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107주년 생일인 14일 경북지역 곳곳에서 탄신제 행사가 열리고 있다. 고향 구미에서는 숭모제례를 비롯해 문화행사가 열렸다. 딸인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도 모습을 나타났다.
경북 경산시에 있는 영남대학교 캠퍼스에서도 탄신을 축하하는 행사가 진행됐다. 구미시 이외에 영남대 학내에서 탄신제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최근 영남대가 대학 내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면서 벌어진 일이다.
영남대 총동창회 소속 일부 동문들은 영남대 안 박정희 동상 앞에 케이크를 놓고 박 전 대통령의 탄신을 기념했다. 이들은 "설립자 생일을 축한한다"며 "창학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취지를 전했다.
반면 영남대 민주동문회 소속 동문들은 "박정희는 영남대 설립자가 아닌 강탈자"라며 "교내에서 역사적으로 문제가 많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생일잔치가 웬말이냐? 부적절하다"고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영남대 총동창회(회장 윤동한) 소속 회원 20여명은 14일 오전 영남대 캠퍼스 내 천마아너스파크(경산시 대학로 280)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탄신 107돌·개교 77주년 동상 건립 기념 모교 방문의 날'을 열었다.
총동창회 회원들은 박물관 내 영남대 역사관을 둘러본 뒤, 대학본부 좌측 천마아너스파크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으로 향했다. 생일 케이크와 국화꽃, 화환 등을 동상 옆에 놨다.
박동수 영남대 총동창회 부회장은 "영남대를 설립해 창학 정신을 불려준 박정희 대통령의 창학 정신을 배우고, 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그 정신을 펼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이날 탄신제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두고 갈등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설립자의 정신을 이어받는 것으로 동문들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총동창회는 영남대 출신 여야 국회의원들을 초청했다. 국민의힘 주호영(대구 수성구갑) 국회 부의장(법학, 78학번), 김석기(경북 경주시)국회 외교통일위원장(행정학과 71학번), 이인선(대구 수성구을) 여성가족위원장(식품영양학과 78), 김상훈(대구 서구)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법학 82학번), 김승수(대구 북구을).행정학과 83학번), 조지연(정치외교학과 06학번) 의원은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당일 모두 불참했다.
탄신제 행사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동문들이 캠퍼스 안 탄신제를 규탄하는 1인 시위를 펼쳤다.
이형근 영남대 민주동문회장과 임성종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 범시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등 영남대 동문들과 시민단체 인사 5명이다.
1인 시위 피켓에는 "돈 한푼 안낸 영남대 강탈자 박정희 교내 생일잔치 이게 실화냐", "군사쿠데타 유신 독재자 박정희 기념식 웬말인가?", "희대의 친일부역자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 기념식 웬말인가", "최외출 총장 영남대 사유와 반대한다" 등의 문구가 적혔다.
영남대 민주동문회는 이날 논평에서 "독재자 박정희의 생일잔치를 교육기관인 영남대에서 실행한 것은 반민주적"이라며 "생일잔치뿐 아니라 동상 설립 등 박정희를 찬양하는 행위를 규탄한다"고 비판했다.
이형근 영남대 민주동문회장은 "친일과 독재, 학살을 저지른 박정희의 생일을 영남대 캠퍼스 내에서 한다는 것은 큰 문제이자 매우 부적절한 일"이라며 "박정희는 영남대의 설립자가 아니라 강탈자이며, 학교가 정치적 공간으로 변화하면 안 된다"고 규탄했다.
임성종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 범시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행사를 보며 박정희는 단순한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벌써 우상화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 같다"며 "국민들을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하에 우상화시키는 행위는 금지돼야 하고, 박정희의 동상을 대학교 내에 세워놓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양측은 한 때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시민단체 인사들이 "박정희는 영남대 설립자가 아니다", "돈 한 푼 내지 않은 설립자가 어딨냐"라고 비판하자, 총동창회 인사들은 "박 대통령만큼 훌륭한 사람이 어디 있냐", "행사를 망치려 하지 말라"고 맞섰다. 하지만 큰 충돌 없이 행사는 마무리됐다.
영남대는 지난 10월 23일 캠퍼스 내 천마아너스파크에 '설립자 박정희 동상'을 세우고 제막식을 열었다. 최외출 총장을 포함해 김기춘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실장 등 보수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돈 영남대 미주연합총동창회장이 "대학 설립자 박 전 대통령을 기념해달라"며 발전기금 4억여원을 기탁해 지난 4월부터 건립을 추진했다. 동상 2.5m, 기단 0.3m 등 2.8m 높이다.
※박정희와 영남대는 연관성이 깊다. 1947년 경주 최부자집의 최준 선생이 설립한 대구대학과 1950년 최해청 선생이 설립한 청구대학이 영남대의 전신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67년 두 대학을 강제 합병해 '영남종합대학'을 발족시키며 '영남학원' 법인을 만들었다. 1981년부터 2011년까지 영남대 정관 1조에는 '교주 박정희'라고 명시돼 있었다.
1979년 박정희 사망 후 전두환은 박정희의 유족이라는 이유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이사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1980년 학내민주화 열기로 박근혜씨는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고 8년간 평이사로 활동했다. 그러다 박근혜 측근의 비리가 드러나 1988년 국정감사를 받았고, 조일문 당시 영남학원 이사장은 국정감사에서 박정희 일가가 영남대에 한 푼도 출연한 것이 없다는 것을 시인했다.
영남대는 이후 20년간 관선임시이사체제로 운영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설립자의 유족'이라는 이유로 박근혜씨에게 이사 7명 중 4명에 대한 추천권을 줬다. 이후 '새마을장학생 1기'이자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 대선 캠프 기획조정특보 출신인 최외출 영남대 새마을국제개발학과 교수가 제16대 영남대 총장에 올랐다. 최 총장은 내년 2월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제17대 총장 공모에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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