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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은 자유다 -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류정하 /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안인희 옮김 | 바오출판사 | 2009)
2019년 01월 14일 (월) 10:29:07 평화뉴스 pnnews@pn.or.kr
 
1553년 10월 27일 오전 11시 다떨어진 넝마조각을 걸치고 쇠사슬에 묶인 깡마른 죄수 하나가 스위스 제네바의 샹펠 광장으로 끌려나왔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광장에 모여들자 재판관은 준비해 온 판결문을 큰소리로 읽었다.
 
"우리는 그대에게 다음 판결을 내린다.
 쇠사슬로 묶어 샹펠 광장으로 끌고 가 산채로 화형에 처한다.
 그와 더불어 그대의 몸이 재가 될때까지 그대가 쓴 책의 원본과 인쇄된 책도 함께 불태운다.
 그와같은 범죄를 저지르고자하는 모든 사람에게 경고하는 본보기를 남기도록, 그대는 이렇게 삶의 시간을 끝내야 한다"

 
쇠사슬에 묶여 끌려나온 이는 의사이자 법률가이며 신학자였던 미카엘 세르베투스였고 그를 사형대에 세운 이는 종교개혁가 장 칼뱅(Jean Calvin)이었다.  종교개혁가들은 기독교인의 "내면의 자유"는 하나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심판할 수 없는 고귀한 권리라고 주장하며 카톨릭의 종교재판을 비난해왔다.  또한 모든 사람에게 성서 해석에 대한 자유로운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성서해석을 독점한 교황청을 비판하고, 황제와 귀족의 비위를 맞추며 세속의 권력과 결탁한 부패한 카톨릭 교회에 정면으로 맞섰다.  칼뱅 역시 종교적 관용과 사상의 자유를 위해 열렬한 종교개혁가로 나섰지만 자신이 제네바에서 권력을 장악하게 되자 스스로 전형적인 독재자의 길을 걸었다.

권력은 언제나 총체적 권력을 지향하고, 승리는 승리의 남용을 지향한다. 권력은 자신의 도그마를 유일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국가의 힘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는 일을 범죄라고 낙인 찍는다.  칼뱅은 마침내 단지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Haereticis" 이라는 이유로 본인이 그토록 혐오해 마지않던 종교재판을 통해 세르베투스를 처형하고 말았다.  이 처형은 개신교가 저지른 최초의 '종교적 살인'으로 기록되었다.
 
   

세르베투스의 화형이 집행되고 모든 이가 칼뱅의 살아있는 권력앞에 침묵하고 있을때, 바젤의 대학에서 조용히 성서 연구에 열중하고 있던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sebastian Castellion)가 마침내 칼뱅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는 샹펠의 화형장을 보면서 언제까지나 자신을 억제하고 학문적인 탐구에만 몰두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한명의 죄없는 인간이 고통속에서 죽어갔기 때문이었다.  겸손하고 온화한 인문주의자였던 카스텔리오는 쉽게 정열적으로 싸움을 시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마음으로 부터 진심으로 평화를 사랑하기에 싸움에 나서기까지 오래 망설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다른 모든 가능성들이 사라지고 투쟁의 무기를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때 가장 단호하고 확고한 사람이 되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칼뱅은 카스텔리오가 정신적 종교적 일에서 아무런 의지도 없이 자기에게 복종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자신을 둘러싼 아첨꾼들 한가운데서 독재자의 영원한 적인 독자적 인간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자유를 갈망하는 이는 독재의 그림자 속에세 살아갈 수 없다. 독재자 역시 단 한명의 독자적 인간이 자신의 영토안에 살고 있어도 근심없이 지낼 수 없다.  펄럭이는 검은색 수도복을 입은 깡마르고 냉혹한 독재자 칼뱅은 독자적 인간 카스텔리오가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책을 찢고 금지하고 불태우고 압류했다. 정치적인 압력을 통해 글을 쓸 수 없도록 하였고, 그가 아무것도 저항할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온갖 험담을 퍼부었다.  도덕적 정당성 이외의 어떠한 힘도 가지지 못했던 카스텔리오는 정치 권력과 종교국이라는 거대한 조직체를 장악하고 시시각각 숨통을 조여오는 냉혹한 독재자 칼뱅에 맞서 가망성 없는 외로운 투쟁을 시작한다.
 
