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발견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유해에 대해 70년 만에 첫 유전자 검사를 한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사)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제주특별자치도의 말을 14일 종합한 결과, 코발트광산에서 17년 전 발굴한 민간인 학살 희생자 시신 가운데 일부 유해에 대해 조만간 유전자(DNA) 감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대상은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코발트광산 수평2굴에서 발굴한 유해 429구 가운데 40구다. 예산은 4억여원(국비) 정도다. 신원 확인을 위해 코발트광산 유족회에도 대조 DNA 검사를 제안했다.
제주4.3평화재단과 서울대학교법의학 연구실이 함께 진행한다. 채취한 시료 중 훼손도가 적거나 상태가 괜찮은 것을 선별해 우선적으로 검사한다.
유전자 검사를 한다해도 희생자 신원 확인 여부는 미지수다. 코발트 관련자일지, 대구형무소 관련자일지, 제주 4.3 관련자일지 그것 역시 확답할 수 없다.
만약 유전자 검사를 위해 필수적인 유해 속 골수 등이 심하게 훼손됐을 경우 신원을 찾는 것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검사 결과 발표 시기도 알 수 없다.
작은 확률에 기대를 걸고 지금부터 신원 미상의 유해의 이름을 찾아가는 것이다.
진화위 유해발굴 담당자는 "코발트광산 유해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처음이 맞다"며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시각에서 유전자 검사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번에 조사하는 유해들이 코발트일지, 4.3일지, 보도연맹일지, 아니면 다른 희생자일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희생자 신원을 찾는다는 취지에 동의하기 때문에 여러 기관이 서로 협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화위 1기는 이명박 정부 당시인 지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 동안 코발트광산 수평굴에서 429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현재 수평굴에 있는 수천 포대 속 잔뼈 유해들과 달리 가장 윗 부분에 발견된 것으로 비교적 온전한 시신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산 부족과 사업 중단으로 인해 유해 신원 확인 작업은 꿈도 꾸지 못했다. 세종특별시 '추모의 집'에 안치돼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다. 행정안전부가 관리하고 있었으나 사실상 주인 없는 '시신'으로 소유권도 불분명했다. 코발트광산 유가족들도 사실상 신원 확인 작업을 포기했다.
그러다 올해 4월 한국전쟁 민간인 집단학살 희생자 가운데 처음으로 다른지역 유해 2구의 신원을 확인했다. 진화위가 지난해부터 진행하던 민간인 유해 유전자 검사 사업의 일환이다. 신원 확인된 유해 2구는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발굴된 희생자들이다.
충남 희생자는 하모씨(사망 당시 44세)로 1950년 북한 인민군이 아산을 점령한 당시 이들을 도운 혐의로 경찰과 치안대에 의해 집단 학살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전 골령골 희생자는 길모씨(사망 당시 23세)는 1950년대 당시 제주 4.3사건 관련자로 대전형무소에 끌려와 수감된 상태에서 국민보도연맹원 1,800명과 함께 특무부대, 헌병대, 경찰에 의해 학살된 피해자다.
이름 없는 시신은 70년 만에 이름을 찾았다. 유가족들도 70여년 만에 아버지의 유해를 품에 안았다.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것은 진화위가 민간인 희생자 유해 4,000여 가운데 501구에 대해 유전자 검사를 진행한 결과다. 유가족 119명도 자신의 유전자 샘플을 대조하는데 동의했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제주4.3특별법(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을 근거로 도 밖으로 끌려간 4.3 유해를 찾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희생자들의 유전자를 감식한다 하더라도 맞춰볼 유가족 샘플이 없으면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 제주도는 이미 4.3 유가족 2,600여명이 채혈을 통해 유전자 샘플을 보관있으며 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앞서 대전 골령골 희생자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영향이 컸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학살과 관련해 그 동안 여러 증언과 기록은 있었지만 70년 만에 객관적인 증거인 시신의 신원까지 밝혀지자 제주도는 도외 학살지에서 더 적극적으로 유전자 검사 작업에 나서게 됐다.
코발트광산도 그 중 하나다. 앞서 골령골에서 기적적으로 4.3 희생자 첫 신원을 확인하자 코발트광산에도 4.3 희생자가 있을 수 있다고 기대를 걸고 있다. 당시 코발트광산에는 북한군에 협조할 위험이 있다거나, 보도연맹원으로 몰린 민간인들이 묻혔다. 경산, 청도를 포함해 제주 등 전국 곳곳의 민간인들이 대구형무소에 갇혀 있다가 코발트광산에서 죽임 당했다. 4.3 피해자들은 당시 전국 12개 형무소로 흩어져 끌려가 목숨을 잃었다.
때문에 이번 사업은 진화위와 행안부의 협조를 받아 제주도가 진두지휘하고 있다. 기술과 예산이 뒷받침돼야 유전자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 1인당 최대 500만원~600만원 비용이 드는데 유가족들이 개별적으로 DNA 검사를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나마 특별법이 제정돼 예산과 인력이 있는 제주도가 지자체 차원에서 나설 수 있었다.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 4.3지원과 관계자는 "코발트에도 4.3 피해자들이 끌려가 희생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지만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전자 검사를 한다. 좋은 결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70년 넘는 세월 동안 찾지 못한 가족 신원을 이번에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나정태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장은 "드디어 DNA를 맞춰본다는데 우리는 희망적인 마음을 갖고 있다"며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가의 도움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유가족들은 6월 중순부터 수평굴에 남아 있는 유해 포대를 굴 밖으로 꺼내는 작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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