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학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에 ‘두 국가론’ 논란과 ‘통일 포기’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남과 북이 각각 유엔에 가입하고, 각자의 영토 내에서 독점적으로 주권을 행사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일부는 ‘사실상의 분단 고착화’ 혹은 ‘통일 포기 선언’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논의는 오히려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상황에서 대북정책의 수립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이 시기 정말 통일을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통일의 개념을 재정립해야 하는가?
현실적으로 남과 북은 각기 다른 정치체제와 법질서를 가진 국가적 실체로 존재하고 있다. 국제적·외교적으로도 이를 각각의 독립된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제도적·법적 통일을 당장 지향하지 않는다는 선언은 오히려 흡수통일이나 적화통일에 대한 불필요한 불신과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태도에서 평화는 시작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2국가로 존재하는 상태에서의 잠정적 평화는 언제든지 다시 긴장상태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왜 통일해야 하는가”, “어떤 통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다시 답해야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통일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 즉 통일을 ‘하나의 국가로 만드는 법적·제도적 행위’로만 국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미 그 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법적·제도적 통일보다는, 남과 북이 상호 신뢰 속에 자유롭게 오가며 돕고 나누는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이란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이른바, 평화가 통일에 앞선다는 ‘선평화 후통일’의 철학이다.
통일을 결혼에 비유할 수 있다. 결혼식과 혼인신고는 제도적 통일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는 남녀간에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결혼 이전에 함께 생활하고, 신뢰를 쌓고, 공동의 삶을 나누는 사실혼 관계가 비일비재하다. 즉 지금은 결혼을 해야 가능했던 남녀간의 일들이 결혼전에 가능한 일이 되었다.
남과 북도 과거 통일이 되어야 가능한 것처럼 생각했던 일들이 통일이라는 법적·제도적 과정 속에서 ‘하나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 관세 없는 무역, 자유로운 왕래와 문화교류는 이미 그런 ‘사실상의 통일’을 향한 경험과 모델을 실현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통일 개념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게 통일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법적·제도적 통일은 장기적 목표로 남겨두되, 현재는 평화를 정착시키고 교류와 협력을 일상화하여 ‘사실상의 통일’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 통일은 먼 미래의 환상이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실천 가능한 평화와 공동 번영의 방식으로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이러한 통일 개념의 재정립은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 수립과정에서 반드시 검토되어야 할 일이다. 통일은 단지 한 나라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적대와 단절을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통일은 포기의 대상이 아니라, 재구성의 대상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통일개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다시 쓰는 일이다.
[기고] 김두현 /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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