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성에 대한 깨달음 : 나의 경험과 지식을 보편화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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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준 /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신영복 지음 | 돌베개 펴냄 | 2004)


1. 「'인간'은 인간관계입니다. 인성이란 개인이 자기의 개체 속에 쌓아놓은 어떤 능력, 즉 배타적으로 자신을 높여 나가는 어떤 능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성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인간입니다. 이 사회성이 바로 인성의 중심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중에서)

내가 이 책을 접하게 된 때는 오랜 파업투쟁을 거치고 나서,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2005년 이었다. 조합원을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약간의 두려움과 책임감에 짓눌려 있을 때, 신영복 선생님의 인간관계에 대한 글들이 마음 속 깊이 와 닿았다. 특히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의 보고서라고 풀이한 ‘논어’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고 나서 깊은 위로와 감명을 받게 되었다. 때문에 이듬해 구속되었을 때에는 감옥에서 다시 한 번 읽었다. 이후 오랜 해고 생활 동안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 받거나 마음이 무거울 때마다 버틸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이 된 것 같다.

2.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논어’의 맨 첫 구절이다. 학창 시절에는 그저 공부 열심히 하라는 옛 성현의 말씀으로 들었고, 지루할 것만 같은 학문의 길에서도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정도로 이해하였다. 하지만 故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읽고 나서 ‘習’의 의미가 복습하며 익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해하여야 함을 깨우치게 되었다. 또 기쁨이란 배운 것,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직접 실천할 때의 즐거움을 말하는 것이라는 걸.
 
 
 
3. 「고전 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미래”라는 표현은 분명 모순 어법입니다. 그러나 이 모순된 표현 속에 대단히 중요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미래로 가는 길은 오히려 오래된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과거는 그것이 잘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우리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래를 향해 우리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지요」(『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중에서)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향 마을에서 자란 나는 고교 시절 한문 수업이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때 늦은 공부를 마치고 교단에 서신 한문 선생님께서 옛 글의 주옥같은 구절에 풍부한 역사적 설명을 곁들이시면 나는 한껏 빠져들었다. 고전을 읽고 공부한다는 것이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3학년이 되자마자 희망 학과를 ‘한문학과’로 정하고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 1학년 첫 한문학 기초 수업 시험에서 가장 많은 답안을 적어낸 이후로 나는 전공 공부를 하지 않았다. 세상을 바꿔야 하는데 무슨 이런 한가한 공부를 한단 말인가? 그러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신영복 선생님의 글과 책을 접하고 나서야 비로소 고전을 대하는 자세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고전 공부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고전에 대한 관점이며,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고전을 읽게 되면 현재와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길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4. 「고전 강독의 화두, 우리가 걸어놓는 화두는 ‘관계론’입니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입니다. 존재론적 구성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것이 관계론적 구성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중에서)

생명과 물질의 본질이 존재가 아닌 관계라는 ‘관계론’을 읽고 나서 내가 고민하던 많은 문제들이 보다 선명해졌다. 나는 나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늘 누구와의 ‘관계’속에 있는 것이었다. 그 ‘관계’속에서 내가 누구인지가 규정되었고, 그 ‘관계’속에서 행복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한 것을 깨달았다. 또 현재의 경제적 모순 또한 존재론적 구성원리가 지배하는 서구에서 발달한 자본주의의 고유한 현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기 존재를 부단히 강화하려는 자기증식의 존재론적 원리가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존재론적 구조를 변화시켜 나가는 길일 것이다. 역시 현재의 문제의식으로 고전을 읽으면 미래의 길이 보이는 것일까.

5.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 있게 합니다. 무일(無逸)은 불편함이고 불편은 고통이고 불행이지만,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중에서)

생활뿐 아니라 인간관계에서도 편리함을 추구하는 요즈음 가끔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나는 생각한다. 이 불편함이 나를 깨어 있게 하고, 사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고. 그러한 성찰은 나를 더욱 겸손하게 만들고, 관계에 있어서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된다. 몇 해 전부터는 자동차를 버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였는데, 더 많은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바로 이 ‘무일’ 사상이 중국의 하방운동의 사상적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6.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논어’의 이 구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는 해석에 덧붙여, 나는 어렴풋이 공부 뿐만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님은 ‘학’이 보편적 사고라면 ‘사’는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의 실천이나 그 기억 또는 주관적 관점을 뜻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학’이 보편적인 것임에 비하여 ‘사’는 특수한 것, 따라서 ‘학이불사즉망’의 의미는 현실적 조건이 사상된 보편주의적 이론은 현실에 어둡다는 것이다. 반대로 ‘사이불학즉태’는 특수한 경험적 지식을 보편화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이 글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경험적 사실과 보편적 진리에서의 균형이 중요함을 일깨워준다.

7.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은 故신영복 선생님이 성공회대학교에서 ‘고전 강독’이란 강좌명으로 진행했던 강의를 정리한 책이다. 순수한 고전 강의라기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당면 과제를 고전을 통하여 재구성해보는 강의였기 때문에 책 이름도 <강의>로 정하였다. 고전을 읽는 방법이 일반적인 고전 연구서와 다르기 때문에 ‘나의 동양고전 독법’이란 부제를 달고 출판하였다. 우리가 역사를 읽듯이 고전을 읽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와의 대화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이 고전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리 현실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썼다고 하였다.

“여러분은 무엇이 변화할 때 사회가 변화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여러분은 미래가 어디로부터 다가온다고 생각합니까?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 중에서)
 
 
 
 
 
 
 
 
 
[책 속의 길] 164
이원준 / 대구도시철도공사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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