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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민족주의의 강박과 전체주의적 역사관
[김문주 칼럼]
2023년 10월 10일 (화) 12:16:02 평화뉴스 김문주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1930년대 후반에 본격화되는 문학인들의 일본협력은 일제강점기 한국문학사의 크레바스(crevasse)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반민족 부일(附日)행위는 좌우를 막론하고 문단에 편만했으며, 그러한 점에서 일제강점말기 정신사로서 한국문학사는 빈한(貧寒)하고 매우 옹색하다. 우리 문학사가 이육사와 윤동주를 귀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 사람 모두 남긴 시가 적은데다 윤동주는 생전에는 제대로 작품 발표조차 하지 못했던 예비시인에 불과한데도 한국문학사는 그들을 각별하게 기억한다.

육사의 경우, 한국시사에 남긴 작품은 불과 40편 남짓이지만 10여 편의 작품이 교과서에 지속적으로 수록됨으로써 해방 이후 가장 강력한 정전(正典)의 시인이 되었으니 우리 공동체에서 그의 특별한 위상을 헤아릴 만하다. 육사와 동주는 우리 문학사의 결여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결절점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육사는 실천적인 삶으로서 시(詩)를 살아냈으니 반민족 부일자들로 가득한 한국문단에 돌올한 지점이 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목숨이란 마-치 깨어진 뱃조각
여기저기 흩어져 마을이 한구죽죽한 어촌보다 어설프고
삶의 티끌만 오래 묵은 포범(布帆)처럼 달아 매였다.

남들은 기뻤다는 젊은 날이었건만
밤마다 내 꿈은 서해를 밀항하는 정크와 같아
소금에 쩔고 조수(潮水)에 부풀어 올랐다.

항상 흐렷한 밤
암초를 벗어나면 태풍과 싸워가고
전설에 읽어본 산호도(珊瑚島)는 구경도 못 하는
그곳은 남십자성이 빈저주도 않았다
(…)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인 양
다 삭어빠진 소라 깍질에 나는 붙어왔다
머-ㄴ항구의 노정에 흘러간 생활을 들여다보며
(이육사 「노정기(路程記)」 부분)


1937년에 발표한 이육사(1904∼1944)의 작품이다. “서해를 밀항하는 정크”(사람이나 짐을 실어 나르는 데 쓰던 작은 돛대 배)에 자신의 청년기를 비유하는 시인의 회한이 생생하게 부조된 시이다. 육사의 시에서는 드문, 비유적 표현이긴 하지만 자신의 체험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이 작품은 그의 젊은 날의 어둠과 고달픔을 떠올리게 한다. “새벽 밀물에 밀려온 거미”처럼 “삭아빠진 소라 깍질(껍질)”에 붙어왔노라고 자신의 삶을 회상하는 시의 언술에서 우리는 행적 확인이 쉽지 않은 그의 젊은 시절과 그 시간을 처연하게 그리는 시인의 내면을 마주하게 된다. 육사의 고독한 삶을 오래도록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 이육사, 서대문 형무소 수감 당시 1934년 6월 20일 신원카드 / 사진 출처. 이육사문학관(경북 안동)

그런데 이 시의 화자로 생각되는 육사의 젊은 날은 무엇 때문에 이토록 어둡고 고달팠던 것일까? 우리는 관성적으로 육사의 시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삶을 헌신한, 위대한 정신의 기록으로 읽는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 경직된 해석의 관성 속에는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 기인한, 오래된 보수적 민족주의의 압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보수적 민족주의의 강박은 육사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하 적잖은 독립운동가들에 관한 인식에도 작동해왔다. 육사의 이력은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있고 사실을 확정할 수 없는 내용도 상당하지만, 명확하게 확인된 이력이나 증언들, 그리고 그가 남긴 산문에는 그의 활동과 작품을 단순한 민족주의로 해석할 수 없는 증거들이 차고 넘친다.

