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고 그리운 나의 아버지. 기억 조차 없는 이 여식(女息)은 평생 한으로 남았습니다."
"아버지, 한 번도 불러보지 못한 그 이름. 기억조차 없는 그 얼굴이 그립습니다."
남매는 74년 만에 아버지에게 카네이션을 달았다.
경찰에 끌려간 뒤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아버지. 아버지의 따뜻한 가슴 대신, 배롱나무에 카네이션을 걸었다. 애틋한 마음에 계속 꽃을 쓰다듬었다.
임윤태(78.여)씨는 지난 1946년 본인이 4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딸 부잣집에 태어난 막내 아들, 동생 임윤재씨를 보기 위해 집에 온 아버지는 그 길로 경산경찰서에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
그렇게 아버지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중 한 명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잃었다는 소식에 막내 남동생을 낳은 그해 홧병으로 앓아눕고 끝내 세상을 등졌다. 남매들은 고아가 됐다. 시대가 만든 아픔이다.
70여년전 국가 폭력에 희생된 수많은 유해들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하고 켜켜이 쌓인 경북 경산시 코발트광산. 5월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유족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리며 위령탑 인근 배롱나무에 카네이션을 걸었다.
애틋한 얼굴로 배롱나무 가지 마다 카네이션 꽃을 다는 이들. 70세를 훌쩍 넘은 희생자들의 아들딸이다. 손자와 손녀들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왔다.
아픈 마음으로 나무 곁을 떠날 줄 모른다. 나무 줄기에 핀 카네이션 꽃을 사진으로 찍어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도 전달했다. 일부 유족들은 코발트광산 차디찬 입구에도 카네이션 한송이를 놓았다.
'사단법인 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대표이사 나정태)'는 8일 오후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인근 배롱나무 100여그루에 제52회 어버이날을 맞아 카네이션 달기 행사를 했다.
국가 폭력에 희생된 부모님들을 그리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배롱나무는 지난 2022년 유족들이 심은 것으로, 꽃이 펴기까지 100일이 걸린다는 취지를 살려 그리움과 위로의 마음으로 심었다.
배롱나무를 심은 공간을 '떠나간 임을 위한 그리움 동산'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날 배롱나무 100여그루에는 카네이션 100여송이가 폈다.
유족들은 떡과 과일로 간단한 제사상을 차려 위령탑에서 간단한 추모식을 가졌다.
'희생자' 나윤상, '유족' 나정태 이름표가 걸린 배롱나무는 꽃과 잎이 무성히 자랐다. 나정태 유족회 대표이사도 이날 이버지 배롱나무에 처음으로 카네이션을 걸었다.
나정태 유족회 대표이사는 "한많은 세월 국가, 정치권, 아무도 우리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아도 유족들은 피눈물로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기렸다"며 "오늘 이렇게 배롱나무에라도 카네이션을 달 수 있어서 자식 노릇을 하는 것 같다. 원통함이 이제서야 사라질까. 제발 우리 부모님들의 희생과 유족들의 아픔을 잊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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