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시민단체와 야당의 "내란 원조", "독재자"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대구역 광장에 결국 3m 높이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공개됐다.
제막식이 열린 행사장 주위로 시민들은 두 쪽으로 갈라졌다. 제막식장 입구를 중심으로 박정희 동상을 두고 찬성과 반대 양측 단체의 고성이 오가는 등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한쪽에는 동상 건립을 반대하는 시민사회와 야당 인사들이 있었고, 다른 쪽에는 태극기를 들고 이를 환영하는 보수단체 인사들이 서로 대치했다.
대구시(시장 홍준표)는 23일 오후 동구 신천동 동대구역 광장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을 열었다.
제막식에는 홍준표 대구시장을 포함해 이만규 대구시의회 의장, 강은희 대구시교육감 등 대구 시민 2,0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처음 공개된 동상은 밀짚모자를 쓰고 볏단을 양손에 든 채 웃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모습을 형상화한 모습이었다. 동상 아래 기단에는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리고 적혔다.
동상 뒤편에 놓인 표지석에는 '대한민국 제5~9대 대통령 박정희, 생애 1917.11.14.~1979.10.26.', '보릿고개 넘어온 길, 자나깨나 농민 생각', '재임 18년 동안 모내기, 벼베기를 한해도 거르지 않은 대통령' 등의 문구가 새겨졌다. 3m 높이 동상을 세우는 데 든 비용은 5억여원이다.
홍준표 시장은 "과만 들춰내지 말고 공이 있다면 그것도 기려야 하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며 " (시민단체에서) 저렇게 반대한들 아무 소용 없다"고 말했다.
또 "대구에는 구한말 국채보상운동의 구국 운동 정신, 독재 정권에 항거하던 2.28정신, 5천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조국 근대화의 산업화 정신 등 3대 정신이 있다"면서 "국채보상운동이나 2.28운동은 상징물이 다 있는데 유일하게 없는 것이 산업화 정신을 기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대구역 광장 관리 권한과 관련해 국가철도공단에 대구시를 상대로 낸 '공사중지 가처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2017년부터 국가철도공단으로부터 관리권을 이양받아 115억원을 들여 동대구역 광장을 조성해 왔다"며 "내년 초가 되면 정산이 끝나 소유권이 대구시로 넘어오는데, 그걸 시비 걸어서 불법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적법한 시 조례도 만들었고 관리권이 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날 행사장 옆에는 지역 시민단체 '박정희우상화반대범시민운동본부'가 '박정희 동상 설치 반대 대구 시민대회'를 열었다. 시민단체·야당 인사 100여명은 "독재자 박정희 동상 즉각 철거하라", "홍준표는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제막식 시작과 함께 이들은 행사장에 쳐진 펜스를 뚫고 진입하려 했으나 경찰 제지로 결국 무산됐다.
시민단체의 집회 반대편에는 보수단체 '구국 대구투쟁본부' 100여명이 맞불 집회를 펼쳤다. 이들은 '박정희는 자유대한민국이다', '구국강병 박정희 정신을 이어가자' 등이 쓰인 현수막을 들고 "박정희 대통령 만세"를 외치며 동상 건립을 지지했다. 양측은 한때 설전을 벌이기도 했으나, 경찰 병력 400여명이 투입돼 별다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날 제막식이 열리기 전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야당의 반발도 잇따랐다.
'박정희우상화반대범시민운동본부'는 23일 오전 대구시청 산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란 범죄를 비호하는 홍준표 시장은 내란 원조를 불러내는 박정희 동상을 당장 철거하라"고 촉구했다.
운동본부는 "박정희는 일제 강점기 친일 군인으로 독립군을 토벌했고, 4.19 혁명으로 수립된 민주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려 18년간 독재자로 군림했다"면서 "반공을 명분으로 사건을 조작해 민주통일 인사들을 고문, 살해한 자"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자를 산업화 운운하며 기념하고, 대구의 관문인 동대구역 광장에 동상까지 세우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며 "내란 원조 박정희를 숭배하는 홍준표는 당장 대구시정에서 손을 떼라"고 비판했다.
김찬수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은 "독재자 망령을 불러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홍준표 시장의 얄팍한 정치적 계산이 오늘의 불행한 사태를 불러왔다"면서 "홍 시장은 박정희 동상을 즉각 철거하고 대구 시민과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 허소)도 이날 오후 동대구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데타로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독재국가를 만들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타락시킨 박정희 동상은 시민에 의해 반드시 끌어내려질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들은 "홍준표 시장은 헌법과 법률은 자신 이외의 사람들에게만 적용시키고, 자신은 이를 초월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며 "독재자를 옹호하며 자신의 대권 놀음에 역사적 논란이 끝나지 않은 박정희를 불러내 오히려 박정희를 욕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