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100여m 어둡고 좁은 갱도를 따라 들어간다.
영상 30도를 웃도는 한여름인데도 한기가 가득하다.
안전모를 쓰고 허리도 펴기 힘든 곳을 리어카를 끌고 한참 들어가니 수천개 포대자루가 한가득 쌓였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 국군과 경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집단 학살 피해자들 유해다.
74년 세월 동안 갱도 속에 갇혀 빛 한번 보지 못했다.
갱도 더 안쪽에는 깊이 40여m 수직갱도가 보인다.
포대자루 속 유해는 모두 이 수직갱도에서 수습한 희생자들이다. 현재 수직갱도는 물이 고여 우물처럼 보인다.
수직갱도 위에는 진실화해위원장이 헌화한 조화가 놓였다.
작업자들은 하나씩 수레에 실어 나른다. 오전 8시쯤부터 시작된 작업은 오후 4시까지 이어졌다.
갱도 밖을 빠져나온 포대자루들. 유해들은 70여년 만에 갱도를 빠져나와 밝은 빛에 놓였다. 유가족회의 나정태 회장과 박무석 사무국장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경북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지난해에 이어 민간인 학살 희생자 마지막 유해 수습이 시작됐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는 지난 17일부터 18일까지 이틀째 희생자 2차 유해 수습 작업을 펼치고 있다.
수평2굴에 남겨진 유해 3,000포대를 모두 갱도 밖으로 꺼내는 중이다. 이틀간 1,300여 포대를 굴 밖으로 꺼냈다.
포대자루는 모두 풀어 작업대에 올려 놓고 작업자들이 일일이 유해 분류 작업을 한다. 고무망치와 솔 등을 이용해 단단하게 뭉친 진흙과 모래 속에서 유해를 분류한다.
이날도 사람 어금니로 보이는 치아와 잔뼈 등 수십점이 발견됐다.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70여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한 셈이다. 마지막 한명까지, 작은 뼛조각이라도 찾기 위한 작업은 계속됐다.
유해 수습 작업은 지난해 1차 수습 사업과 마찬가지로 '한빛문화재연구원'이 맡고 있다.
진화위는 지난해 3월부터 석달 가까이 수평2굴에서 포대자루 1천여개를 꺼냈다. 신원미상의 뼛조각 1,300여점을 찾았다. 탄피를 비롯해 단추와 버클 등 유품도 발견했다.
지난해 미처 다 수습하지 못한 포대자루들을 모조리 갱도 밖으로 꺼내는 게 이번 2차 작업 내용이다. 유해 수습과 분류 작업은 7~8월이 돼야 마무리된다.
장정민 한빛문화재단 조사실장은 "흙더미에서 유해나 유품을 발견해 따로 분류하는 작업 중"이라며 "굴 밖으로 일단 포대들을 모두 꺼낸 뒤 일일이 풀어서 사람 손으로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나온 뼛조각 등은 앞서 발견된 다른 유해들과 같이 모두 세종특별시에 있는 '추모의 집'에 안치될 예정이다. 뼈의 형태가 너무 작고 온전하지 않아 유전자 감식은 따로 하지 않는다.
다만 지난 2007년~2009년 수직갱도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온전한 유해 429구에 대해서는 코발트광산 유족들이 정부에 유전자 검사를 요구할 방침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 4.3' 관련 희생자들이 경산 코발트광산에도 끌려와 묻혔다고 보고, 코발트 시신 400여구 중 40구에 대해 유전자 감식 작업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유전자가 나올 경우 4.3 유가족들의 DNA 샘플과 맞춰볼 계획이다.
'(사)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도 이 온전한 시신들에 대해서는 유전자 대조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국가에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나정태(78)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장은 "보도연맹으로 억울하게 죽은 우리 아버지들 명예를 회복하고, 아버지 뼈 한조각이라도 찾아야 자식들이 눈을 감지 않겠냐"며 "혹시 우리 아버지일까 싶어서 뼛조각 하나 하나가 다 소중하다. 부디 안전하게 2차 작업이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는 7월 진화위 유가족 회의에 참석해 온전한 시신들에 대해서는 유가족들(경산 코발트광산)과 유전자를 맞춰볼 수 있게 국가가 지원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며 "그것이 국가 폭력에 희생된 우리 아버지들에 대한 진정한 추모"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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