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역에 박정희 동상이 들어선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대구시민들에게는 내란사태뿐만 아니라 ‘홍준표 닮은 박정희 동상’도 스트레스다. 타 지역에 있는 지인들은 ‘이 시국에 박정희 동상이라니’, ‘대구는 왜 그러냐’, ‘동상이 너무 조악하다’,‘박정희 안 닮았다’ 등의 이야기를 한다. 대구시민으로서 부끄럽기도 하고 동상 설치를 막지 못한 책임까지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대구광역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의 폐지 조례안 시민 서명’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속이 시원해지면서 면죄부라도 받은 듯했다. 대권을 향한 홍준표 시장의 막무가내식 박정희 우상화 사업에 대구시민들의 분명한 의사를 표현한 것이자 최근 대구시민사회에서 진행한 시민참여형 이슈대응 중 가장 성공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박정희 기념조례 폐지' 대구시민 서명 13,690명 넘어...심사 요건 갖췄다>)
대구시민 1만 5천명, "박정희 기념사업 반대"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범시민운동본부(이하 범시민운동본부)에서 박정희 기념사업에 반대 서명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청구권자 2,053,423명 중 13,690명의 서명을 받는 것이 가능할까 생각했었다. 대구시민들에게 친일 행각과 독재자인 박정희를 알려내고 기념사업에 반대하는 서명까지 받아낸다는 것은 모험처럼 생각되었다. 대구시민사회는 2011년 '대구광역시 친환경 의무급식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 서명운동으로 대구시민 3만1269명의 서명을 받은 이후 이렇게 행정적인 대규모 서명운동에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온라인 서명이라는 매체의 변화, 교과서에서 박정희의 독재와 민주주의 탄압을 배운 세대의 성장, 윤석열 탄핵국면 등은 불가능해 보이던 박정희 기념사업 반대 서명운동을 가능하게 했다. ‘보수의 심장’이라는 TK 보수의 시작점을 박정희로 볼 때 이번 서명운동은 콘크리트 TK에 균열을 낸 대중운동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TK의 균열, 박정희 기념사업 조례폐지 서명운동이 가능했을까.
먼저 지역 시민사회의는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범시민운동본부(이하 범시민운동본부)를 구성하였다. 범시민운동본부는 대구지역의 65개 단체가 작년 4월부터 준비하여 5월에 활동을 시작했다. 수차례의 기자회견과 입장발표, 7차에 걸친 시민대회, 국회 기자회견과 토론회, 동대구역 광장 앞 표지판 설치 반대 활동, 국토교통부 주민감사청구, 동대구역 1인시위 등 대중활동과 법제도적 대응으로 박정희 기념사업의 문제점을 알려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폐지를 위한 시민들의 서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졌다. 이 서명은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대구에 거주하는 18세 이상의 시민이오프라인으로 종이에 직접 서명하거나 주민e직접 사이트에서 실명인증 후 서명 가능한데, 직접 서명은 같은 행정구역의 동에 거주하는 사람별로 서명이 이루어져야 해서 쉽지 않았다. 2024년 7월 15일에 서명 운동을 시작했는데 유난히도 더웠던 작년 여름, 비오듯 흐르는 땀을 흘리며 많은 분들이 고생했다. 온라인 서명은 실명인증을 하기가 쉽지 않고 웬일인지 몇 번을 시도해야 서명할 수 있었다. 온라인 서명이 쉽게 되지 않아 범시민운동본부에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SNS를 통해 대구시민들에게 알려낸 것이 주요한 성공 이유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서명운동 참여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은 동대구역에 표지판을 세웠던 8월과 비상계엄 이후이다. 작년 8월 14일 대구시는 기습적으로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광장’이라는 5m 높이의 표지판을 세우면서 동대구역의 이름을 마음대로 바꾸었고 독재자의 동상은 실체로 다가왔다. 12월 3일 비상계엄 시에는 눈앞에 총을 든 군인이 국회에 난입하는 모습에서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 뿐만 아니라 ‘내란원조’이자 독재자 박정희가 한 일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대구시의회가 답해야 할 차례
홍준표 시장은 ‘광주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기념물이나 기념관들이 참 많다고 느껴서’ 박정희 기념사업을 한다고 밝히면서 10일 만에 기념사업 조례를 추진했고, 조례가 제정되기 전에 예산부터 편성했다. 대구시 의회는 조례제정에 반대하는 886건의 반대의견은 휴지조각 취급했다. 대구시는 지역사회의 논의토론이 없다는 지적에 설문조사결과를 들이댔다. 한길리서치에 의뢰하여 1000명의 대구시민 중 박 전 대통령 동상 건립에 '찬성'한 응답자는 68.6%, 반대 응답자 29.6%라고 발표(매일신문 2024년 5월 1일자 기사) 하면서 동상 설립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반대의견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이제 대구시의회는 1만 5천 명의 대구시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박정희 기념사업 조례폐지를 논의해야 한다. 더 이상 홍준표 시장의 거수기로서가 아니라 대구시민을 대표하는 시의원으로서 주권자 1만 5천명의 반대의견에 대해 답해야 할 것이다.
졸속 추진 박정희 동상건립과정의 문제들 규명되어야
대구시는 동대구역에 박정희 광장 표지판 설치와 동상 건립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무리수를 두었다. 아직까지 대구시로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아 동대구역 광장의 소유권자는 국가철도공단이다. 국가철도공단은 먼저 공사중지가처분신청을 했지만 동상이 들어서자 1월 9일 동대구역 구조물 철거소송을 제기 하였다. 또한 범시민운동본부는 국토교통부에 박정희기념사업지원조례의 제정과 예산안 편성,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광장’ 표지판 설치 등 대구시의 박정희 기념사업의 부당성에 대한 주민감사 청구를 해놓은 상태이다. 감사과정에서 박정희 동상 건립과정과 적절성, 혈세 낭비 등이 규명되어야 한다.
동대구역에 박정희 동상이 서 있다는 것은 단순한 구조물이 서있는 것이 아니다. 박정희 동상은 내란과 독재, 민주주의를 탄압한 위정자를 계속 기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숱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상을 건립한 홍준표 시장은 박정희식 세계관과 통치관을 가지고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박정희 동상에 반대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탄압하며 독재로 산업화를 진행했던 역사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것이자 다시는 이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실천이다.
[남은주 칼럼 61] 남은주 / 전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