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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도 사과밭도 거센 불길에...타들어가는 산야에 눈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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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평생 일군 집과 사과밭이 불길에 탔다. 

퇴직 후 고향 경북 안동 길안면에 와 집을 짓고 사과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산불을 피하지 못했다.

임모씨(80)는 "지난 25일 오후 의성에서 안동으로 번진 산불에 의해 집과 밭을 잃었다"고 26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밝혔다. 임씨는 "주불 근처에 있던 것도 아니고 강풍에 불어온 불씨가 집과 밭에 번지면서 피해를 면치 못했다"며 "불을 꺼보려 세숫대야에 물을 퍼날랐지만 소용 없었다"고 말했다. 

당일 일단 대피하라는 마을 이장 말에 급하게 옷가지를 챙겨 75세 부인의 손을 잡고 차에 올라탔다. 집 근처 도로에서 집과 사과밭이 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더 있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아 길안초등학교로 대피했다. 밤새 피신 후 집에 돌아와보니 검은 그을음이 집을 가득채웠다. 집이 전소한 건 아니지만 그을음이 없는 곳이 없다. 집 외벽은 새까맣게 변했다. 1년 열심히 지은 사과밭도 일부 불타 사라졌다. 

경북 의성군 안사면사무소 맞은편 산에서 불이 나자 연기가 나오고 있다.(2025.3.25) / 사진.경북소방본부
경북 의성군 안사면사무소 맞은편 산에서 불이 나자 연기가 나오고 있다.(2025.3.25) / 사진.경북소방본부

사과 창고에는 가보지 않았다. 이웃들 중 일부는 창고에 불이 붙어 박스 벌크채 탔다는데 확인할 시간도 없고 몸만 추스르고 있다. 당장 생필품들이 사라져 농협에 가 피해 신청을 하고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임씨는 "안동 시내에 사는 막내 아들이 다행히 도와줘서 정신줄을 놓지 않고 있다"며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내가 살다가 산불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막 바람이 태풍처럼 불어서 불똥이 여기저기 날리고 불이 타오르는데, 손 쓸 겨를이 없었다"면서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집도 사과밭도 순식간에 화마에 삼켜졌다. 경북 산불이 확산해 농심(農心)도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26일 현재까지 닷새째 의성에 이어 안동과 영양, 청송, 영덕까지 경북 북부지역 일대를 집어삼키며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있다. 5,000여명에 가까운 소방대원과 87대의 소방 헬기가 투입돼 진화에 애쓰고 있지만, 건조한 날씨에 강풍까지 불길을 잡기가 쉽지 않다. 

그 탓에 북부지역에 몰린 고령층 농민들 피해가 커지고 있다. 닷새동안 숨진 20여명 가운데 대부분이 60~70대 고령층이다. 집과 논밭은 물론 애써 키운 농작물과 비싸게 주고 산 농기계들도 못쓰게 됐다.  

경북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 인근 산에 불이 나자 동네 일대가 붉은 화염에 휩싸였다.(2025.3.24) / 사진.경북소방본부
경북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 인근 산에 불이 나자 동네 일대가 붉은 화염에 휩싸였다.(2025.3.24) / 사진.경북소방본부
경북 안동대학교에서 바라본 산불(2025.3.25) / 사진.경북소방본부
경북 안동대학교에서 바라본 산불(2025.3.25) / 사진.경북소방본부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에 사는 한모(72)씨는 몇년 전 남편이 숨져 홀로 사과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러나 지난 25일 산불로 인해 통신이 두절되면서 가족들과도 연락을 하지 못했다. 

통신이 복구된 26일이 돼서야 겨우 전화를 할 수 있었다. 한씨는 "귀농을 하며 지은 집 뒷산으로 산불이 내려오자 이웃 주민들이 농기계를 이용해 흙을 퍼서 집 주변으로 방어선을 만들었다"며 "매케하고 자욱한 연기, 불씨가 사방에서 날아와 고통스러워도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힘을 모았다"고 밝혔다. 

다행히 산불이 깊은 고랑과 흙더미를 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한씨와 이웃들은 인근 초등학교로 피신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니 천만다행 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출해서 구입한 비싼 과수원 농약 방제기 SS기계는 불에 타 완전히 고장났다. 한씨는 "대출도 다 못갚았는데...사과밭 약은 또 어떻게 치겠냐"며 "살아 있고 집도 멀쩡하니 감사하긴한데 무섭고 불안해서 집에 있지를 못하겠다"고 하소연했다. 

일단 불이 지나가긴 했지만, 화재로 인해 단수가 돼 물이 나오지 않는 불편도 계속되고 있다. 인근 임하면 금소리는 산밑에 있어 동네 일대가 다 탔다. 집 뿐만 아니라 자동차 등도 전소했다.  

경북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에서 발생한 화재로 나무와 창고가 불타고 있다.(2025.3.24) / 사진.경북소방본부
경북 의성군 옥산면 전흥리에서 발생한 화재로 나무와 창고가 불타고 있다.(2025.3.24) / 사진.경북소방본부
경북 안동시 길안면사무소 인근에서 주민 대피를 유도하고 있다.(2025.3.25) / 사진.경북소방본부
경북 안동시 길안면사무소 인근에서 주민 대피를 유도하고 있다.(2025.3.25) / 사진.경북소방본부

안동시 임하면 오대리에서 자라 평생 농사를 짓고 산 농민 김모(63)씨도 사과밭뿐만 아니라 SS기, 트랙터 등을 잃었다. 김씨는 "다 탔다. 다 사라졌다"면서 "누구한테 화도 못내고 눈물만 난다"고 답답해했다. 

김씨의 초등학교 동창인 여모(63)씨는 집을 잃었다. 여씨는 동네 선배와 결혼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는데 산불에 집이 다 타버렸다. 김씨는 "아무 말도 안나온다"며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남편이랑 평생 번 돈으로 우리가 지은 집인데...너무 애착이 갔는데 하늘이 원망스럽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의성군에서도 농민들 피해는 컸다. 집안 대대로 사과 농사를 지어온 이모(60)씨는 의성읍에 있던 사과창고가 불에 타 전소했다. 애써 키운 새빨간 사과는 새까만 덩어리가 되어 바닥에 뒹굴었다. 친형과 동생의 몫까지 도맡아 키어온 자식 같은 사과들인데  화염에 휩싸여 손도 써보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었다. 

이씨는 "자식 같이 키운 사과다. 재산 피해는 물론 심적 고통이 엄청나다"며 "사과도 사과인데, 이 시설을 다시 다 지어야 하는데 돈은 어디서 또 어떻게 구하겠냐. 형제들한테는 또 뭐라고 말하겠냐"며 가슴을 쳤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22일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산61번지에서 발생한 산불이 안동과 청송, 영양, 영덕 등으로 번져 26일 오후 1시 기준 모두 20명이 숨졌다. 주택 150채와 공장 1개, 창고 43개,  기타(사찰, 문화재 등) 63개 등 모두 257개소가 피해를 입었다. 전체 피해 규모는 축구장 2만여개에 이르는 1만5,000ha에 달한다. 논밭, 과수 등 농작물과 관련한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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