23세(1927년)부터 작고하기까지 무려 17회 이상 수감되었던 육사의 이력에서 확인된 것들 중 눈여겨 볼 사항은 일본 유학기(1924∼1925)에 아나키스트 모임인 흑우회의 주요 회원이었다는 점과 의열단의 단장이었던 김원봉이 운영하였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의 1기 졸업생(총 26명)이라는 점, 그리고 1930년대에 발표한 10여 편의 시사평론들에 노정된 이념이다. 이러한 그의 이력과 글들이 확인시켜주는 것은, 육사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유물변증법을 역사인식에 중요한 틀로 수용하고 조선의 현실뿐만 아니라 중국을 비롯한 세계사를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육사는 조선의 독립에 중요한 조력자인 장개석과 중국국민당을 노동자·농민의 쟁의운동을 억압하는 독재조직이자 매판계급으로 비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의열단장인 김원봉의 노선을 기회주의에 가까운 실리주의, 편의주의로 비판함으로써 이념적으로 좀더 순수한 사회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김원봉은 지난 정부에서 서훈을 고민했던 인물이 아닌가!) 그가 꿈꾸었던 조선의 해방은 사회주의혁명을 통한 조국의 독립이었으며, 그의 항일운동은 부르주아 계급으로부터 민중을 해방시키는 공산주의혁명과 분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육사를 집요하게 시찰했던 일본 경찰이 그를 ‘민족공산주의자’로 규정한 것은 그의 사상적 정체성을 제대로 인지한 결과였다.

육사의 이력과 그의 산문들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데도 이러한 내용을 왜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는가? 나태한 관성인가, 아니면 의도적 무지인가. 이러한 사실들을 알게 되면 육사의 작품은 시적 감동이 훼손되는가, 아니 정전의 목록에서 제외해야 하는가.    
 
   
▲ 1931년 11월 10일 소인이 찍힌 육사의 친필 엽서로 집안 동생인 이원봉에게 보낸 것이다. 당시 육사는 대구의 조선일보 지국에 근무하고 있었다. 직전에 육사가 고향인 원촌을 급히 다녀가느라 챙기지 못한 친척들의 안부를 묻고 있는 내용이다. (이미지 제공 이동언) / 사진 출처. 이육사문학관(경북 안동)

3.1운동 이후 만주와 간도 등지에서 여러 세력들에 의해 펼쳐진 항일운동은 각 주체들의 다양한 이념적 지향을 내장한 것이었으며, 그것은 비단 조국의 독립만이 아닌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관한 고민의 편폭이 내포된 운동이었다. 그러한 고민들과 지향의 차이를 지우거나 특정 세력의 항일운동에만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의 역사를 무화하거나 역사를 이념화하려는 전체주의적 태도의 발로이며, 그것이야말로 열린사회의 적이다. 심화된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체제에의 열망, 그러한 지적 모색과 그것의 실패한 현실태를 같은 것으로 보거나 혼동하는 것은 총체적 무지이자 폭력이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 「청포도」전문)


육사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청포도」(1939)를 추상적이고 상투적인 단순한 민족 독립에의 형상으로 읽지 않고, 시인의 구체적 삶이 총체적으로 투영된 해방된 조국에의 염원, 그 고단한 혁명을 수행하고 마침내 돌아온 ‘손님’을 맞이하기 위한 아름다운 향연의 꿈으로 읽을 수 있다면, 이 작품은 좀더 깊고 풍요로운 시적 감동과 오랜 사유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푸른 바다 물결을 열고 흰 돛단배에 청포를 입고 찾아올 고달픈 손님’을 맞이하는 저 순결한 향연에의 꿈은 우리의 오늘을 가능하게 한 수많은 선조들의 저마다의 피와 눈물이 일군 염원의 삶이다.   

이념에 의한 역사 갈라치기는 역사의 의미를 폐기하고 역사를 갈등의 전장(戰場)으로 만드는 일이다. 편협하고 옹졸한 역사의식을 가진 닫힌 공동체에 어찌 풍요롭고 건강한 미래가 도래할 수 있겠는가. 

 
   
 








[김문주 칼럼 3]
김문주 / 문학평론가. 영남대 국문과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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