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실록 열람을 둘러싼 논란과 오늘

다산연구소
  • 입력 2013.07.1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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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연구소] 김태희 / 좌충우돌 스스로 무너지는 국정원을 어찌할까


   태종이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져 말에서 떨어졌다. 다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그러나 이 발언 자체가 그대로 <태종실록> 태종 4년(1404) 2월 8일 기사로 실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세종 13년(1431)에 <태종실록>이 완성되니, 세종이 읽어보고 싶었다. “춘추관(春秋館)에서 <태종실록> 편찬을 이제 다 마쳤으니, 내가 한번 보려고 하는데 어떤가?” 우의정 맹사성(孟思誠) 등이 아뢰었다. “전하께서 만일 보신다면 후세 임금이 반드시 이를 본받아서 실록을 고칠 것이며, 사관(史官)도 임금이 볼까봐 사실을 반드시 다 기록하지 않을 것이니, 어찌 후세에 진실을 전하겠습니까.” 그 해 3월 20일의 <세종실록> 기사다.

  세종은 20년(1438) 3월 2일에도 <태종실록>을 열람하고자 했으나 반대에 부딪혔다. 미련이 남았는지 세종은 이틀 후 춘추관에 명하여 태종이 <태조실록>을 열람한 적이 있나 없나 상고하여 아뢰도록 했다. 선례를 찾아본 것이다. 그러나 태종도 열람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임금이 만약 사초를 보면 후세에 직필이 없게 된다


  <실록>의 기초자료인 사초(史草)도 열람이 금지되었다. 사초에는 사관이 국왕의 곁에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입시(入侍) 사초와 정리하면서 평가를 적은 가장(家藏) 사초가 있었다. 이 사초가 연산군 때 정쟁거리가 되었다. 김일손에게 불만이었던 이극돈 등이 그의 사초를 문제 삼았다.

  연산군이 전교를 내렸다. “김일손의 사초를 모두 안으로 들여오라!” 이극돈 등도 이 전교를 그대로 따를 수 없었다. “예로부터 사초(史草)는 임금이 스스로 보지 않습니다. 임금이 만약 사초를 보면 후세에 직필(直筆)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초의 6조목만을 잘라 봉해서 올렸다.

  연산군이 쫓겨난 후 즉위한 중종도 <실록>을 열람하려고 했다. 그러나 사간원에서 반대했다. “<실록>의 개폐를 엄밀히 해야 한다는 뜻은 먼 장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자성(慈城)을 혁파한 근본 원인을 상고하는 일로 <실록>을 열람하고자 하나, 한번 그 단서를 열어놓으면 훗날 폐단이 끝이 없을 것이니, 용이하게 하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실록>은 기록자의 주관성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었다. <선조실록>을 보면, 북인의 지도자인 조식의 졸기(卒記)는 22줄(한 줄에 대략 26자)의 분량이다. 반면 라이벌이었던 이황의 졸기는 단 두 줄에 걸쳐 기록했다. 더 심한 것은 이이의 졸기였다. “이조판서이이졸(吏曹判書李珥卒).” 그러니까 이조판서 이이가 ‘죽었다’는 딱 한 가지 사실을 ‘졸(卒)’이라는 딱 한 자로 기록한 것이다.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들은 다시 <선조수정실록>을 편찬했다. 이이의 졸기는 36줄로 늘어났다. 남인이 주도한 <현종실록>에 대해 서인은 <개수실록>을 편찬했다. <숙종실록>에 대해 소론은 <보궐정오>를 덧붙였고, <경종실록>에 대해 노론은 <수정실록>을 따로 편찬했다.

  다행히 앞 기록을 없애지 않고 남겨두었다. 엇갈린 기사, 주관성이 짙은 기사도 종합·비교하고 행간을 읽으면 진실 파악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아예 기록이 없는 경우일 것이다. 재위기간이 24년이었던 <정조실록>이 54권 56책이었던 것에 비해, 재위기간이 합쳐서 64년이었던 순조·헌종·철종 기간의 실록이 모두 65권 54책이었다. 기록 분량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국가정보원 홈페이지
국가정보원 홈페이지

좌충우돌 스스로 무너지는 국정원을 어찌할까

  요즘 국정원이 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여 요란하다. 회담 내용에 대해 당초 논리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우리 헌법의 영토조항(제3조)과 평화통일조항(제4조)은 논리적 모순을 보인다. 우리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면, 한반도에서 북한의 영역은 인정할 수 없다. 북방한계선(NLL)도 인정할 수 없다. 평화통일을 하려면 북한의 실체를 인정해야 한다. NLL은 그저 임시적 분단 현실을 보여줄 뿐이다.

  국가 안보기구의 수장이 대통령의 발언을 북쪽의 주장에 동조하는 쪽으로 열심히 해석하는 꼴이 어리둥절하다. 자가당착이다. 음지에서 일한다더니 선거에 편파적인 댓글을 달고, 양지를 지향한다더니 정보기관답지 않게 회담 내용을 가볍게 공개했다. 논리도 궁색하고 누구의 이익인지도 모르겠다. 좌충우돌 스스로 무너지는 국정원을 어찌 구제할 것인가.
 
글쓴이 / 김태희
· 다산연구소 연구위원(전 기획실장) · 정치학박사
· 논저
<정조의 통합정치에 관한 연구>(2012) 
<다산, 조선의 새 길을 열다>(공저, 2011) 
<왜 광해군은 억울해했을까?>(2011)   


[다산연구소 - 실학산책] 2013-7-12  (다산연구소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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