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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지 못한 곡인(曲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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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곧이곧대로 사는 사람은 잘 살지 못한다. 관리이라면 진급이 느리거나 아예 승진 후보군에 들어가지도 않을 것같다. 만약 그런 사람이 인정을 받는다면 참 드문 좋은 직장이다.

 친구 중에 하나는 옛날에 일선 세무서에 다녔다. 지금 우리 나이가 칠십 넘었으니까 사십여년 전이다. 그 친구가 계장 때다. 어느 날 그 세무서에 온 지 얼마 안되는 서장이 재산세 담당인 그 친구를 불렀다. 재산세 고지서를 주면서 바로 나왔는지 알아보라고 말했다. 그 친구는 바로 알아보고 서장에게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잘 나왔습니다!”라고 하면서 공손하게 그 고지서를 서장에게 건넸다. 그러자 서장은 표정이 굳어지며 그를 쳐다보면서 말없이 ‘가라’는 뜻으로 손을 저었다. 그는 가리키는 대로 나왔다.

 그에게 고지서를 건넨 상관은 나중에 크게 되었다. 그 친구는 만년 계장이었다. 직장에서 ‘안되는 건 안된다’고 말하는 건 ‘나는 승진이나 출세와는 무관함’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때 그때 원하는 대로 잘못되더라도 잘 맞춰 주는 사람들, 그들은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사는 법을 아는 사람 같아 보인다. 주욱 위로 올라가면 일제 때에도 그런 사람들은 오로지 일제에 아부했다. 이승만 때에도 그들은 그러했다. 어느 때에도 그러했다. 전두환 노태우 …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때에도 그러했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따위의 추상적인 이념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것도 그들에게는 하찮은 액세서리도 안되는 것이었다. 한때는 민주화에도 열성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며 액션을 취했다가도 시시비비 불편부당 등 세상에 비판적인 그 길이 자신의 삶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추장스런 의복을 벗어던지고 누가 뭐라해도 본능에 충실한 모습을 드러내며 오로지 출세의 길을 쫓는다. 그래서 결탁하고 몸을 맡긴다. 누가 비웃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철학이다. 내세는 믿는지 몰라도 후세의 비난같은 염려 따위는 가소롭게 인식하는 경지이다.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한국고수필문학선』에서 장유(張維)의 '곡목설(曲木說)'이란 논변문류를 읽었다. ‘굽은 나무 곧, 곡목(曲木)은 보잘 것 없는 목수라도 가져다 쓰지 않지만, 곧지 못한 사람 곧, 곡인(曲人)은 치세(治世)일지라도 쓰지 않은 적이 없다’는 문구를 접했다. 이어서 '활줄처럼 곧으면 길가에서 죽고(直如絃死道邊), 갈고리처럼 굽으면 공후에 봉해진다(曲如鉤封公侯)'(《後漢書》<孝行志一>)는 인용된 옛말도 접했다.

사진 출처. 무료이미지 사이트 '픽사베이'
사진 출처. 무료이미지 사이트 '픽사베이'

 바른 삶이 아닌 굽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 곡학아세 – 배운 것을 왜곡하며 세상 권력에 아첨하는 사람들, 굽은 인생과 곡학아세는 참으로 오래된 처세술이다. 뻔히 보면 잘못이 보일 것이다. 배운 만큼만 보아도 꼭 해야할 말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말은 하지 않고 입을 닫는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정상적인 사람이 보기에 의외이다. 시정의 여론이나 전문인의 견해와는 동떨어진 말들이다. 장기간 이어진 의료분쟁 의료공백을 보면서 총리나 장관 차관 등등 핵심관계자들의 발언을 떠올려본다. 명품백 수수, 주가조작, 공천 및 인사 개입 등등 영부인에 대한 안 좋은 말들이 넘쳐나도 바른 말 하는 고위공직자들이 그리 없다. 뿐 아니라 두둔 모드를 작동시킨다. 

 언론 관련 위원장에 기용된 사람, 모 방송사 사장, 이들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고자 하는지! 왜 그런 인생관을 선택했는지! 젊어서부터 언론 쪽에서 살아온 사람이 볼 적에 언론의 정도와 같은 덕성은 보이지 않고 그냥 처세만 보여서 서글픔이 남는다.

  장유(1587-1638)의 '곡목설'에 인용된 문구가 남송(1127-1279)시대에 쓴 《후한서》에 나오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정직하지 못한 사람, 바르지 못한 곡인(曲人)이 대우받는 세태인 것 같다. 곧게 산다는 것, 곧이곧대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삶일까.

 그래도 만년 계장이었던 그런 친구는 싹수가 훤하기 때문에 승승장구할 일도 없지만 그런 것 때문에 돈이 들어가거나 고민하는 일도 없을 터였다. 그저 쓰고 싶은 글이나 쓰며 마음 편히 지내는 법을 터득한 것만해도 다행이고 잘 사는 셈으로 여기는 듯하다. 

 폭염이 기록을 세우며 맹위를 떨쳤던 무더운 여름도 시월 들어 사라졌다. 오늘따라 가을비가 한 점 두 점 중한 얘기를 하듯 내린다.             

[유영철 칼럼 37]

유영철(兪英哲) / 언론인.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언론정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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