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으스러진 유골 조각. 갈기갈기 찢어져 흙으로 더럽혀진 천 조각. 누구를 향해 쏜지 알 수 없는 유해 사이에서 나온 탄피 2개. 누군가의 옷에 있었을 단추와 녹슨 버클, 못.
어둡고 축축한 코발트광산 수평굴 안에 14년 동안 갇혀 있던 마대자루를 꺼내 흙과 유해를 분류해 나온 결과물이다. 두개골, 치아, 손가락·발가락뼈 등 뼛조각이 책상에 놓였다. 부위를 특정하지 못한 뼛조각들은 '미상(사지골 추정)'이라고 적힌 명패가 붙었다. 유품도 함께 발견됐다.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나온 처참한 민간인 학살 증거들이다. 70여년 전 아픔이 여전하다.
(사)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이사장 나정태)는 25일 경산시 평산동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옆에서 경산 코발트광산 희생자 1차 유해 수습 결과를 보고했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의 발주를 받은 '한빛문화재연구원'은 지난 3월 27일부터 수평굴 안에서 마대자루 1,100여개를 꺼내 두달 가량 유해 수습 작업을 진행했다.
1차 유해 수습 진행 결과, 수평2굴에서 ▲"유해 1,300여점과 탄피, 유품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유해 DNA 대조 검사는 진행하지 않기로 해 뼛조각들의 신원은 미상으로 남았다. 탄피 2개 발사 주체(군인·경찰 등)를 찾는 감식 작업도 없다. 최대한 많은 유해를 빠른 시간에 수습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발견된 유해들과 유품들은 일단 코발트광산 위령탑 옆 유족회 사무실 인근에 보관한다. 앞으로 모든 유해 수습 작업이 마무리되면 추후 세종시 '추모의 집'에 함께 안치할 예정이다.
1차 작업은 이날 사실상 마무리됐다. 실제 종료일은 오는 8일이다. 남은 기간에는 보고서를 쓴다. 2차 유해 수습은 6월 중순부터 시작해 연말까지 진행할 계획이다. 유해 규모는 1차 때와 비슷한 양으로 추정했다. 수평2굴 안에는 여전히 유해 조각들이 담긴 포대자루 4,000여개가 남아 있다.
앞으로 남은 유해 수습 작업을 위해서는 예산 확보가 중요하다. 2기 진화위가 내려보낸 교부금은 1차까지 모두 소진했다. 지자체에 대한 추가 교부금 지원이 있어야 2~3차 수습도 가능하다. 만약 추가 예산 지원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유해 수습은 불가능하다. 포대자루 속 유해는 빛을 볼 수 없다.
유족은 주어진 예산으로 최대한 많은 양의 포대를 수평2굴 밖으로 꺼내 수습하길 희망했다. 유골 뼛조각 한점이라도 더 찾는 게 그나마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나정태 이사장은 "국가가 국민을 끌고 가 살해했는데 오히려 유족이 큰 죄를 지은 사람의 자식으로 낙인찍혀 오늘까지 70년 숨도 못 쉬고 살았다"며 "이제 숨통을 트고 살고 싶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유해 발굴과 학살자 명단 공개 등 진상규명 주체는 국가인데, 왜 유족이 자발적으로 피해 사실을 신고하지 않으면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면서 "국가가 저지른 일이니 국가 스스로 마무리 지으라"고 촉구했다. 이어 "다른 건 필요 없다. 아버지 시신이라도 안장해 달라"고 호소했다.
경산 '코발트광산'은 한국전쟁 전후 국가 폭력에 의한 지역 민간인 학살지 중 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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