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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에 밥"...경북 산불 끈 소방관들, 열악한 식사·장비 부족 "처우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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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불 끄고 받은 식사 부실
이마저 부족해 먹지 못하기도
등산화 미지급에 계속 미끄러져
공무원들에게 보호 장비도 부족
"후원 없인 밥 못먹어 안타깝다"
전공노소방지부 "현장 처우개선"
"화마와 싸우는데, 자원보급 곤란"
소방본부 "피해 광범위해서...노력"

#. 밥 한덩이에 김치, 깻잎 조금. 경북 산불과 맞서 싸운 소방관이 받은 한 끼 식사다.

 대구소방본부 소방관 A(35)씨는 지난 3월 경북 북부지역 5개 시.군(의성·안동·청송·영양·영덕)을 휩쓴 산불 현장에 진화 지원을 나갔다.

1박 2일 동안 불이 난 청송군 야산에 무거운 소방호스를 6번이나 끌고 올라가며 여러 번 넘어졌다.

화재 진압용 신발이 있긴 하지만 고무로 돼 있어 미끄럽고, 가파른 경사면이어서 제대로 서지 못했다.

지난 3월 청송 산불 현장 진화 작업을 마치고 A씨가 받은 아침 식사 / 사진.A씨 제공
지난 3월 청송 산불 현장 진화 작업을 마치고 A씨가 받은 아침 식사 / 사진.A씨 제공

밤낮 없이 진화 작업을 하며 불을 끄고 내려와 집결지에서 받은 아침 식사는 너무 초라했다. A씨가 받은 도시락에는 밥과 김치, 깻잎장아찌 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못 받은 사람들도 있었다.

A씨는 17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진화 작업을 하다 집결지로 돌아와 남은 도시락이 있으면 먹긴 하는데, 못 챙겨 드신 분들도 있었다"며 "예산이 없어서 제대로 된 밥을 못 준다고 이야기하더라. 그래서 재난 현장에 가면 자체 예산보다 후원 물품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 동원령이 내려졌으면 정부나 지자체가 예산을 지원해 인력에 대한 식사나 구호 물품을 챙겨줘야 하는데 못 챙겨주는 것 같다"면서 "후원 물품이 없으면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경북 청송군 한 야산에서 소방관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2025.3.27) / 사진 제공.경북소방본부
경북 청송군 한 야산에서 소방관이 진화 작업을 벌이고 있다.(2025.3.27) / 사진 제공.경북소방본부

경북지역 초대형 산불에 맞서 싸운 소방관들을 비롯해 산림청과 지자체 공무원들이 제대로 된 식사는커녕, 보호 장구도 지급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문에 현장 소방관들과 공무원들은 "처우개선"을 촉구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에 17일 확인한 결과, 지난 3월 22일부터 28일까지 경북 5개 시군에 진화 작업 지원을 나간 소방관 수는 누적 169명이며, 소방 장비는 76대가 투입됐다. 이들의 업무는 산불 진화를 포함해 예방, 경계 작업 등이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대구소방지부(지부장 윤명구)는 17일 성명을 내고 "각종 재난 현장에 동원되는 산림청, 경찰, 지자체 공무원 등 노동자들 모두 현장 처우가 열악하다"면서 "산림화재만 보더라도 자원집결지에는 풍족하게 지원품이 있지만, 생사를 걸고 화마와 싸우는 현장 일선에는 기본적인 자원 보급도 힘들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난 상황을 대비해 각종 재난 관련 법령이 제정돼 있고, 이를 근거로 정부와 지자체는 재난 관련 기본계획과 시행계획을 작성하게 돼 있다"면서 "하지만 각종 법령과 계획에는 이를 시행할 인간의 노동에 관한 내용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재난 규모와 범위에 따른 필요 자원의 책정, 수집 자원의 재분배, 환경과 체력 소모를 고려한 작업시간 산정 등을 고안해야 한다"며 "어떻게 산림화재와 재난을 효과적으로 해결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현장을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현실적 지원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소방관들은 기본적인 진화 장비들이 있어 사정이 그나마 낫지만, 지자체 공무원들은 이마저도 열악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갑률 공무원노조 대구소방지부 사무국장은 "언론 보도나 SNS 등을 보면, 지자체 공무원들은 비상 소집돼 불을 끄러 갈 때 갈고리와 배낭형 분무기 등만 갖고 산에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며 "현실적인 장비가 제대로 안 갖춰져 있으니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경북소방본부는 산불이 광범위하게 번져 소방관들의 휴식 공간 등이 넉넉히 제공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때문에 향후 대형 재난 대비를 위해 준비하도록 노력하겠다 입장을 내놨다.

경북소방본부 언론홍보팀 관계자는 "산불이 빠르게 확산돼 피해 지역이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소방 장비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지금은 산불이 수습됐기 때문에 향후 소방관들에 대한 휴식이나 식사 관련해서는 대형 재난을 대비해 준비를 해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소방관들이나 산림청 화재진압 대원의 경우 주불을 진화해야 하기 떄문에 별도 특수진압복이 있지만, 지자체 공무원들이나 산불감시원들은 잔불 진화가 목적이라 특수진압복은 별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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