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아버지를 목놓아 불러봅니다"
채영희 (사)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과 유족들이 아버지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국가폭력에 희생된 부모의 유해는 77년이 지나 머리가 희끗해진 노인이 돼도 어디에 묻혔는지 알 길이 없다. 유족들은 올해도 희생된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워했다.
(사)10월항쟁유족회(이사장 채영희)는 6일 오전 달성군 가창면 10월항쟁·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10월항쟁 77주기·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 73주기 합동위령제'를 열었다. 위령제는 오전 11시부터 2시간가량 이어졌다. 희생자 추모 공연, 전통제례, 합동추모제 순으로 진행됐다.
채영희 유족회 이사장, 이재홍 대구시 행정국장을 비롯해 강민구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나정태 '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이사장, 고정훈 제주4.3유족회 영남위원장 등 18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제주4.3항쟁 유족들로 구성된 '제주 4.3 평화합창단'도 참석해 합창했다. '애기동백꽃의 노래', '상록수' 등의 노래를 부르며 10월항쟁 유족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졌다.
위령탑 한켠에는 제주4.3 대구·영남지역 희생자 483명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과 함께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다. 1948년 제주4.3항쟁이 발생한 이후 군경에 의해 제주도에서 대구형무소로 끌려가 가창골 등지에서 학살당한 희생자들도 같이 추모하자는 의미다. 10월항쟁과 제주4.3항쟁 유족들은 희생자들에 대한 제사를 함께 올리며 아픔을 나눴다.
유족들은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해 ▲10월항쟁 특별법 제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설기구 운영 등을 촉구했다.
채영희 유족회 이사장은 "유가족들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피눈물과 한숨으로 자랐다"면서 "웃을 줄도 모르는 유족들이 이제는 웃으며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고 남은 인생을 살고 싶다"고 소망했다.
이어 "긴 세월 동안 가장 두려운 것은 10월항쟁이 잊혀지는 것"이라면서 "늦었지만 힘을 모아 그해 10월 생존·자주·민주를 외치며 국가폭력에 용감히 맞서다가 이 산천에 뿌려진 아버지들의 정신을 반드시 부활시켜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10월항쟁 77주년 행사위원회'는 이날 오후 7시 중구 동성로 한일극장 앞에서 '10월항쟁 77주년 진실규명, 명예회복, 정신계승 대구경북시도민대회'를 개최한다.
진화위 조사에 따르면, 대구10월항쟁은 해방 직후 1946년 10월 1일 미군정의 친일 관리 고용과 식량 공출 시행에 반발한 대구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항쟁은 대구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됐다. 군경은 계엄령을 선포해 시위대에 발포하며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한국전쟁 전후로 대구형무소 재소자, 보도연맹원, 예비검속자들이 경산 코발트광산·가창골·칠곡 신동재 등에서 군경에 의해 집단 사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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