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산 영남대학교가 캠퍼스 내 '박정희 동상' 건립을 추진하자, 학생들 사이에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대학 설립자의 동상을 짓는 데 문제가 없다"는 찬성 측 입장과 "설립자가 아닌데 왜 동상을 건립하냐"는 반대 의견이 엇갈렸다.
영남대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25일 박정희 동상 관련 글 20여건이 게시됐다. 일명 '에타'는 국내 최대 대학생활 플랫폼으로 학교별 온라인 커뮤니티를 운영한다. 학생증 인증 없이는 가입할 수 없다.
학 익명의 영남대 재학생은 박정희 동상 건립에 대해 "학교 설립자일 뿐인데 못 만들 것도 없지 않냐"며 찬성 의견을 게재했다. 또 다른 학생도 "대통령이기 전에 우리 학교 설립자"라며 건립을 긍정적으로 봤다.
반면 또 다른 학생은 "학교 설립자도 아니고, 학교를 뺏은 사람의 동상을 만드는 것에 대한 투표를 한다는 게 한숨만 나온다"면서 동상 건립을 비판했다. 또 다른 학생도 "박정희가 위인인 것을 알지만, 왜 지금 동상을 세우고 우상화를 하냐"며 반대했다.
전체 게시글과 댓글 중 60% 가량이 동상 건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일부 학과에서 진행한 '박정희 동상 설립' 찬반 투표 결과도 게시글에 올라왔다.
해당 글에 따르면, A학과에서 투표를 진행한 결과 찬성은 4명인 반면, 반대는 49명으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B학과에서도 투표를 한 결과 찬성 2명, 반대 12명이 나와 동상 건립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더 많았다.
영남대학교 총학생회도 9월 초부터 캠퍼스 내 박정희 동상 건립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4개 단과대별로 자체 투표를 요청했다. 각 단과대 내 일부 과들은 투표에 참여했지만 일부는 불참했다. 25일 현재 모든 투표를 종료해 최종 찬반 결과를 취합 중이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대학본부에서 요청해 동상 건립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반대 여론이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투표자 수 등 구체적인 자료를 정리해 이번 주 내로 본부에 보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학생들 사이에서도 동상 건립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은 편이다.
영남대 휴먼서비스학과 23학번 이모(20)씨는 "학생들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며 "총학생회도 입찰이 끝난 뒤 뒤늦게 설문을 진행해 문제"라고 비판했다. 또 "영남대학교가 어떻게 '박정희 대학'이 됐는지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설립자라는 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치외교학과 23학번 권모(20)씨는 "대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 누군가를 기념하는 동상을 세우는 것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했다.
새마을국제개발학과 20학번 전모(25)씨도 "한 개인이 기부한 돈으로 동상을 세우겠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학생들의 반대 여론이 큰 것을 감안하면서까지 강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반면 영남대 측은 학생들 여론이나 투표 결과와 상관 없이 동상 건립은 이미 확정된 사안이라고 못 박았다.
영남대 홍보팀 관계자는 "학생들의 등록금 등 교비를 사용해서 동상을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 기금을 활용하는 것"이라며 "동상 설립에 구성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규정도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개별적 의견들을 일일이 다 대응하기는 힘들다"며 "동상 건립에 대해 학생 설득 등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영남대는 지난 4월 영남대 동문 A씨가 "영남대 설립자 박 전 대통령을 기념해달라"는 취지로 대학에 발전기금 4억여원을 기탁하자 캠퍼스에 동상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7월 '영남대학교 설립자 동상 디자인 설계 및 제작 용역' 입찰 공고를 냈고, 작가를 선정해 동상 제작을 진행 중이다. 설치 예정 장소는 대학본부 좌측 천마아너스파크 일대다. 높이 2.5m~3.5m 정도로 추정된다. 올해 안에 제막식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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