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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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주 칼럼]


2022년도 순식간에 지나 1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따뜻하던 11월과 달리 겨울한파가 밀어닥치던 12월 16일 10.29 이태원 참사 49재에 앉아 유족들의 영상을 보며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158명의 생명이 스러져 간 참사의 자리에 애도와 추모, 위로가 아닌 폄훼와 막말, 댓글이 2차 가해가 되어 생존자가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말’은 세상을 뒤로 가게 하고 있다.
 
'10.29 이태원 참사' 49일 대구시민추모제...희생자 대구 분향소에 헌화하는 시민(2022.12.16. 대구 동성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29 이태원 참사' 49일 대구시민추모제...희생자 대구 분향소에 헌화하는 시민(2022.12.16. 대구 동성로)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우리는 말의 힘을 잘 알고 있다. 어떻게 말할 것인지 고민하고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책을 읽고 공부도 한다. 필자도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비폭력대화법을 공부하고 연마하기도 했다. 시민단체 활동가, 상담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공부는 필수적이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공부를 하며 말은 대화 기술을 아는지 모르는지가 아니라 '심보(心寶)'가 좌우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막말은 사건에 대한 인식과 예의, 인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식 팔아 장사한다는 소리 나온다"며 "나라 구하다 죽었냐"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면 좋지 않았을까"
"국가적 비극을 이용한 ‘참사 영업’을 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국가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참사 영업상'이 활개 치는 비극을 똑똑히 목격해 왔다"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결합해 정부를 압박하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

이러한 발언들은 국민의힘 정치인들과 총리가 한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마약이 원인이 아닌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또 다른 원인이 참사의 원인이라고 우기기도 했다. 우리는 이 말들에서 참사 후 49일이 지나도 제대로 된 추모는커녕 여야가 합의한 국정조사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KBS뉴스 <"막말 규탄, 2차 가해 그만"…이태원 참사 유족 울분>(2022.12.15) 방송 캡처
사진 출처. KBS뉴스 <"막말 규탄, 2차 가해 그만"…이태원 참사 유족 울분>(2022.12.15) 방송 캡처
사진 출처. KBS뉴스 <"막말 규탄, 2차 가해 그만"…이태원 참사 유족 울분>(2022.12.15) 방송 캡처
사진 출처. KBS뉴스 <"막말 규탄, 2차 가해 그만"…이태원 참사 유족 울분>(2022.12.15) 방송 캡처

10.29 이태원참사에 대한 막말이 시민들에게 참혹하게 들리는 이유는 개인의 말하기가 아니라 공적영역에서 정치인이 한 말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통치자나 정치가가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통제하고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실현시키는 일'이라고 할 때 이들의 말하기는 '국가의 정책과 목적'을 정치가 어떻게 생각하고 실현할 것인가를 보여준다.

미국처럼 국민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온 군대가 출동하여 구하는 정도까지 되지는 않더라도 ‘내가 사는 이곳에서 기본적인 안전을 보장받는 것, 이 나라가 나를 국민으로 존중하며 기본권을 보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국민들에게는 있다. 그러나 10.29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치인들의 발언은 이 믿음을 산산히 부숴버리고 유족들과 시민대책위를 참사를 이용하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국민여론을 양분시키기까지 한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기자회견, 집회 등 다수의 자리에서 '말'할 기회가 많다. 그런 자리가 있을 때마다 생각한다. '무슨 이야기를 것인가, 나의 말하기는 어떤 효과를 바라고 하는 말인가, 나는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말하는가'. 때문에 조롱하는 말, 폄훼하는 말, 비난하는 말보다 법과 제도, 상식에 기초하여 책임을 묻는 말, 원하는 바, 대안 제시를 위해 노력한다. 또한 보편적 인권에 근거하고 성인지감수성에 근거하여 연령, 인종, 지역에 대한 차별적 인식에 근거한 말하기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막말하는 정치인을 보고 싶지 않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고 개인의 심리적 안정도 해치는 막말을 이제는 그만 듣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 선거까지 기억해야 한다. 어떤 사안에 대해 인권 감수성과 성인지 감수성 없이 말하는 사람은 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폭력적인 언사를 하는 사람은 폭력행위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음 주권을 행사할 때 막말하는 정치인을 반드시 기억하자.

 
 
 
 





 [남은주 칼럼 40]
 남은주 /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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