"진리를 구하고, 자기가 생각하는대로 그것을 말하는 것은 절대로 범죄가 아니다.
 아무도 어떠한 신념을 갖도록 강요당해서는 안된다. 
 신념은 자유다"   -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 1551-

이 책의 저자인 슈테판 츠바이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중학교 다니던 무렵 읽었던 이케다 리오코의 순정만화 "베르사유의 장미"를 통해서이다.  흔히 순정만화라고 하면 여학생들이 읽는 로맨스물을 떠올리기 쉬운데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만화는 주인공 오스칼이 민중의 처참한 현실을 깨닫고 결국 혁명에 동참하게 되는 방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명작중의 명작이었다.  1980년대라는 당시의 시대상으로 볼 때 불법 해적판이 아니었으면 절대로 시중에 유통 될 수 없었을 이 만화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앙투아네트-베르사유의 장미'를 토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게 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직장을 얻어 자취를 하던 시절 회사 근처 동대문 도서관에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같은 책들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탁월한 이야기꾼이었다.  역사속에서 잠깐 존재감을 드러내고 사라진 인물들에게서 사건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적 진실을 들추어 내고 그 속에 얽힌 인간들의 내면과 심리상태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만화책을 읽듯 흥미롭게 술술 읽혀지는 그의 책들은 퇴근을 하면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서 도서관에 틀어박혀 저녁 시간을 보내야하는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 바로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였다. 

이 책은 16세기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통해 신정국가를 건설한 독재자 칼뱅에 맞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며 똘레랑스(관용)을 주장한 카스텔리오의 투쟁을 다룬 책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지구상에 단 하나의 종교, 단 하나의 세계관이 독재적으로 자리잡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정신은 언제나 모든 억압에 맞서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배우고, 정해진 틀에 따라 생각하기를 강요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의 의견 말고는 모든 의견을 억압하려는 편협한 광신주의에 대항하여, 이 세상의 온갖 적대심을 해결할 수 있는 이념, 바로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인간에게 주어져 있으며, 타인의 신념에 대한 똘레랑스의 이념이 카스텔리오의 투쟁으로부터 인류에게 내세워졌다고 이야기 한다.  그가 이토록 절절하게 카스텔리오의 삶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슈테판 츠바이크 자신이 나치 정권에 저항하다 조국에서 쫓겨나 고달픈 망명자 신세로 떠돌며 체포와 암살의 위협에 시달리는 "다른 의견을 가진 자"로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었다. 나치가 파견한 비밀경찰의 추적을 피해 끊임없이 이어지던 탈출과 방랑, 모국어로 글을 쓸 수 없는 암울한 현실앞에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1942년 2월 브라질에서 아내와 함께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통해 카스텔리오의 삶과 투쟁을 보면서 나는 늦봄 문익환 목사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겸손하고 조용한 성서학자였던 그가 폭압에 분연히 떨쳐 일어서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가장 단호하고 확고한 투사로서 독재와 분단에 반대하며 가시 면류관을 마다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문익환 목사님은 수세기를 건넌 카스텔리오와 삶과 어떻게 이렇게 서로 닮을 수 있는지...

우리 역시 오랜 기간 동안 한가지의 사고방식과 의견을 가지도록 강요받는 역사를 살아왔다.  왜 그런지 질문을 하는 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은 '국론을 분열'시키는 불온한 일이 되었다. 몇 번의 시민혁명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획득한 지금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 그러한 분위기는 남아 있다.  누구에게나 나의 의견을 -그것이 정치든 종교든 성적 정체성이든- 당당하게 밝힐 수 있고, 다른 이들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차별하거나 불이익을 주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문주의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길이 아닐까?
 
세르베투스가 칼뱅에 의해 화형당한 뒤 수백년이 지난 뒤 1903년에는 세르베투스 가 죽은 곳에는 속죄비가,1908년에는 얼마 멀지 않은 프랑스 안마스에 세르베투스를 위한 기념상이 세워졌다 그 묘비명으로 이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미카엘 세르베투스
 지리학자이자 의사이자 생리학자
 과학적 발견들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헌신
 굴하지 않는 독립적 지성과 양심으로 인류의 복지에 공헌하였다.
 그리고 그의 신념은 결코 꺾을 수 없었다.
 그는 진리의 대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쳤다"
 
"우리의 위대한 개혁자 칼뱅을 존경하고 그에게 감사하는 후예들로서
 우리는 그 시대의 오류이자 그(칼뱅)의 오류를 척결하고
 종교개혁과 복음의 진정한 원리들을 따라서 양심의 자유를 견지하면서
 1903년 10월 27일에 이 화해의 기념비를 세운다"

 
   
 






[책 속의 길] 159
류정하 / 인문주의적 월급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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