 곳일 것이다. 대구·경북은 그런 곳이다.
 
안중근 의사 / 사진 제공.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 의사 / 사진 제공. 안중근의사기념관

어제는 안중근 의사가 1910년 3월 26일 순국한 지 113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대한제국을 빼앗으려는 일제의 우두머리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서 사망했고,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았다. 1910년 8월 29일은 한일병탄(일본은 병합이라고 썼다)이 일어난 경술국치일이다. 그리고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만세운동은 3월 8일 대구에서도 일어났으며 전국으로 들불처럼 일어났다. 사망자가 7천 500여 명, 부상자가 4만 5천여 명이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은 4월 11일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제국이 아니라 민국인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을 수립했다. 올해 안중근 의사가 쓴 유묵 한점이 다시 공개되었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동양 평화 만세 만만세’라고 썼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외친 ‘꼬레아 우레’는 아직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진전이어서 ‘대한국 만세’였지만, 이후 안중근은 대한국을 넘어 동양 평화를 외친 것이다. 안중근은 그랬고, 3.1 독립선언문도 평화였다.
 
몇 년 전 '차이나는 클라스'(JTBC)에서 동국대 한철호 교수는 일제가 안중근 의사의 사형을 집행한 시간을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한 시간에 딱 맞추어 집행했다고 했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일제의 치말한 계획, 꼼수였다고 한다. 1932년 12월 19일 윤봉길 의사의 사형집행 시간도 이런 식으로 치밀하고 악랄하게 맞추었다고 한다.

그런 일본이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방문에 맞추어 짠 일정을 보라. 독도를 기어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다케시마라고 부르는데도 대나무가 그려진 식당에서 부부 동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2차로 1923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로 수천 명이 희생된 현장에서, 그것도 100주기에 메이지유신의 상징인 128년 된 돈까스 식당에서 만찬을 했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창하고 친일파를 양성했던 일본 극우세력의 산실이라는 게이오대학에서 극우 인사를 불러내어 연설했다. 일본의 계획이 정말 악랄하고 치떨리지 않은가? 여기에 놀아난 윤석열은 자신이 한 짓을 알기나 했을까가 더 부끄럽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2023.3.16) / 사진 출처.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2023.3.16) / 사진 출처. 대통령실

지난주 경북에 이어 오늘 대구 퇴직 교사들이 시국선언을 했다. 경북 퇴직 교사들은 "우리 민중은 동학농민군의 모습으로, 의병의 모습으로, 독립군의 모습으로, 4.19 항쟁의 시민으로, 그리고 광주항쟁과 6.10 민주항쟁의 시민으로, 그리고 촛불혁명의 시민으로 역사의 고비마다 자주 독립된 나라에서 국민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떨쳐 일어섰다."라고 했다.

대구 퇴직 교사들은 결의문에서 다음과 같이 결의를 밝혔다.
1. 윤석열 정부는 민족의 자긍심을 짓밟는 3.16. 굴종 외교와 매국적 친일 행위를 즉각 중지하고 민족과 역사 앞에 사죄하라!
2. 일제 강제 동원 제3자 변제안”을 즉각 폐기하고, 헌정 유린 행위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하고 이번 굴종 외교 모두를 원인무효 조치하라!
3. 일본 정부는 윤석열의 굴종 외교에 편승한 망언과 망동을 즉각 중지하고, 일제의 침략행위와 강제 동원의 피해에 대해 정중히 사죄하고, 일본 전범 기업은 피해자에게 즉각 직접 배상하라!
4. 한국 기업들은 일본 전범 기업을 대신하여 배상해야 할 아무런 책임도 근거도 명분도 없으니, 윤석열 정부의 어떤 부당한 요구에도 절대 응하지 마라. 국민의 요구와 명령을 어기는 기업은 국민적 저항과 불매운동의 표적임을 명심하라!
5. 우리는 윤석열 정부의 대일 굴종 외교와 매국적 강제 동원 제3자 변제안이 폐기되고, 일본 전범 기업의 직접 배상이 실현되는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대구 퇴직교사들 시국선언(2023.3.27. 대구교육청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퇴직교사들 시국선언(2023.3.27. 대구교육청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윤석열 정부는 정부의 이런 논리를 학교 교육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부터 집요하게 시도하고 완성하려 들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면서 끊임없이 뉴라이트의 논리를 밀어붙이고 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도 지난 월요일 성명서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기시다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 정부의 강제 동원 해법 발표가 한·일 간의 미래지향적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어떠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미래는 과거를 성찰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이다. 식민 지배의 책임을 묻지 않고, 과거사에 대한 사과와 반성도 없이 ‘미래’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미래를 함께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가 전제되어야 한다. 한·일 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의 진정한 사과부터 요구해야 하는 것이 순서이다."라고 밝혔다.

분노에 찬 시민들이 나서고, 마침내 종교인들이 나섰다. 지난 월요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시국미사로 나섰다. 퇴직 교사들이 나섰다. 이제 시민들의 분노가 차오르면 아마도 맨 마지막에 정치기본권도 없는 현직 교사들과 공무원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며 탄압을 각오하고 용기를 내어 나서게 될 것이다. 교사들의 대부분은, 아니 교사라면 누구라도 자신들이 지금까지 가르쳐 왔던 원칙이, 논리가 뒤집히는 상황을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임성무 칼럼 3]
임성무 / 대구 화동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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